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리스크[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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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맞먹는 압도적 크기의 UT4 건물이 있다.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초순수(超純水·미립자 등을 제거한 순수한 물)를 만드는 장치다. 반도체는 막대한 전력과 함께 불순물 세정과 장비 냉각에 엄청난 물을 잡아먹는 ‘자원집약’ 산업이다.

“쌀을 포기하고 반도체를 만든다.” 100년 만의 대가뭄이 닥친 2021년, 대만은 농업용수까지 TSMC 반도체 공장으로 돌렸다. 18만 에이커 논에서 벼농사를 망쳤다. 연간 TSMC가 사용하는 물은 총 1억500만t. 한 방울의 물도 3.5회 재사용할 만큼 아껴 쓰는데도 주변 민심은 메말라 가고 있다. TSMC의 타이중 3공장은 현지 반발을 뚫고 간신히 승인을 받았지만, 첨단 1나노 공장 증설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는 데는 ‘워터 리스크’가 한몫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공장에 여주보 물을 끌어오려 했다. 용수 관로가 지나는 여주시가 “일방적 희생은 안 된다”며 몽니를 부렸다. 이에 앞서 안성시도 “반도체 방류수가 논으로 유입되면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며 물고 늘어졌다. SK하이닉스는 지역산 쌀 소비, 현지 반도체 인력 양성 등 온갖 상생협력 선물 세트를 내밀며 간신히 설득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도 300조 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단지에 팔당 물을 끌어오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 워터 리스크에 직면할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 자구책으로 아예 경기도 5개 지역 하수처리장 배출수 47만4000t을 재처리해 사용하는 협약을 맺었다. 삼성의‘3R(Reduce·Reuse·Recycle)’ 경영이 오염수에서 초순수를 뽑겠다는 역발상을 낳은 것이다.

비단 워터 리스크는 반도체뿐 아니다. 최근 인공지능(AI)과 함께 컴퓨팅 용량이 급증하면서 데이터 센터도 ‘물 먹는 괴물’이 됐다. 이로 인해 구글의 우루과이, 메타의 스페인 데이터 센터 설립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다. 현지 주민들은 “우리 먹을 물도 없는데 서버 냉각수라니…”라며 반발한다. “일자리도 사치”라고 할 만큼 강경한 입장이다. 물은 전통적으로 농민끼리의 분쟁 대상이었다. 이제는 쌀과 반도체 등 전략 물자들끼리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치수(治水)가 다시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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