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 ‘내외산소’ 이탈에 ‘정재영’ 까지 도미노 붕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아픈 아기 받아줄 곳 줄어가는데… 충북대병원과 강원대병원 등 지역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료진이 줄사표를 내고 개원가로 옮기면서 지역 의료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개원가 이탈 현상은 소아과 등 비인기 진료과에서 안과, 정형외과 등 인기과까지 나타나 고난도·응급 수술을 담당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신생아를 음압격리병실로 옮기는 모습. 연합뉴스

■ 지역 필수 의료진 잇단 사표

소아과 교수 사표→진료차질→
산부인과 분만환자 접수불가

충북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교수 2인 이틀에 한번씩 당직

“응급·중증·필수의료 위주로
가산 수가 인상해야” 지적도

최근 충북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소아과 교수 2명과 야간당직 전문의 한 명이 주 250시간을 일하면서 사흘에 한 번씩 ‘퐁퐁당’ 24시간 당직을 서고 있다. 전공의를 받지 못해 야간당직 전문의를 2명 뒀지만 올들어 한 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충북 지역 유일한 신생아중환자실인 이곳은 단 1시간이라도 비워둘 수 없는데, 폐쇄하지 않으려면 의료진 3명이 병원에서 숙식해야 하는 임계점에 처했다. 이 병원 소아응급 전담 전문의 4명중 한 명도 조만간 그만두겠다고 밝혔고, 소아과 교수 한 명도 사의를 표했다. 충북대병원 소아 진료가 차질을 빚으면 충북 지역 산부인과도 분만 환자를 못 받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게 돼 충북 지역 소아진료 체계는 붕괴하게 된다.

필수의료 분야 최일선에서 진료와 연구, 교육을 도맡는 대학병원 교수진들이 당직과 응급 상황이 없고 돈 벌기 쉬운 개원가로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수도권에 대형병원 분원이 잇따라 세워지면서 수도권과 인접한 지역의 대학병원 의료진 이탈이 가속화되자 정부의 병상 규제와 인건비 보전 등 긴급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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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강원대 어린이병원(신생아집중치료지역센터) 소아과 교수 11명 중 36%인 4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떠나면 이곳 병원은 야간응급과 중증 환아 진료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결국 춘천시 등 강원 북부와 영서 지역에서 야간에 발생한 응급 환아들은 시도 경계를 넘어 원주시와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 강원대병원 응급의료센터도 적정 인원에 못 미친 전문의 5명이 일하는데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충북대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지난해 교수 2명이 나갔지만 1년 동안 결원이 메워지지 않고 있다.

충북대·강원대 등 후발 국립대병원은 수도권에 인접해 교통이 좋은 여건 탓에 환자·의사·간호사들이 연쇄적으로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최근 수도권에 세워지는 대형병원 분원은 지역 의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만큼 정부의 병상 수 규제가 시급하단 의견도 나온다. 박희원 강원대병원 기조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은 “수도권 분원을 앞세워 대형병원들이 병상을 확장하면서 지역 의료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인기과와 기피과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선 정형외과 교수가 그만뒀다. 정형외과는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등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많아 개원할 경우 소송 우려와 당직 없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 연봉은 최소 5억 원 이상이다. 영상 촬영을 판독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몸값도 개원가에서 4억∼7억 원이다. 심장과 폐 수술을 하는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들도 대학병원을 떠나 비급여 비중이 높은 하지정맥류 시술에 몰리고 있다. 마취과 교수들마저 개원가로 떠나면서 중소병원은 마취과 의사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기조실장(소화기내과 교수)은 “정부가 응급외상센터 의료진에게 인건비 1억 원씩을 보전해 주듯이 신생아중환자와 고위험 산모를 맡는 소아과 전문의에게 인건비를 보조해줘야 교수진의 연쇄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개원가 쏠림 현상은 정부의 수가 정책이 초래한 측면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 등 의사 면허에 대해 개원가와 대학병원 똑같이 가산 수가를 올렸다. 건강보험 체계 내 대학병원보다는 가격 통제가 되지 않은 비급여 항목이 많은 개원가 수익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개별 의사 면허가 아닌 고난도·고위험·격무를 감수하는 응급·중증·필수 의료 위주로 가산 수가를 올려줘야 형평성에 맞다”고 지적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