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뒤떨어진 ‘대기업집단 지정’ 폐지 검토할 때 됐다[사설]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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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대기업집단 규제가 초래하는 역차별 논란이 뜨겁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5일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에 대해 모기업(쿠팡Inc)이 미국 회사이고, 사실상의 소유주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동일인(기업집단 총수)을 국내 그룹과는 달리 개인(김 의장)이 아닌 법인(쿠팡)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4년째다. 이날 발표한 2024년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이 88개로, 지난해보다 6개 증가한 가운데 쿠팡 순위는 45위에서 27위로 급상승해 특혜 논란이 더 커졌다.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것이란 지적이 타당해 보인다.

이번 대기업집단 지정에는 엔터테인먼트업체로선 처음으로 하이브가 포함된 것을 비롯, 카지노·관광업체인 파라다이스, 호텔·관광업체인 소노인터내셔널, 영원무역그룹 등 6곳이 새로 포함됐다. 신산업 확대 등 우리 경제와 기업의 다각적·지속적 성장을 반영한 결과로 환영할 일이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동일인 규제 문제에 국한하지도 않는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순간, 공정거래법과 이 법을 원용하는 42개 법률의 적용을 받아 무려 274개의 규제가 새로 적용된다는 게 한국경제인협회의 분석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는 수명이 다한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다. 1986년 도입된 것은, 개발 경제 시대의 후유증인 경제력 집중과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엔 나름의 필요성이 있었지만, 40년이 다 된 지금은 시대착오적 규제일 뿐이다. 경제 개방도가 91%나 돼 외국기업의 진입이 자유롭고, 국내 100대 기업을 봐도 매출액 비중은 45.6%(2020년), 특히 10대 기업의 비중은 고작 19.6%로 세계 하위권이다. 특정 기업에 휘둘릴 경제가 아니다. 중견기업들은 대기업집단에 안 들어가려고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증후군’에 빠진 지 이미 오래고, 대그룹도 연륜이 쌓여 이젠 3∼4세 경영이다. 부모와 자녀가 유산을 다투는 일까지 벌어지는 마당에 동일인 총수 한 명당 평균 70여 명이나 되는 친족의 주식 소유 현황 등 자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탁상 규제일 뿐이다.

더구나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은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주도권을 키우려고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는다. 기업 성장을 막고, AI 시대를 못 따라가는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의 폐지를 검토할 때다. 공정위는 사전 규제보다 독과점 방지, 경쟁 활성화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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