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도쿄, 런던… 책으로 떠나는 ‘4일간의 세계일주’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7 09:20
  • 업데이트 2024-02-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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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 Pick ‘여행책 아닌 여행책’ 10選

떠나는 사람도 있고 머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책 한 권 손에 들자. 어렵고 무거워 눈꺼풀 내려앉는 책 아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는 연휴 내내 비행기 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할 수도. 소파와 한 몸 돼 느긋하게 읽어도, 몇 시간 뒤 만날 풍경과 사람을 떠올리며 버스나 기차에서 조금 불편하게 읽어도 좋은, 문화일보 북팀이 선정한 10권의 여행 책이다. 교통편과 숙소 정보, 근처 명소나 맛집 등이 가득한 여행 안내서는 아니지만,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책 맞고,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박동미·장상민 기자

■ 김병종 ‘시화기행 1: 파리, 고요한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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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화백의 ‘시화기행 1: 파리, 고요한 황홀’(문학동네)은 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풍성한 파리 예술 기행이 아닐까. 벨에포크 시대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파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가들의 궤적을 좇는 책은 왜 파리가 예술 도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름다운 시서화와 함께 그 이유를 살펴보게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로댕, 피카소, 생텍쥐페리 등 예술가 30여 명의 흔적을 만난다. 문학사, 철학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한 파리 곳곳을 저자와 함께 거닐다 보면 어느새 파리의 불빛 아래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강상중 ‘도쿄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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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인 도쿄. ‘도쿄 산책자’(사계절)는 익숙한 이 도시에 새로운 색(色)을 입힌다. 재일학자 강상중이 도쿄 곳곳을 걸어 다니며 쓴 인문 에세이로, 공간이 지닌 역사와 의미를 살펴 상상의 범위를 확장한다. 롯폰기힐스에서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샤넬 긴자점과 신오쿠보에서는 도쿄의 경제와 가치관의 변화를 읽어내며, 디지털 시대에도 꿋꿋이 버텨온 진보초 고서점가에선 도쿄의 문화장치를 점검한다. 엔저로 명품 소비가 도쿄 관광의 주가 돼버린 요즘, 우리가 놓친 것들을 일깨워 준다. 저자처럼 서울을 거울삼아 도쿄를 보는 ‘경계인’의 시선도 한 번 장착해볼 일이다. 이는 도쿄의 미래로까지 우리의 여행을 이끈다.

■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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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공항은 ‘땅에 기반을 둔 우리 종(種)의 기원’에 도전하는 최첨단 기술이 한데 모여, ‘인간적인 일’들을 만드는 곳이다. 그는 화성인에게 추천할 지구의 딱 한 장소로 공항을 꼽는다. “지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장소”라면서.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청미래)은 여행의 관문인 공항을 다시 ‘상상’하게 한다. 그는 가족과 휴가를 떠나며 착잡해 하는 남성을 통해 일상적 오해로 멀어지는 가족 관계를 고민하고, 추락 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면세점에선 사치품을 소비하는 모순적 행동도 발견한다. 보통만의 관찰력과 재기 넘치는 표현력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장담컨대, 한 번 더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공항 게이트 옆에서.

■ 유현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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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을유문화사)을 통해 저자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서른 개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피르미니 성당과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등을 통해 동서양을 넘나들며 환기되는 건축가들의 영감과 경이를 전한다. “건축은 건축가의 생각이 공간으로 기록된 결정체”라는 저자의 말처럼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생각들이 책 속에 한가득 채워져 있다. 서른 개의 건축물, 스무 명의 건축가의 생각을 살펴본 독자라면 다음 여행에서 건물에 숨겨진 묘미를 발견하지 않을까.

■ 서경식 ‘나의 미국 인문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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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별세한 재일 사학자 서경식의 유작. 뉴욕, 워싱턴, 디트로이트 등을 여행한 기록이다. 저자는 예술품 감상과 개인사를 엮어 단단한 사유를 직조한다. 책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6년, 두 형의 구명활동을 위해 미국을 오가던 1980년대,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이라는 세 시간대를 오가며 디에고 리베라, 벤 샨 등 암울한 시대에도 빛났던 예술가와 작품을 조명한다. 저자는 예술을 “선의를 나눌 줄 아는 인간임을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규정하고 관용과 연대, 공감의 조각들을 내어준다. 책은 이를 맞춰 나가는, 시공간을 초월한 지적인 여행이 된다.

■ 주성철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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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가 세대를 넘어오고 있다. 홍콩 영화 전문가 주성철이 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김영사)는 영화 속 홍콩의 분위기를 느껴보려는 독자들에게 넘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책장을 넘기면 ‘아비정전’에서 장국영과 장만옥이 만나고 헤어지던 ‘캐슬로드’, ‘영웅본색’ 속 주윤발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담뱃불을 붙이던 ‘황후상 광장’을 걸어볼 수 있다. 또 실제 홍콩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부족함이 없다. 각종 영화 촬영지가 표기된 ‘MTR 지하철 영화 지도’ ‘지도 앱과 연동되는 QR코드’ 등을 제공하며 독자들의 여행길을 함께한다.

■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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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기행문.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여행 풍경이 오롯하다. 공중전화로 호텔을 예약하고, 종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야 했다. 시칠리아의 맛, 풍광, 촉감, 냄새가 가득하고, 섬 곳곳에 깃든 역사와 신화, 전설 속을 오가며 드러나는 작가의 인문학적 통찰도 탁월하다. 당시 그는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갈 데 모를 방랑이 아니라 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내면으로의 항해가 된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새해 다짐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일상의 소소한 과제부터 오랜 인생의 숙원에 이르기까지, 뭐든 해보기로 결심하는 것. ‘낯선 곳’에서 만날 ‘나’를 위해.

■ 오지은 ‘홋카이도 보통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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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열차’는 목적지가 없다. 책은 타고 내린다는 행위 자체에 여행의 의미가 있다고 얘기한다. 방송과 공연으로 숨 가쁜 20대를 보낸 뒤, 가수 오지은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생각했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기차를 탔다. ‘홋카이도 보통열차’(북노마드)는 낡고 느린 보통 열차가 내어주는 여름 홋카이도의 우거진 녹음, 일본 시골 마을들의 맑은 공기와 따뜻한 분위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의 고민들을 급하지 않고 진득하게 풀어내며 홋카이도 2392.7㎞를 달려나간다. 일본의 관광지를 다룬 책이 늘어나는 중에도 홋카이도의 최동단부터 최북단까지 느릿하게 여행한 책은 독자들에게 생생한 경험을 전달해줄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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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애호가인 하루키가 본고장을 탐험한 후 쓴 여행기다. 목적지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하루키 부부는 위스키를 세계 최초로 양조한 곳으로 날아가, 동네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술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생굴 한 접시와 위스키를 함께 맛보며 하루키는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박한 행복’ 예찬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위스키를 잘 몰라도 책을 한번 넘겨 볼 일이다. 하루키 특유의 감칠맛 나는 문장에 아내 요오코가 찍은 사진이 어우러진 책은, 위스키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위스키 입문서,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여행서, 어느 쪽이든 흡족하다.

■ 김혼비·박태하 ‘전국축제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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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의 김혼비 작가와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의 박태하 작가가 함께 쓴 K-축제 유랑기. ‘전국축제자랑’(민음사)은 착실히 좋아하고 착실히 기록하는 부부작가가 사람들의 축제에 대해 부지런히 발품 판 기록들이다. 지리산산청곶감축제, 강릉단오제, 젓가락페스티벌 등 대도시에서 비켜난 열두 곳에서 벌어지는 축제 마당들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사람들의 표정과 환호까지 면면에 담아 독자에게 잔칫날의 설렘을 선물한다. 민족 대명절의 왁자지껄함을 손끝으로 넘기며 누리고 싶은 독자라면 선명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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