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날 15만6000명 투입[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4-06-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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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44년 6월 6일 디데이에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으로 향하는 상륙정의 미군 병사들. 위키피디아



■ 역사 속의 This week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오마하 해변. 상륙정에 몸을 실은 연합군 병사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해변에 닿은 상륙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독일군의 총탄에 병사들이 쓰러지고 차가운 바닷물은 피로 물든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부에 펼쳐진 전투 장면은 ‘지상 최대의 작전’으로 불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서유럽을 탈환하는 데 발판을 마련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암호명 ‘오버로드 작전’으로 불렸다. 이 작전은 1943년 11월 테헤란에서 열린 미·영·소 3국 정상회담에서 결정됐다. 이후 미국의 장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연합군은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다.

독일군은 이미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해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 ‘대서양 방벽’을 쌓아 놓고 있었다. 특히 파드칼레를 상륙지점으로 예상하고 병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실제 상륙지점은 그보다 아래 위치한 노르망디였다. 연합군은 고무풍선으로 만든 탱크, 나무로 만든 수송기 등 가짜 군 기지를 영국 남동부 지역에 설치했고, 거짓 정보를 끊임없이 흘려 파드칼레에 상륙하려는 것으로 보이도록 기만전술을 펼쳤다.

작전 개시일은 애초에 6월 5일로 정해졌으나 날씨 탓에 하루 연기됐다. 디데이(D-Day) 새벽에 연합군은 노르망디 해안 5곳에서 동시에 작전을 개시했다. 유타와 오마하에는 미군, 골드와 소드에는 영국군, 주노에는 캐나다군이 각각 상륙했다. 이날 하루에만 15만6000명이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1만2000대의 항공기와 7000여 척의 함정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은 4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포함해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배경인 오마하 해변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3000명에 달하는 미군이 죽거나 다쳤다. 연합군은 끝내 독일군 방어선을 뚫는 데 성공하며 교두보를 확보했고, 두 달 뒤에는 파리가 수복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역전시켜 연합국이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기려 매년 6월 6일 기념식을 치른다. 5년 주기로 상륙작전에 참여한 국가 정상들도 초대한다. 1984년 40주년에 상륙작전 당시 가장 높은 고지였던 프앙테 뒤 오크 절벽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린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가장 감동적인 노르망디 기념사로 꼽힌다. “이들은 프앙테 뒤 오크의 소년들이다. 절벽을 오른 사람들이다. 대륙을 해방시킨 챔피언이며, 전쟁을 끝내게 한 영웅들이다.” 올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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