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벨트’ 전락한 사헬 지역… 마약·테러로 생지옥 방불[Global Window]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4 09:09
  • 업데이트 2024-05-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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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13일 니제르 니아메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니제르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 Global Window

사하라 사막 남쪽 주변
기니·니제르·차드 등 5600㎞
2020년 이후 쿠데타 8번 발생

경제난 국민들도 군부세력 지지
안보 구멍 속 코카인·총기 밀매
IS 등 극단주의 테러단체 돈줄

민주정권 요구 서방과 담 쌓아
美·佛 철수한 사이 러 끌어들여
테러 활동 남쪽으로 확대 조짐


서아프리카의 사헬(사하라 사막의 남쪽 주변) 지역이 잇단 군부 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혼란 여파로 마약 유통, 테러 등 범죄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헬의 질서와 안전 유지를 담당하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쿠데타 세력의 위협에 잇따라 병력을 철수하면서 안보에 구멍이 난 것이다. 그 틈을 타 테러 조직의 몸집은 더 비대해지고, 범죄 조직들이 활개를 치면서 사헬 위기가 아프리카 전체로 파급되고 있는 양상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헬 지역 군부세력은 민주주의라는 껄끄러운 소리를 하는 미국 등 서방 국가 대신 같은 권위주의를 내세운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러시아에 바라는 것은 미국 등 서방 국가가 민주주의 정권 복귀를 위해 군사적 개입을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방어 수준이어서 테러리스트들과 범죄 조직의 확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잇단 쿠데타에 정국 불안… 마약 밀매·테러 급증 = 사헬은 아랍어로 ‘가장자리’라는 의미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의 세네갈부터 동쪽 차드, 수단 중남부까지 포함된다. 서쪽에서 동쪽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6400㎞를 가로지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니제르 쿠데타로 기니에서 말리·부르키나파소·니제르·수단·차드를 잇는 사헬 ‘쿠데타 벨트’가 완성돼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는 지역이다. 그 길이는 5600㎞로 사헬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헬에선 2020년 이후 총 8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경제난에 시달려온 국민 상당수가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더 큰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쿠데타로 정세가 불안해지자 마약 밀매 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최근 사헬이 남미의 코카인이 유럽으로 유통되는 중간 기착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UNODC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리, 차드,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 사헬 국가에서 압수된 코카인은 1466㎏에 달한다. 지난해 중반까지 모리타니에선 2.3t의 코카인이 압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2013∼2020년간 연평균 13㎏의 압수량과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마약 거래는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주요 돈줄이 되고 있다. UNODC의 서부·중부 아프리카 지역 대표인 필립 드 안드레스는 “다양한 무장단체가 마약 밀매에 관여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계속 훼손되고 있다”며 “이는 무장단체가 무기를 구매해 분쟁에 지속해서 관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또 “돈세탁이 마약 밀매의 주목적이며 무장단체뿐만 아니라 일부 정치 엘리트와 지역사회 지도자들도 마약 거래에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고위층들이 마약 밀매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불법 마약 유통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마약 밀매로 이슬람 무장단체의 입지가 커지면서 테러 위험도 고조되고 있다.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지난 4월 나이지리아 아부자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테러 대비 회의에서 “현재 전 세계 테러 절반이 사헬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사헬 상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헬에서 테러가 증가하게 된 주원인은 조직범죄, 특히 총기들이 구멍 뚫린 국경을 넘어 밀수 및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테러리스트 집단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헬은 2010년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 이후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가 됐다. 민주화 운동이 내전으로 번졌던 리비아와 시리아 등으로 들어온 각종 무기, 각 지역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인근 알제리, 모리타니, 말리, 니제르 등으로 급속히 확산한 때문이다. 이후 사헬 지역에서 연쇄 테러 등 인명 피해가 쏟아지자,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며 지역 안정을 도모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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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정권 복권시킬라… 미국 등 서방국가에 철수 압박 = 쿠데타를 일으킨 사헬 국가들이 민주주의 정권 복귀를 요구하는 서방과 담을 쌓으면서 서방 국가의 대테러 작전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이다. 니제르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난달 19일 니제르에서 미군 1000명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니제르가 3월 미국에 군사협정을 파기한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군은 6년 전 사하라 사막 남부에 위치한 니제르 아가데즈에 1억1000만 달러(약 1500억 원)를 들여 드론 기지를 구축해 IS, 알카에다 연계 단체 등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의 무인 공격기 MQ-9 리퍼도 자국군 보호를 위한 감시 임무 외에는 대부분 지상에 머무르고 있다. 병력 철수 이후 이 기지에 미군이 어느 정도의 접근권을 가지게 될지 불분명한 상태다. 니제르에 약 1500명 병력을 배치하고 대테러 군사작전을 펼쳐왔던 프랑스도 지난해 12월 병력을 완전히 철수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헬 지역 국가들은 미국과 프랑스 등이 빠져나간 자리를 러시아로 채우고 있다. 이달 2일 로이터통신은 니제르에서 미군이 철수 중인 군사기지에 러시아 병력이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니제르 당국은 미 정부에 러시아군 약 60명이 니제르에 주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수는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에 바라는 건 미국 등이 쿠데타로 쫓겨난 민주주의 정권 복귀를 위해 자신들이 취약한 공중 공격을 가하는 상황을 막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프랑스 등의 철군으로 생긴 이 지역 안보 공백을 메꾸기는 역부족이 될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사헬 지역에서 벌어지던 테러 활동이 남쪽으로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엔 대테러국의 블라디미르 보론코프 국장은 “IS, 알카에다 그리고 연계 조직들이 사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남쪽 기니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레오나르도 산토스 시마오 유엔 서아프리카 특별대표는 “사헬 지역 국가들은 마약 밀매 네트워크를 해체하기 위해 조속히 국제사회와 함께 조율되고 포괄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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