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시작점은 만주사변”…다시 쓰는 ‘제국주의 연대기’[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4-06-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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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리뷰

피와 폐허│리처드 오버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라도 부활한 듯 글로벌 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복원했고,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는 미국은 이 같은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세계 최고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 책의 번역 출간이 시의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연구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이제는 역사 속에서 퇴장했던 제국주의를 다시 불러냈다. “종래의 전쟁 연대기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면서 통설로 자리 잡은 2차 대전의 연표(1939∼1945년)와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의 이분법적 도식을 뒤집고 새로운 맥락을 부여했다. 제국주의적 맥락에서 2차 대전의 연표를 ‘1931∼1945년’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1931년은 ‘만주사변’이 벌어진 해이다. 일본 관동군이 중국 류타오후(柳條湖)의 한 선로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자작극을 일으켜 만주를 침략했던 일이다. 일본 제국주의 팽창은 1945년 항복 선언 직전까지 계속됐다. 만주사변에 자극받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1935년 에티오피아 침공을 지시했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은 ‘제국 프로젝트’로서 군사 재무장에 돌입했다. 만주사변이 20세기 초 제국주의 확장의 시작점이었다.

2차 대전은 자유주의·전체주의 진영의 대결이 아니라, 제국을 지향하는 신구 세력 간의 충돌로 새로 규정된다. 미국·영국 등에 밀려 경제난을 겪고 있던 독일 등의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해석이다. “소국들로서는 존속 자체를 위협받지 않으려면 저마다의 경제 블록을 형성하거나 강력한 국가를 세우기 위해 최대한 투쟁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아리타 하치로(有田八郞)의 발언이다. 나치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은 독일 민족에게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던 한 영국인에게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제국을 원한다.”

삼국동맹 국가들이 제국주의에 몰두한 데에는 추격 의식이 깔려 있었다. 식민지를 ‘생존공간’이라고 칭했던 독일·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확장을 추진했다. 특히 히틀러 정권은 독일보다 프랑스는 22배, 네덜란드는 60배, 벨기에는 80배 더 넓은 생존공간을 갖췄다며 국민의 초조감을 조장했다. 거기다 1930년대 미국의 외국 수입품 차단, 영국의 자유무역 포기, 프랑스의 식민지 관세 축소 등 ‘이기적 선택’들이 제국주의를 자극했다.

“유일한 문제는 제국주의가 평화롭게 묻힐지 아니면 피와 폐허 속에 묻힐지의 여부다.” 1928년 정치·경제학자 레너드 울프의 이 문장에서 책 제목을 따왔다고 저자는 밝혔다. 그 문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았다. 전 2권 1474쪽, 7만6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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