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짜, 진심·위선의 문제 유쾌하게 풀어내… 한국詩 밝힐 신예 출현[2024 신춘문예]

  • 문화일보
  • 입력 2024-01-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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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신춘문예 - 시 심사평

응모작들에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미래 지향적인 목소리가 부족한 대신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과 문제를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관조하는 서정적이고 성찰적인 목소리가 감지되었다. 종교적 의미로서보다는 자기 존재 탐구의 수단으로서 신이나 천사 등 초월적 존재를 모티프로 한 시와 그 반대로 가까운 친척이나 동료들이 등장하여 익숙한 삶을 뒤집어보는 일상형의 시가 함께 나타나는 현상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일상형의 시에서는 청년취업 문제나 주택 문제, 부채 문제 등과 관계된 시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심사는 예·본심을 통합해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열한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자연과학이나 설화 등의 인유를 통해 오늘의 이야기를 담아낸 긴 산문형의 시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시적 짜임새와 수준이 만만치 않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들은 ‘시창작기초’ ‘모델하우스’ ‘빛을 긁어낸다면’ ‘면접 스터디’였다.

‘시창작기초’는 알레고리 기법을 이용하여 손금의 운명선에서 거대한 사파리를 발견하고 동물들의 운명을 시 쓰기와 결합한 작품이었다. ‘손금’과 ‘밀렵’을 결합한 참신성이 돋보였지만 시적 확장성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모델하우스’는 현실감이 묵직하게 와 닿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 형제의 이야기가 형이 만든 축소된 아파트 모형 속 축소된 사람들과 분양대행사 직원이 소개하는 모델하우스의 대비로 실감 나게 전개되어 있었다. 청년 세대의 주거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다소 시적 구조가 평이하고 시행이 투박하다고 생각되었다.

‘빛을 긁어낸다면’은 여러 사물을 이질적으로 배치하고 혼합하는 시적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내면에서 맴도는 불투명한 시적 전개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시의 앞부분에서 제시되는 다채로운 내면의 이미지들과 어우러지는 외연의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그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귤’ 하나로 시작하여 ‘아이’의 심리를 ‘일기장’과 ‘쿠키’ 등의 다양한 사물을 활용하여 입체화하는 시적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면접 스터디’는 시적 사건을 다루는 솜씨나 인식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수작이다. 취업 준비를 위해 면접 스터디를 한다는 시적으로 풀어내기 힘든 소재를 통해 진짜와 가짜, 진심과 위선의 문제를 유쾌하고 활달하게 풀어내어 힘 있게 읽힌다. 특히 진짜인 척 행사되는 현실의 거짓을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러니 형식으로 건드리는 자기식의 어법이 안착된 유니크한 솜씨가 발군이었다. 당선작과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서도 오랜 습작기를 거쳤을 것이라고 믿어질 만큼의 정확한 문장과 개성,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한국시의 미래에 풍요로움을 더할 탁월한 신예가 출현했다는 것에 흔쾌하게 동의할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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