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으로 임한… ‘貧者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첫 방한[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4-04-29 08:58
  • 업데이트 2024-04-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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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1년 5월 어린이날을 앞두고 한국을 처음 방문한 테레사 수녀가 김수환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푸른색 띠를 두른 흰색 사리(인도 여성 전통의상)를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한 여인이 김포공항에 내렸다.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성경책이 들어있는 헝겊 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1981년 5월 3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훗날 이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공항으로 수녀님을 마중 나갔는데 어찌나 인파가 많이 몰렸던지 팔자(?)에도 없는 경호원 노릇을 해야 했다. 수녀님을 감싸 안다시피 하고 인파를 헤치면서 공항을 빠져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 한 신문기자가 ‘보디가드 김 추기경’이라고 썼다. 물밀듯 밀려드는 기자들과 환영객을 막지 않으면 70세가 넘은 150㎝ 단신 수녀님이 다치실 것만 같아 보디가드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3박 4일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테레사 수녀는 시종 자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호소했다. 서강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3000여 명의 청중을 향해 이렇게 역설했다. “굶주림은 빵, 즉 먹을 것뿐 아니라 사랑의 굶주림도 포함하며 헐벗음은 옷을 걸치지 못한 것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벗겨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가난한 이들을 이해하고 도와야 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후 테레사 수녀는 1982년과 1985년 두 차례 더 방한했다.

그는 1910년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인 부모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세인 1928년 아일랜드에서 수녀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인도로 건너가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46년 어느 날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아 콜카타 빈민가로 들어갔다.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극빈자, 고아, 죽음을 앞둔 사람 등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악취 나는 몸을 씻겨주고 먹이고 간호하며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마더 테레사’로 불렀고, 사랑의 선교회 활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앓아온 심장병으로 입원한 테레사 수녀는 평소 돌보던 환자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며 값비싼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고 자처했던 그는 평생의 소명대로 그 쓰임새를 다하고 1997년 9월 눈을 감았다. ‘빈자(貧者)의 성녀’로 추앙받았던 테레사 수녀는 선종 19년 만인 2016년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 인류에 깊은 감동을 준 그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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