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근거 내놓으라는 고법, 과도한 사법 개입 아닌가[사설]

  • 문화일보
  • 입력 2024-05-01 11:39
프린트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를 따져보겠다며 이달 중순까지 모집정원 승인을 보류하고, 관련 자료들을 제출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재판부가 소송을 심리하면서 소송 쌍방에 필요한 요구를 할 수 있지만, 정책 타당성 자체까지 따져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사법 개입으로 보여 우려된다. 특히 모든 행정 행위에 대한 사법 통제권까지 주장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를 연장하면 정책과 입법 모두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 결정에는 특정한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고려 사항 및 전문적 식견 등이 함께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30일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에서 “처분의 직접 대상자인 대학 총장이 법적 다툼을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국가가 의대 정원을 10만 명 늘리는 경우도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그런 결정은 사법적으로 심사·통제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했는데, 무리한 가정에 따른 논리 비약이 심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총장)으로 전공의 또는 의대생인 신청인들은 처분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 불과하다”고 각하했고, 다른 가처분 신청도 대부분 법원에서 각하된 것과 선명히 대비된다.

해당 재판부는 정부에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인적·물적 시설 조사를 제대로 하고 증원분을 배정한 것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예산이 있는지 등 현장실사 자료와 회의록도 제출하라고 했다. 이런 식이면 모든 정부 정책은 법원 심리를 받아야 한다. 특히 “법원이 사법통제를 못 하는 정부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사법부가 행정부나 입법부 결정에 너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법 자제(judicial restraint) 원칙에도 어긋난다. 법원 판결로 행정 결정을 쉽게 바꾼다면 헌법에 규정된 권력분립 원칙에도 배치된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인물들이 이끄는 행정·입법부의 정책 결정에 중대한 법적 오류나 명백한 법적 남용이 없는데도 법원이 개입하는 건 민주적 합법성에도 벗어난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