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짜리 청약 만점 통장[김영주 기자의 부동산 깊이보기]

  • 문화일보
  • 입력 2024-07-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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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청약은 나올 때마다 대중의 가슴을 뛰게 한다. 친구들끼리, 직장 동료끼리도 “너도(넣었지)?” “야 나도(넣었어)!” 같은 농반진반 대화가 이어질 정도다. 하지만 일반 분양 물량이 한 줌이고 대기자들은 많아 당첨 확률은 말 그대로 로또다. 그럼에도 판돈이 점점 커지니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뜨겁다. 지난해 5억(용산구 호반써밋에이디션), 올해 초 10억(서초구 메이플자이)에 이어 이번 7월엔 20억(서초구 원펜타스) 차익이 기대된다.

기회는 7할의 운과 3할의 노력에서 온다고 했던가. 원펜타스 청약엔 막대한 시세 차익에 걸맞게 84점짜리 만점 통장이 다수 등장할 것이다. 70점대 후반은 돼야 당첨 안정권이다. 그렇다면 만점짜리 통장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무주택 기간(32점)과 청약 통장 가입 기간(17점)이 각각 15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건 시간의 힘을 빌리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부양가족에서 만들어진다. 세대주 본인을 제외하고 6명의 부양가족(35점)이 있으면 만점이 완성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빠졌다. 전용 84㎡ 국민 평형의 경우 최소 분양가 22억 원(추정)의 절반인 11억 원의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 나머지 절반을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하더라도 대출 규제에 따라 연봉이 적어도 1억6000만 원은 돼야 한다. 인생 역전의 행운을 거머쥔 일반 청약 당첨자들은 긴 세월 무주택자로 아이 넷을 낳고 무주택인 양가 부모님을 최소 3년 이상 모시고 살며 고연봉 일자리를 갖고 10억 원이 넘는 자산을 모은데다 운까지 따라준 것이다. 혹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거나.

이것이 공정한 자원 배분의 방식인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주택 부족 문제 대응이라는 청약제도의 취지와도 동떨어지고 ‘당첨만 되면 몇억’이란 대중의 사행심 가득한 시선에서 알 수 있듯 분양가상한제가 부동산 시세를 떨어뜨리지도 못해서다. 한 줌 청약 당첨자들에게 막대한 시세 차익을 안기는 대신 정비사업의 사업성을 떨어뜨려 새 아파트 공급을 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다.

분양가상한제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에만 적용해야 한다. 부자가 에르메스 백을 산다는데 정부가 가격을 정한다. 가격이 싸서 구매 대기 줄이 길어지니 번호표를 나눠주고 ‘가방이 한 개도 없는 사람부터’ ‘짐이 많은 사람부터’ 구매 기회를 주는 건 아무래도 기이하다.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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