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 대한 시대적 물음[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2 11:43
  • 업데이트 2024-03-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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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스웨덴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나라다. 자율방역을 택했지만 전 국민의 약 0.2%가 숨졌다. 사망자는 이웃 나라 노르웨이의 5배에 달했다. 사망자의 90%가 70세 이상 노인이었는데 한 세대가 사라졌다고 평할 정도다. 정권도 휘청거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된 지난해 스웨덴 한 여론조사기관은 각 기관 신뢰도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1위는 병원이었다. 코로나19 방역엔 참패했지만, 의사를 향한 믿음은 견고했다.

이는 의사들 헌신으로 쌓은 결과다. 스웨덴 의사는 다른 나라에 견줘 상대적으로 박봉을 받는다. 전문의 연봉이 1억 원대다. 이들은 처우 문제로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의사들 스스로 환자 곁을 떠나는 집단행동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다. 스웨덴에서 의사가 되려는 이유는 돈이 아닌 소명의식이다. 의사들도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을 한다고 여겨 돈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평균 30분인 진료시간 내내 의사는 환자 얘기에 귀 기울인다. 환자가 진료실을 나서려는 순간에도 의사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노교수는 “마지막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개인 전화번호를 건넨 후 혹시라도 궁금하거나 알려줄 게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한다”며 “의사가 환자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마음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의사의 본질은 시대적 물음이 됐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겐 마지노선이란 걸 알면서도 병원을 떠났다. 의대 교수들도 곧 집단사직한다. 명분은 전공의 보호다. 환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불편한 장면은 여럿이다. 의사 커뮤니티엔 병원으로 돌아간 전공의 명단이 나돌았다.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파견된 군의관과 공보의를 겨냥한 업무거부지침도 올라왔다. 의사들 스스로 악마화됐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몇몇 의사는 포도농사를 짓거나 용접이나 배우겠다고 했다. 농사와 용접, 어느 하나 쉬운 직업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지엄한 일이다. 사회적 역할이 의사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직업이 제 역할을 다 해야만 사회는 온전히 돌아간다.

의사는 직업일 뿐 계급이 아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높은 연봉이 아니다. 의사집단이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층처럼 굴고 있어서다. 정부 대응 방식이 거칠어도 의사보다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와도 같다.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어린 의대생까지 나서 국민 생명이 걸린 정책을 좌우하려 든다. 의사들은 진 적이 없다. 그 승리는 환자 희생 위에 서 있다. 증원 규모가 500명, 1000명이었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4년 전 400명 증원을 추진할 때도 환자는 버려졌다. 환자의 아픔과 고통은 늘 논외다. 환자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입은 내상이 깊다. 의사에 대한 신뢰도 한동안 회복되기 힘들지 모른다. 한 의대 교수는 “의사들은 정부와의 ‘전투’에 이길지 몰라도 국민과의 ‘전쟁’에선 반드시 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있기에 의사는 일할 수 있다. 사회적 존경 역시 환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의사란 무엇인가. 국민이 묻고 있다. 직업 가치를 다시 세우는 건 의사들 몫이다. 이제 의사들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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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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