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매력 찾으려고 클래식 듣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8 09:26
  • 업데이트 2023-12-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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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지난달 20일 인터뷰에서 “음악은 보관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불러줘야 하는 것”이라며 “클래식이 사회와 분리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곽성호 기자



■ M 인터뷰 - 음반매장 20년만에 음반발매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잘나가던 정신과 의사 관두고
클래식 좇아 음반가게 사장으로

음반 없어지면 음악도 사라져
클래식 지키는 사랑방 역할 자처
예술=시간 때우기로 보는 요즘
메시지 이해할 여유·역량 없어

요즘 음악, 점점 품위 잃어가
임윤찬 같은 연주자 지켜내야
예술의 정신적 가치 유지 가능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엔 20년간 그 공간을 지킨 클래식 음반 가게 ‘풍월당’이 있다. 음반을 팔고, 책을 팔며, 강의를 하는 이곳은 ‘공들인 음악’을 듣기 위한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자, 플랫폼이며, 절박한 마음으로 문화와 인간다움의 가치를 사수하는 방둑이다.

이곳을 세운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잘나가던 정신과 전문의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풍월당을 차린 건 “섬에 놀러 왔는데 너무 좋아서 오래 있게 된” 경우다. 그 후로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박 대표는 수십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수많은 사람에게 예술과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길잡이 노릇을 해왔다.

지난달 20일 풍월당에서 만난 박 대표에게 클래식의 매력을 물어보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클래식은 꼭 매력을 찾으려고 듣는 게 아니에요. 안 들어도 세상 사는 데 지장은 없죠. 그렇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거죠.”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클래식 좋아해야지’ 했던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윤복희, 패티김 같은 대중가요를 들었고, 올드팝으로 넘어갔다가 중학교 때 클래식에 안착했다. 그냥 남보다 음악을 빠르게 섭렵했다.”

―음반 가게를 열려고 의사를 그만둔건가.

“의사는 힘들어서 그만뒀다. 겉으로는 잘나가는 의사였지만, 속으로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쉴 때 매일 음반 가게에 놀러 가다가 내가 직접 하나 차려볼까 했던 거다.”

―왜 음반 가게였나.

“내 신념 중 하나가 ‘음반이 없어지면 음악이 없어진다’이다. 종이책이 없어지면 책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책이 있다는 건 내가 그 책의 내용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는 거니까.”

―검색하면 언제든 알 수 있지 않나.

“쉽게 얻은 정보는 쉽게 잃는다. 더 큰 문제는 무엇을 검색할지 모르는 거다. 한나 아렌트를 모르는데 그에 대해 검색할 수 있을까. 아렌트에 대한 책이 줄어든다는 건 아렌트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얘긴가.

“맞다. 누군가는 (음반 보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건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최소 사랑방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음반을 사는 사람은 줄고 있는데.

“풍월당을 시작한 2003년 이미 음반 가게들이 문을 닫을 때였다. 음반이 안 팔리니 유지할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책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됐다.”

―음반을 팔기 위해 책을 판다?

“음악을 듣게끔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음악의 의미를 알려주는 거다. 음반과 책, 강의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다.”

박 대표의 말처럼 풍월당은 음반 가게를 넘어 예술 전문 서적을 내는 출판사이자 문화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강좌를 운영하는 아카데미다. 벽돌보다 두꺼운 음악가 평전이나 오페라 총서는 풍월당에서만 낼 수 있는 책들이다. 최근엔 폴란드 출판사와 쇼팽 평전을 계약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책들이다.

“나는 남들이 하는 건 안 한다. 세상에 필요한데, 남들은 내지 않는 책. 그게 우리 출판 기준이다.”

박 대표의 소신과 달리 요즘은 문화계 전반에서 유행에 편승하는 경향이 커졌다. 최근엔 배우 한소희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언급하자 10년 전에 출간된 책이 완판됐다. 박 대표는 “문학에서 베스트셀러란 말은 웃기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만큼 공감했다는 의미 아닐까.

“그보단 책을 액세서리로 여기는 것 같다. 유명 문학상을 탔다는 작가들마저 인기에 편승해서 얕은 책을 쓰고 있으니 큰일 났다 싶다.”

―공연에서도 특정 연주자나 연주단체에 쏠리는 경향이 커졌다.

“대중문화라면 대중의 관심이 클수록 가치가 있지만, 클래식은 다르다. 절대적으로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다들 A를 찾아도 홀로 B의 가치를 찾는 것. 그것이 고전의 세계다.”

―왜 많은 사람이 본인이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걸까.

“음악을 듣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며,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서점, 극장에 사람은 더 많아졌다.

“예술을 진지하게 보지 않고, 시간 때우기로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두 번 읽지 않을 책은 한 번 읽을 필요도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대중음악, 오락영화도 마찬가지다. 속에 담긴 메시지에 천착할 여유와 역량이 없다. 많이 본 것과 상관없이 얼마나 제대로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다.”

―고전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

“클래식 음악을 고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수백 년에 걸친 검증에서 살아남은 음악이라서다. 당대에 인기 있었던 알레비란 작곡가가 있다. 60편가량 오페라를 썼는데, 지금은 한 편 남고 다 도태됐다. 제일 냉혹한 곳이 공연예술계다. 지금 듣고 있는 클래식 음악들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다.”

―책에 대한 가치는 많이들 공감하지만, 음반에 대해선 여전히 취미나 교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겐 로고스(이성)도 있지만 파토스(감성)도 있다. ‘호메로스’를 책으로만 읽는 건 파토스 없이 로고스만 취하는 것이다. 음악으로 가슴을 때려야 한다. 가슴이 살아 있는 인간인가? 그렇다면 음악이 필요하다. 참담하지만 이 세대가 음악을, 고전음악을 잃어버리고 있다. 음악이 실종된 상태라 세상이 각박하고 정치, 사회에서 품위가 실종됐다. 교양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박 대표는 인터뷰에서 새로운 소설은 읽어도, 새로운 음반은 잘 듣지 않는다고 했다. 모순 같지만, 이유가 있었다.

―음반 가게 대표가 신간은 챙겨봐도 신보는 잘 안 듣는 건 아이러니 같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소설은 새 소설이 나오면 산다. 그런데 클래식은 같은 곡을 다른 연주자가 연주한 걸 산다. 예상 가능하다는 얘기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음반 회사들이 돈이 되는 방향으로 아이돌 가수 마케팅하듯 연주자들에게 녹음을 시킨다. 새로운 작품은 잘 팔리지 않으니 똑같은 쇼팽이 나오고, 똑같은 바흐가 끊임없이 나온다.”

―음반을 많이 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판단 같은데.

“대중음악과 클래식은 다르다. 같은 잣대를 들이밀어선 안 된다.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하는 건 클래식 산업을 저해하는 요소다. 클래식 관계자들이 자신이 다루는 음악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연주자들에게도 해가 될 것 같다.

“젊은 연주자들이 더 큰 음악가가 될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젊을 때 반짝한 연주자가 나이 들어 그 명맥을 잇는 경우가 드물다. 외국에선 신동이 나이 들고 또 다른 깊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차이가 뭘까.

“첫째는 연주자 개인이 가진 교양적 깊이. 둘째는 주변 사람들의 수준. 연주자를 서커스단 광대처럼 돌리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래서 품위가 느껴지는 젊은 연주자들이 보이면 반갑다.”

―젊은 연주자 중 품위를 지키고 있는 연주자는 누가 있나.

“임윤찬 아닐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얘기한다. 이런 연주자는 오염되지 않도록 주변에서 잘 보살펴야 한다.”

―풍월당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마음가짐에 차이가 있을까.

“시작할 땐 좋아하는 걸 하는 마음과 사명감이 반반이었다면, 점점 사명감이 커진다. 주변에서 ‘잘한다’며 떠미니까 ‘내가 대단한가?’ 하는 착각도 든다.”

―사명감이 커지는 이유는.

“클래식이 점점 더 나쁜 쪽으로 가고 있어서다. EMI가 없어지고, 필립스가 더 이상 음반을 내지 않는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들이 경제 논리로 없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최소한 ‘풍월당’이란 공간에서만큼은 밖에서 통용되는 자본주의란 잣대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얘기하고 싶다. 절실함이 커졌다.”

―의사를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순간은 없나.

“‘의사 계속했다면 빌딩을 지었겠다’고 할 때가 있다. 세상엔 돈 말고 다른 가치를 위해 사는 방법도 있다고 매일 되새김질한다.그래서 매순간 당당하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마지막에 뭐라고 하는지 아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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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책 쓰고 강의하냐고?… 풍월당 먹여 살리기 위해”

■ 책도 쓰는 풍월당 대표

문닫았을때 홀로 강의한 모습
편지와 함께 회원들에게 보내

“예술 신념 책에 담고 싶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풍월당을 먹여 살리기 위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책을 쓰고, 강의하는 건 “고기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하기 위해 낚시를 가르치는 행위”다. 오는 20일 출간 예정인 ‘마리아 칼라스’처럼 클래식 전문 서적이 다수를 이루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인생과 마음이 담긴 에세이 2권을 아낀다.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민음사)와 ‘코로나 시대의 편지’(풍월당)다.

‘코로나 시대의 편지’는 박 대표가 코로나19 유행으로 풍월당 아카데미가 문을 닫은 동안 회원들에게 보냈던 편지를 모은 것이다. 박 대표는 “풍월당과 풍월당을 아끼는 사람들 사이 끈을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텅 빈 강의실에서 홀로 찍은 강의를 매주 USB 형태로 회원들에게 보낼 때 편지를 동봉했다. 책엔 음반 가게 대표나 클래식 애호가 박종호보단, 인간 박종호의 생각이 담겨 있다. 투표소에서 본 할아버지를 통해 아버지를 추억하기도 하고, 영화에 빠졌던 어린 시절을 되새기며 동무를 그리워한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참 많이 걸어다녔다”는 산책자의 기록이자 책과 음악, 주변을 바라보면서 경계 너머에 안부를 묻는 구경꾼의 관심이다.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는 반평생 이상 음악과 문학, 영화에 파묻혀 지냈다는 박 대표의 예술론이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인기 있다고 예술이 아니라 진짜 예술은 이런 것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책은 예술을 ‘소외된 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박 대표는 “앞으로는 인생 이야기를 더 쓰려고 한다”며 “주변의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조용하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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