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꿰뚫어본 YS[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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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외교부가 지난 3월 말 공개한 비밀 해제 외교문서에는 1993년 10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우리는 핵무기가 없다”면서 “핵무기 제조 능력은 물론 제조할 이유와 동기가 없고 돈도 없다”고 밝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게리 애커먼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이 방북 당시 김일성과 나눈 이 같은 대화 내용을 청와대 예방 때 전하자 김영삼(YS) 대통령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라고 일축한 뒤 북한의 핵 개발 시도에 대해 위성 사진 등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고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나와 있다.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이 말년에 핵 집착을 접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미국 안보 전문가 조너선 폴락이 쓴 ‘출구가 없다(원제 No Exit)’(아산정책연구원, 2012)에는 저자가 중국 측 인사로부터 확인했다는 덩샤오핑(鄧小平)-김일성의 마지막 회동의 대화록이 소개됐다. 덩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핵은 포기해야 한다”고 하자 김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 후계자가 그런 의지를 가질지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김의 이런 태도는 덩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후 김정일이 핵 개발을 본격화하자 북·중 관계는 나빠졌다고 저자는 썼다. 폴락은 덩-김의 마지막 회동이 1994년이라고 했는데, 중국 측은 김의 마지막 방중이 1991년이라고 기록해 이 대화가 그때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그 후 비공개 회동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1차 북핵 위기 때 중재자로 나서 김일성과 담판했지만, 북핵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이후 김정일은 6자회담에 응하면서 2006·2009년 핵실험을 했고 김정은은 네 번 더 실험을 한 끝에 핵무기를 완성했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며 교란 전술을 폈고, 거기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북한은 핵 개발 의지·능력이 없다’(김대중), ‘북핵은 협상용’(노무현),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문재인)고 거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더러운 평화론”을 띄운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적당히 굽히고 살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YS에 이어 보수 대통령이 집권했으면 북핵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북한의 핵 사기극을 본능적으로 꿰뚫어본 YS와 애커먼 대화 관련 외교문서를 보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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