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北 전쟁위협은 ‘과장된 무모성’… 공포심과의 대결서 이겨야[Deep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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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준의 Deep Read - 선거와 北 도발

김정은·김여정 올들어 강도 높은 무력도발 위협… 경제난 가리고 통치체제 동요 피하려는 것
南 친북세력에 유리한 환경 조성 의도도… ‘단호히 응징’ 정치적 의지·군사적 대응 태세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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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위협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정치권을 북한에 호의적인 ‘평화세력’과 비우호적인 ‘전쟁세력’으로 갈라치기 하면서 우리 유권자에게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환상을 심으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수십 년 계속돼 온 대남 정치공작의 일환이다.

상투적 선거 개입에 대한 우리 국민의 무관심으로 북한의 공작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구시대 우파 진영의 ‘색깔론’과 마찬가지로 해묵은 좌파 진영의 ‘평화론’ 공세에도 유권자들은 별 관심이 없다. 걱정은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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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도발의 유형

북한이 대남 정치공작에 빈번히 사용하는 군사도발 위협에는 정형화한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협상 상대방에게 전쟁의 공포를 주입해 양보를 얻어내는 소위 ‘벼랑끝 전술’. 이는 구소련 스탈린 시대부터 전해오는 공산국가의 전통적 협상술인데, 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주인공 페트루치오처럼 고도의 과장된 무모성 코스프레가 성공의 관건이다. 대표적 사례는 북한이 1994년 한반도 핵위기 당시 남한과의 핵 협상에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것, 같은 해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도 ‘한반도 전면전’을 거듭 위협해 양보를 얻어낸 것 등이다.

둘째, 한국 내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전쟁 위협을 조성함으로써 친북 성향 정치세력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선거공작이다. 북한이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인민무력부장 명의로 한반도 전쟁위험을 경고하고 판문점에 무장병력과 중화기를 반입해 무력시위를 벌인 게 대표적 사례다. 2002년 대선 일주일 전 영변 핵시설 동결 파기를 선언하고 제2차 한반도 핵위기를 조성한 것이나, 2008년 제18대 총선 열흘 전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위협하는 담화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길들이기 차원의 군사적 위협 공세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2주일 만에 발표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과 제1차 한반도 핵위기 조성,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시작된 북한의 정전협정 폐지 위협, 북한군 전시상황 돌입 선언, 평양 주재 외국 공관 철수 권고령, 서울 주재 외국인 대피 촉구 등이 있다.

◇허상과 실상

북한의 이런 군사도발 위협 유형들은 목적과 형태가 각기 다르지만 두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외양상 무모하고 과격해 보이는 전쟁위협 공세는 상대방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장된 무모성일 뿐이며, 그 이면에는 상당히 냉철하게 계산된 책략이 자리 잡고 있다.

둘째,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이 아무리 험악할지라도 이는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고압적 협상 전략의 일환이므로 무력사용 위협이 실질적 무력행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이 실제로 강행된다면 오히려 우파 진영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주는 역풍이 초래될 것이 뻔하므로 북한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1997년 대선 직전에는 그런 점에 착안한 보수 정치권 일각이 북한과 접촉해 판문점에서의 총격 도발을 의뢰한 이른바 ‘총풍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도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군사도발이 있으리라는 설이 파다했으나, 당시 이미 일상화했던 미사일 도발 외의 별다른 도발은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이 노골적인 대형 군사도발과 폭파공작을 벌였던 1983년 양곤(아웅산) 폭탄테러, 1999년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모두 대선·총선 등 선거와 무관하고 별다른 무력도발 위협도 없던 시기에 예고 없이 발생했다. 1987년 대선을 17일 앞둔 시점에 북한에 의한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김현희 사건)가 일어났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게 아니라 서울올림픽 개최 저지가 목적이었다.

◇한국의 대응

북한이 대남·대미 관계에서 남발하는 과장되고 상투적인 전쟁 위협의 본질을 양국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고, 이를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 위협이 극심했던 시기는 1994년 제1차 한반도 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약 1년의 기간이었다. 1994년 외교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통한 경제 제재 추진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유엔 안보리 회부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면서 선제적 대남 전면전 단행으로 위협했다. 북한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미국은 안보리 회부에 앞서 만일에 대비한 전쟁 준비를 갖춰 갔고,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한국 정부는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미국은 무방비 상태에서 안보리 제재를 강행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결국 이를 포기했고, 이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의 최초 골든 타임은 날아가 버렸다.

그 후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의 전쟁 위협은 허구적 실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1994년의 실책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전쟁 위협에 굴복한 나쁜 선례를 만들었고, 그 후 북한이 전쟁 위협을 상습적으로 남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4년과 대조적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엔 한국이 북한의 집요한 전쟁 위협에 굴하지 않고 내내 정면 대응했는데도 북한에 의한 무력 도발은 거의 없었다.

◇공포와의 대결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번갈아 외치고 있는 대남 무력도발 위협이 현실화할 가능성 여부가 최근 주요 관심사다. 북한이 제정신이라면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의 일상적 무력도발 위협이 현실화하는 순간 북한의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성에도 불구, 북한이 대남 무력도발 위협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유엔 제재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과 통치체제 동요,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잊혀가는 데 따른 불안감 속에서 그 외엔 마땅히 내세울 카드가 없는 절박한 현실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의 상습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북의 무력 위협에 속거나 굴복하지 않고 군사적 도발을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정치적 의지와 군사적 대응 태세다. 이는 북한과의 대결인 동시에 우리 내부의 공포심과의 대결이기도 하다.

세종연구소 이사장·전 외교부 북핵대사

■ 용어설명

‘서울 불바다’는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한 박영수 대표단장이 한 말. 그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된다”고 협박.

‘1차 한반도 핵위기’는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1994년 제네바 합의까지 이르는 핵위기. 2차 핵위기는 2002년 켈리 미국 특사단의 평양 방문 이후 2006년 첫 핵실험까지의 핵위기.

■ 세줄요약

군사도발의 유형 :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이 지속됨. 대남 정치공작에 빈번히 사용되는 북 군사도발 위협에는 ①벼랑끝 전술 ②선거철 공작 ③새 정부 길들이기 위협 등이 있어.

허상과 실상 : 북 군사도발 위협에 두 개 공통점 있음. 첫째 상대방의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과장된 무모성이라는 점, 둘째 상대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협상 전략이어서 대개 실질적 무력행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공포와의 대결 : 북의 실제 군사도발은 선거철과 무관하게 예고 없이 발생. 선거철 도발 위협은 과장된 무모성이며, 경제난과 체제 동요를 가리기 위한 것. 공포심을 이겨내고 단호히 응징한다는 의지와 대응 태세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