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게 ‘레드팀’ 필요하다[이현종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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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정부가 확증편향 빠지면 재앙
엑스포 표결 직전까지 낙관론
질 수 있다는 보고 누구도 못 해

악마의 변호사 역할 설정한 뒤
대통령에게 다양한 정보 주고
결정 전 치열한 찬반 토론 필수


사람들은 보통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것에 빠지면 반대되는 증거나 새로운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선거 때가 되면 “내 주변에는 A당을 지지하는 사람밖에 없는데 어떻게 B당이 이길 수 있지”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만 만나고, 같은 주장을 하는 매체를 집중적으로 접하다 보면 흔히 생기는 확증편향이다. 개인은 몰라도 기업이나 정부가 여기에 빠지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표결 며칠 전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20석 정도 앞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최종적으로 보고된 예측은 2차 투표에서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7∼10표 차이로 앞서는 것이었다고 한다. 언론도 정부를 믿고 2차 결선투표에서 역전극이 가능할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사우디가 119표, 우리가 29표로 예측과 완전히 빗나갔다. 130표 정도 얻을 것이라는 사우디의 예측은 대충 맞았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돼 이런 참사를 낳았을까.

윤 정부 들어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막강한 오일머니를 갖고 있는 사우디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기업과 함께 정부가 본격적인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긍정적인 보고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날 때도 좋은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또, 역대 엑스포에서 1차 투표 때 결론이 난 적이 없다는 것도 긍정 판단을 하는 데 작용했다. 확증편향과 경험편향이 동시에 오다 보니 자꾸 전망치가 높아졌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만회하고 국민 지지를 높이기 위해선 엑스포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에다, 윤 대통령 특유의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그 누구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실 분위기를 간파하고 유치가 어렵다는 정보는 무시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렵다고 하면 마치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잼버리 사태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선 대회를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들이 속출했지만, 전북도와 여성가족부는 수습이 되고 있다는 긍정적 보고만 대통령실로 보냈다. 질책이 두려워 제대로 된 보고를 못 한 것이다. 언론에 현장 상황이 보도되고 대통령이 화를 낸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시대에 로마 교황청에는 성인으로 추대될 후보자의 흠집을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했던 ‘악마의 변호사’가 있었다. 현대에 들어 기업에서는 ‘레드팀(red team)’을 만들어 중요한 판단을 할 때 반대편에 서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집중 분석하고,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의무를 갖는다.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발했다고 한다. 정보 판단의 오류를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실에는 레드팀이 없다. 레드팀은커녕 누구 하나 대통령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한다. 장관들도 윤 대통령에게 보고하러 가면 보고보다 말을 듣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전하는 관계자들이 ‘격앙’ ‘분노’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참모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보고를 하는 참모를 자주 찾고, 그러지 않는 참모는 찾지 않다 보면 점점 확증편향이 깊어진다. 이번 엑스포 사태는 바로 이런 분위기가 낳은 최악의 참사다. 윤 정부는 이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윤 정부 출범 초기에도 어떤 참모가 레드팀을 만든다는 얘기를 언론에 했다가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실에 레드팀이 절실하다. 상대편 입장에서 현장 상황을 직접 보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처음엔 장관들에게 권한을 넘겨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부처가 발표한 일을 대통령실이 번복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장관의 말이 먹히지 않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예전처럼 정책실을 만들었지만, 이미 수동적이 된 공직사회가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엔 ‘The Buck Stops Here(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한다)’라는 명패가 있다. 결정은 대통령이 하지만, 그 과정에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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