엄마 잃고 詩人이 된 소년… “위로하는 사람 될래요”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9 11:51
  • 업데이트 2023-11-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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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 민병훈(오른쪽) 감독이 “시우가 조금 커서 내 모습을 찍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자 시우 군은 “좋아요”라고 답했다. ㈜민병훈필름 제공



■ 다큐 ‘약속’주인공 민시우 군

다섯 살 때 엄마와 이별 아픔
‘비도 슬퍼서 눈물 내리는 걸까’
詩 쓰며 상처 치유… 시집 출간
감독인 아버지가 영화 만들어
父子와 소소한 제주 일상 담아


“저처럼 슬픈 사연 있는 분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약속’의 주인공 민시우(11) 군.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극장에서 상영 중인 것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줄 알았으면 연기를 했을 텐데 그냥 찍어서 부끄럽다”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고 그 나이대 소년처럼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약속’은 시우 군의 아버지 민병훈(53) 감독의 신작이다. 러시아국립영화대에서 촬영을 전공한 민 감독은 졸업작품 ‘벌이 날다’가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가주의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20여 년 동안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기적’ 등 10여 편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민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인 아내 안은미 씨가 폐암 선고를 받은 후 제주 애월 숲으로 거처를 옮겨 가족의 삶에 집중했다. 시우 군은 다섯 살 때 엄마를 떠나보낸 후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시를 쓰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했다. ‘비는 매일 운다/나도 슬플 때는/얼굴에서 비가 내린다/그러면/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시우 군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쓴 시 ‘슬픈 비’다. 시우 군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엄마 생각도 나고, 눈물도 나와 썼다”고 설명했다.

민 감독은 지난해 시우 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시집 ‘약속’을 출간해줬고, 이 이야기는 1월 KBS 휴먼 다큐 ‘자연의 철학자들’에 소개됐다. 또 8월에는 시우 군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3년간 촬영한 영상을 1년 넘게 편집해 세상에 내놓은 민 감독은 “시를 통해 엄마와 소통하고 있는 아들에게 항상 엄마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시우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쓴 23편의 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기에 부자의 소소한 일상과 제주의 자연이 담겨있다.

영화 후반부 모든 장면이 거꾸로 흘러가며 시우도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다시 만난다. 이 장면에 대해 시우 군은 “아빠가 멋있게 보이려고 만든 장면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엄마와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려는 아빠의 선물이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시우 군에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TV에 출연했고, 영화 주인공도 된 걸 엄마에게 어떻게 자랑하고 싶냐”고 묻자 “따로 자랑할 게 없다. 엄마는 항상 제 옆에서 제 모든 걸 알고 계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또 “제가 아빠 나이가 됐을 때 아빠의 삶을 다큐로 찍고 싶다”며 “제 꿈 중 영화도 하나의 길로 열어뒀다”고 말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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