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 예산 요지경과 재정준칙 시급성[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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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이라는 머피의법칙이 들어맞고 있다. 필자는 가을 국회가 열리기 직전(8월 31일 자) 이 코너에 쓴 칼럼에서 여야의 선심성 퍼주기 경쟁으로 내년도 예산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선심성 퍼주기의 불을 지핀 것은 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예산안 심사 방향을 밝히면서 5대 생활 예산 추진을 발표했다. 월 3만 원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게 해주는 ‘청년 3만 원 패스’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 지원’ 등이다. 이어 국회 각 상임위에선 거대 야당 주도의 증액이 한창이다. 민주당은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소위에서 잼버리 파행 이후 정부가 대폭 줄인 새만금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1400여억 원을 복원시켰다. 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예산소위에서 정부가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 중 8000억 원을 증액했다. 행정안전위원회는 이재명 대표의 핵심 정책인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을 7053억 원으로 올해보다 배로 늘렸다. 정부가 전부 감액한 사업비를 배로 늘린 것이다.

이래 놓고는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생태계 조성 관련 예산 총 1820억 원 전액을 삭감했다. 이에 ‘차라리 탈원전으로 회귀를 선언하라’는 반발 여론이 빗발친다.

그러자 여당도 맞불을 놨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5대 분야 40대 증액사업’을 제시했다. 다른 지역 기업 인턴 참여 청년에게 체류 지원비 지급 등 현금성 지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어르신 무릎관절 수술 지원 확대, 어르신 임플란트 지원 확대 등 노인 복지 지원책도 눈에 띈다. 김기현 대표가 강력히 추진하는 ‘1000원의 아침밥’ 사업도 증액 대상에 포함됐다.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참여를 희망하는 모든 대학에 지원하겠단다. 기후위기에 대한 선제 대응이나 양극화 해소 등의 명분을 내걸었지만, 표심을 겨냥한 티가 역력하다.

입법 권력까지 되찾아야 완전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고 믿는 여당으로서는 일견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예상으로 올해 약 60조 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이란 점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선심성 예산을 밀어붙이는 판에 여당까지 예산 증액에 ‘동참’하면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2.8%)로 짰다는 656조9000억 원의 내년도 예산안 방어는 물 건너갈 것이다. “‘선거 매표’를 단호히 배격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다짐도 빛을 잃게 된다. 당연히 국가채무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뿐 아니다. 여야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예비 타당성조사까지 건너뛰고 연내 처리에 사실상 합의했다. 11조 원이 넘게 드는 대형 국책사업으로 사업성·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만, 여야 포함해 역대 최다인 261명이 공동 발의한 달빛고속철 특별법은 12월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증액을 요구하거나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의 상당수는 시급하지 않거나 우리 재정 형편상 시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바로 이런 ‘매표성(買票性)’ 사업을 막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재정준칙이 새삼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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