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당선자들이 말한다 ‘나에게 신춘문예란… ’ [2024 신춘문예]

  • 문화일보
  • 입력 2024-01-02 09:22
  • 업데이트 2024-01-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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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신춘문예

마치 루카치의 별처럼 길 밝혀줘
2008년 소설 등단 - 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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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의 꿈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줄도 모른 채 늘 무용한 것에 빠져들어 인생을 낭비했다.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음악이나 들으며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 정처 없이 걸었고, 하지 않았다면 더 나았거나 별 의미 없는 일들을 경험했으며, 직업과는 관계없이 쾌락만을 위해 공부했다. 암흑 속을 배회하던 나에게 신춘문예는 마치 루카치의 별처럼 나침반이 되어주고 길을 밝혀주었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난 뒤 나는 그간 보낸 무의미했던 시간들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됐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오랜 시간 내가 염원했던 일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나는 진짜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두돌 아이가 “됐다” 하듯 꽉찬 기분
2012년 평론 등단 - 신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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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육아 중이다. 두 돌이 된 아기는 말을 배우느라 바쁘다. 최근 애용하는 단어는 ‘되다’인데, 밥을 다 먹고 칭찬을 기다릴 때도, 옷 입기 싫다고 손사래를 칠 때도 늘 ‘됐다’고 한다. 오늘 아이가 새 용례를 보탰다. 무릎에 책을 얹고 “같이”라고 하길래, “나란히 앉아 책을 보자는 거야?”라고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됐다”라고 한다. 12년 전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고 내가 처음 떠올린 말도 ‘됐다’였던 것 같다. 나의 책 읽기를 지켜봐 주고 또 함께해 달라고, 불완전한 말로 한 구애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진 날이었다. 임신 이후 몇 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 나는 차라리 신춘문예 응모자에 가까운 심정이다. 다시 ‘됐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희미한 풍경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
2020년 시 등단 - 차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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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는 언덕 같다. 언덕을 오를 때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되듯이 신춘문예를 준비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언덕을 오르며 스쳐 가는 사람들과 풍경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지만, 희미한 모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은 그런 희미한 모습들을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다. 아름답고 이상한 풍경을 보여주는 언덕처럼 신춘문예는 내게 아름답고 이상한 풍경을 보여준다.

서로를 스쳐 가던 사람들이 또 다른 언덕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없는 언덕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언덕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어딘가에 쏠려있는 내 마음 확인
2021년 소설 등단 - 김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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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에 여러 번 소설을 보냈다. 결과는 기대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말했다. 기대를 내려놓자고 백 번쯤 되뇌면 기대감이 백 번쯤 솟아올랐다. 그런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소설을 쓰는지 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혼자서 조용히 기대하고 낙심하고 우울하게 한 주를 보내는 내가. 당선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겨우 그런 일로 서글픈 게 우스운 기분이 들면 조금 더 서글펐다. 하지만 그런 울적한 순간은 내게 어딘가에 쏠린 마음과 예민하게 돋은 더듬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그것이 좋았다. 내 사랑에 그런 우울함과 서글픔이 있다는 것이. 나는 그것을 매번 겨울에, 신춘문예의 계절에 확인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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