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종족 포용하고, 선거엔 승복… 阿 민주주의 모범이 되다[Leadership]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0 09:00
  • 업데이트 2024-06-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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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왼쪽부터) 전 대통령, 아브두 디우프 전 대통령, 압둘라예 와데 전 대통령, 마키 살 전 대통령,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대통령. AFP 로이터 연합뉴스 테랑가뉴스



■ Leadership - 세네갈의 리더들

혈연 등 초월 통합이룬 상고르
복수정당제 기반 다진 디우프
의회에 불신임투표 도입 와데
3선 연임 제한 헌법개정한 살
올해 대통령된 44살 파예까지

역대 대통령 5명 중 野가 3人
안정적 정권교체, 타국 롤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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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군부 쿠데타에 ‘쿠데타 벨트’라는 오명을 얻은 아프리카 사헬(사하라사막의 남쪽 주변 국가) 지역에서 세네갈은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을 이어가며 역내 민주주의 모범생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사헬 지역에서는 잇단 쿠데타에 따른 정권 붕괴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하지만, 세네갈은 역사상 단 한 차례 쿠데타만 있었고 이마저도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했다. 또 역대 5명의 대통령 중 3명이 야당 정치인일 정도로 투표에 의한 안정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소수 민족 출신 초대 대통령 상고르, 협치 리더십으로 민주주의 토대 만들어 = 세네갈의 민주주의는 초대 대통령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의 지도력에서 시작됐다. 세네갈은 1960년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프랑스 유학파인 상고르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서구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자국에 이식시켰다. 제도적으로는 의회주의, 이념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했다. 특히 상고르 전 대통령은 편향되지 않는 통합 정치를 추구했는데, 이는 당시 세네갈의 종교 및 문화적인 구조도 영향을 끼쳤다. 가톨릭 출신인 상고르 전 대통령은 인구 절대다수가 무슬림(95%)인 탓에 이슬람 세력과 화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그는 인구 절반가량인 월로프족(45%)이 아닌 세레르족(14%) 출신이었기에 혈연을 기반으로 한 정치 세력을 형성할 수도 없었다. 이에 상고르 전 대통령은 대화와 설득을 통한 협치를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로 뒀다. 이는 세네갈이 내분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었던 초석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세네갈을 민주주의 국가로 이끌던 상고르 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마두 디아 당시 총리가 상고르 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1962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디아 전 총리는 총리 권한으로 군대 일부를 동원해 국회의사당을 봉쇄했다. 디아 전 총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상고르 전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에 친화적인 외교정책도 반대했다. 하지만 국회의사당 봉쇄 소식을 들은 상고르 전 대통령은 즉각 군을 동원해 디아 전 총리를 비롯해 그의 측근들을 체포하고 반역죄로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세네갈 국민이 상고르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진압 과정에서 유혈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고르 전 대통령은 이후 쿠데타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통령 권력을 강화해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듬해 개헌을 통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 대통령이 직접 총리를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정국이 안정을 되찾자 상고르 전 대통령은 1976년 제한적 정당제를 도입하며 정치적 다양성에 물꼬를 텄다. 자신이 속한 사회당 외에 자유당과 마르크스 레닌주의당을 허용해 3당 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1980년 상고르 전 대통령은 당시 총리인 아브두 디우프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하며 20년 만에 사임을 택했다.

디우프 전 대통령은 개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해 1981년 복수정당제를 도입했다. 1983년 총선에 앞서 14개 정당의 설립을 승인했다. 다만 그해와 1988년 총선까지는 집권당 사회당과 민주당 외에 어떤 정당도 의회에 진입하지 못해 공고한 양당 체제가 지속됐다. 복수정당제 효과는 1993년 총선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당에서 탈당한 지보 레이티 카가 군소정당들과 연합해 신민주연합을 창당, 총 120석 중 11석을 확보해 교섭단체를 구성한 것이다. 신민주연합의 등장은 기존 양당 체제를 타파한 세네갈 민주주의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또 디우프 전 대통령은 1998년 프랑스식 양원제 모델을 참고해 상·하 양원제를 도입하며 의회 구조도 개혁했다.

실질적 민주화를 이룬 디우프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도 평화적인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1985년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의장직을 수임하면서 아프리카 단합에 주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문제, 차드·리비아 분쟁, 서부 사하라 분쟁 등에 중재자로 나서며 활발한 외교 활동을 전개했다. 1992부터 1993년까지 OAU 의장을 맡았으며, 이후 서아프리카국가경제공동체(ECOWAS), 이슬람회의기구(이슬람협력기구), 15개국 개도국 그룹(G-15) 의장직도 역임했다.

◇와데와 살, 권력욕 내비쳤으나…승복의 리더십으로 권력 이양 = 2000년은 세네갈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집권당이 바뀐 역사적인 해로 남아 있다. 민주당 소속 압둘라예 와데 후보가 대선에서 디우프 전 대통령을 꺾고 사회당 정권의 40년 아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디우프 전 대통령은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결선투표에서 와데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포용의 리더십을 갖춘 디우프 전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고 평화적인 권력 이양 전통을 계승했다. 대선 승리로 취임한 와데 전 대통령은 이듬해 개헌 국민투표를 거쳐 상원을 전격 폐지하며 정치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상원과 하원의 계속되는 대립으로 정국 교착이 심화해 국정 동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와데 전 대통령은 상원 폐지로 여유가 생긴 예산을 청소년 교육 예산을 늘리는 데 사용했다. 또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의원내각제 요소를 일부 도입해 의회에 불신임투표를 통해 내각 인사의 제명권을 부여했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 당적 변경 시 의원직을 박탈하게 하는 등 정치적인 안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와데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원칙을 깨는 등 권력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2007년 임기 말기에 헌법을 바꿔 차차기 대통령부터 임기를 다시 7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상원도 부활시키며 일관성 없는 정책 변경으로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2년 와데 전 대통령은 3연임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대선에 나섰다. 실망한 세네갈 국민은 투표로 심판했다. 공화국연합당의 마키 살 후보가 20%포인트가 넘는 격차로 와데 전 대통령을 누른 것이다. 와데 전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며 대선 결과에 승복했고 다시 한 번 정권이 교체됐다.

살 전 대통령은 정책 추진력을 위해 상원을 폐지하며 단원제로 재차 전환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2016년에는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3선 연임 제한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민투표 찬성률은 62.6%에 달했다. 살 전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2019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살 전 대통령도 임기 만료가 가까워지자 와데 전 대통령과 같이 권력욕을 드러냈다. 3연임 제한 규정은 자신의 첫 임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 여론이 커지자 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을 불과 3주 앞두고 돌연 대선 연기를 발표했다. 여당이 장악한 입법부도 대선 날짜를 12월 15일로 대폭 미루기로 의결했다. 살 전 대통령의 집권 연장 의도에 반발한 야권과 시민들은 반대 시위에 나섰고,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일부 시위자들이 숨지는 등 혼란이 일어났다.

결국 사법부가 살 전 대통령의 폭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헌법위원회는 “현행 헌법상 대선은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만료(4월 2일) 이전에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며 대선 연기는 물론 대통령 임기 연장 모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살 전 대통령은 국민 대화를 소집해 6월 2일 대선을 치르는 안을 내놨으나 헌법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살 전 대통령은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해 대선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삼권분립 등 세네갈의 오랜 민주주의 전통이 권력 견제를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결국, 혼란 끝에 열린 3월 대선에서 ‘야권 신성’인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후보가 3월 여당의 아마두 바 후보를 상대로 압승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외신들은 선거 불복, 권력 세습, 쿠데타가 난무하는 아프리카에서 세네갈은 민주주의 모범생답게 민주적 절차에 따른 원만한 권력 이양을 이어갔다고 평가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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