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사들의 처참한 실패[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3-12 11:37
  • 업데이트 2024-03-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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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사회부 차장

4년 전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특정 정당에 판사 출신 3명이 동시에 영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영입 인재 20명을 발표했는데 그중 3명이 전직 판사였다. 이탄희·이수진·최기상 전 판사가 대상이었다. 이 중 이수진·최기상 전 판사는 출마자 공직 사퇴 시한 직전 퇴직해 사실상 현직 판사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른바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 1년 정도 지났던 당시 민주당은 적폐청산 분위기를 유지한 채 선거를 치르려 했다. 판사들을 탄압한 전 정권, 당시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의도였다. 영입된 전 판사들은 양승태 체제의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입법부 진출을 선언했다. 사법부를 떠나 입법을 통해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게 정치권 진출의 변이었다.

판사의 정치권 직행 논란은 당연히 들끓었고, 이수진 전 판사에 대해서는 자격 시비도 있었다. 스스로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관리하던 ‘블랙리스트 판사’라고 소개했지만, 이 명단에 없다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선거 전부터 거짓말 의혹이 나왔지만, 민주당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수진 후보를 나경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 저격수로 낙점하고,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했다. 여성 판사 출신 대결로 흥행 요소를 만들어 당력을 총집중했고, 당선의 결과를 얻었다. 이탄희·최기상 전 판사도 수도권 지역에 전략공천돼 의원 배지를 달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이수진 의원은 민주당에서 공천 배제돼 탈당했고, 이탄희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탄희 의원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4개월 동안 국회를 비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기상 의원만 재선 도전의 기회를 얻었지만, 사법개혁의 ‘아이콘’ 이미지는 퇴색됐다. 사법개혁의 성과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 동안 재판 지연 문제는 더욱 심해졌고, 판사나 국민이나 모두 불만만 늘어 갔다. 사법개혁을 말하기 전에 사법부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판사 지원 가능 법조인 경력을 낮추고, 판사 정원을 늘리는 법부터 통과시켜야 했다. 판사 출신들이 주도했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은 이미 사직한 사람에 대한 ‘부관참시’에 불과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를 자처했던 판사들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칠 때쯤 ‘가해자’로 지목됐던 양 전 대법원장에게는 1심 무죄가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판결문을 통해 이수진 의원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오히려 사법농단 사건으로 2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협조한 정황이 나왔다. 1심 판결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4년 전 이수진 의원은 허위 경력으로 영입됐고, 민주당은 문제가 될까 봐 애써 이 사실을 외면했다. 민주당은 효용을 다한 거 같은 이 의원을 제대로 된 대국민 설명도 없이 쳐냈다. 이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검사 정권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전직 판사·검사·경찰 출신들을 끌어모아서 또다시 심판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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