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手작업 확대 필요성과 독일 교훈[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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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필자가 10여 년간 유학 생활을 한 독일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너무나 느린 사회였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라식 수술이 보편화한 당시 독일은 그 수술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며 국내 시술을 한동안 금지했었다. 또, 19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는 광케이블을 깔았는데 독일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다. 독일의 이런 자세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독일의 이런 신중함은 정치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2009년 3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전자 투·개표기의 하자와 조작 여부를 알아차리기 매우 어렵다’라는 유권자들의 우려가 있다며, 선거 과정에서의 전자기기 사용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002년부터 전자 개표 시스템을 도입했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

우리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소쿠리 투표’로 상징되는 “희한한 투표 관리”를 했어도, 공정에 어긋나는 직원 채용 사례가 있어도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북한에 의한 선관위 해킹 가능성을 통보했을 때도 꿈쩍하지 않았다. 해킹에 의해 전산망이 뚫릴 가능성이 있음을 국정원이 보여줘도 선관위는 많은 사람이 투·개표 조작에 참여해야 가능한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도 독립성을 강조하거나 불가능만을 외치는 선관위가, 아무리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겠다고 주장해도 유권자들이 이를 신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선관위가 그나마 잘한 일은, 앞으로는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한 뒤 사람이 직접 투표지를 확인하는 수(手)개표 절차를 거친 뒤에 심사 계수기를 돌리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추가로 좀 더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난 7월 17일부터 9월 22일까지 선관위·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합동 보안점검팀을 구성해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여야 참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보안 점검을 했다. 그 결과 ‘득표수 변경이 가능했는데, 이런 취약점을 방치해 해커에 의한 개표 결과가 그대로 개표 방송으로 나가게 된다면 선거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됐다.

그렇다면 표의 집계와 합산 과정에서도 컴퓨터에 득표수를 입력할 때마다 여야 참관인들이 이를 사진으로 채증하고, 최종적으로 입력이 끝나면 채증한 사진과 대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선과 같은 선거의 경우 개표소마다 입력한 득표수가 정확한지, 그리고 총집계 시 이 수치가 정확히 전달됐는지를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선관위는 득표수 변경 가능성을 비롯해 국정원의 지적 사항을 대부분 개선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보호대책 이행 여부 점검’에서 선관위 ‘자체 평가’가 100점 만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선관위의 주장을 신뢰하긴 쉽지 않다.

독립성을 외치기 전에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수작업과 확인 작업의 범위를 상당히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것만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독일이 기술이 없어 수작업에 의존하는 선거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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