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첫 서울 개인전… 판매된 작품 수금 안돼 절망[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4-01-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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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중섭은 가족과의 재회를 희망하며 1955년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준비했다. 사진은 그가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야마모토 마사코와 1945년 전통 혼례를 올린 모습.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박수근과 더불어 한국 근대 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다. 그러나 사후에야 명성을 얻은 천재 예술가의 생은 불운하고 비극적이었다.

이중섭은 1955년 1월 18일 미도파 화랑에서 첫 서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만 성공하면, 생활고로 인해 일본에 떨어져 살고 있는 부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이었던 아서 맥타가트가 훗날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한 그림 3점을 사가는 등 성황인 듯했으나, 판매한 대부분이 수금되지 않았다. 그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이중섭은 1936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문화학원에서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됐고, 1945년 원산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는 마사코에게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란 뜻으로 이남덕(李南德)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 흥남철수 때 가족과 월남해 피란길에 올랐다. 제주 서귀포 단칸방에서 아내, 두 아들과 보낸 1년여는 궁핍했으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극심한 가난을 이기지 못해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이중섭은 수없이 많은 편지화를 보냈다. “나의 아스파라거스 군에게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 못생긴 발가락마저 귀여워 ‘아스파라거스 군’이란 애칭으로 부른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는 사랑꾼의 면모가 드러난다. “열심히 그린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 테니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라며 가족의 모습을 빼곡히 그려 넣은 편지는 진한 그리움으로 채색돼 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소’ 연작과 ‘부부’ 등 평생의 걸작을 쏟아냈고, 재료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박지에 못으로 그린 독창적인 은지화도 탄생했다. 기대했던 서울 개인전은 호평이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실패였다. 몇 달 뒤 절친이던 구상 시인의 도움으로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전시회를 다시 열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좌절감에 자포자기한 그는 음식마저 끊었다. 나중에는 아내가 보내온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거식증과 간염,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그는 전시회 이듬해인 1956년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마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7년을 부부로 함께 지냈고, 70년을 홀로 살았던 이중섭의 뮤즈 마사코 여사는 2022년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보내온 편지에서 남편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하겠어요. 우린 운명이니까.”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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