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청포도’를 읽는 까닭[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 입력 2024-07-05 11:39
프린트
장석주 시인, 前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투옥·고문 겪고도 쓴 ‘청포도’
육사의 심성 얼마나 고왔을까
깨끗한 언어로 희망을 담은 詩

우리네 마음 행복하게 만들어
이 향그러운 시를 흠향하며
무덥고 습한 7월을 건너가자


한낮 땡볕에 아스팔트가 녹고, 지열을 견디지 못해 작물의 잎들은 누렇게 변한다. 매미 떼의 합창으로 숲은 시끄럽고, 정원 식물들이 끓는 물에 데쳐낸 듯 늘어질 때 검은 구름이 몰려와 후두두 빗방울을 쏟아낸다. 비 그친 뒤 습지에서 우는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미끄러운 그 몸통을 쥐던 어린 손과 맹꽁이의 지독한 쉰내를 떠올린다. 불볕더위와 습한 날씨 속에서 훌쩍 자란 텃밭의 옥수숫대에 옥수수는 어느덧 통통해져 붉은 수염을 늘어뜨린다.

여름 나기를 하면서 서가에서 이육사 시집을 꺼내와 읽는다. 육사가 항일투사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가 서른아홉 해의 생애에서 옥살이만 17번이나 한 사실은 모른다. 본명 이원록,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안동 출생이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무장 투쟁에 나선 열혈 시인! 그는 1929년 5월 중외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하며, 1930년 1월 3일 ‘말’이란 시를 조선일보에 내놓으며 시인으로 활동한다. 1932년 5월 말 중국 펑톈(奉天)을 거쳐 난징(南京)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한다. 28세 때다.

이듬해 4월, 육사는 폭탄과 탄약, 뇌관 제조법을 배우고 군사정치학교를 졸업했지만 난징을 바로 떠나지 않는다. 봄비가 잦은 이국 도시 여관살이란 한적하고도 쓸쓸했다. 육사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거나 그도 아니면 고책사(古冊肆)나 골동점에 드나드는 것을 일삼으며 한 달 남짓을 한가롭게 보낸다. 난징의 한 골동점에서 비취 인장을 구해 ‘칠월이면 화성이 서쪽으로 흐르고’로 시작하는 ‘시경’의 ‘빈풍칠월’이란 시구를 새기고 그걸 잘 때도 품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1933년 9월 10일, 상하이(上海)에서 귀국 전 벗들과 ‘최후의 만찬’을 치른 육사는 군사정치학교에 동반 입소한 벗에게 우정의 표시로 그 인장을 건넨다.

역사학자 도진순은 육사의 시를 “난(蘭)과 검(劍)의 아름다운 합일”을 노래한 거라고 정의한다. 난과 칼의 어우러짐이라니! 육사는 ‘절정’이라는 시에서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무지개와 강철같이 상호 충돌하는 두 이미지를 합일하는 것으로 매조졌다. 루쉰의 소설 ‘고향’이나 번역하며 소일하던 그가 ‘실로 천대받을 만큼 건강한 몸’에 폐결핵 균이 침윤한 걸 안 것은 1941년 늦여름이다. 경주로 요양 여행을 떠나지만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는 시골 의사의 권고에 따라 서울로 올라와 성모병원에 입원한다. 그의 생은 섬광같이 빛나며 흘러갔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혀 베이징(北京)으로 압송당한 육사는 이듬해 1월 16일, 한겨울에 그곳 일본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옥사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청포도’)

그는 얼마나 고운 심성이기에 투옥과 고문을 겪고서도 ‘청포도’같이 참하고 깨끗한 시를 썼을까? 해원과 목가적 희망을 담은 시, 먼 데서 오는 손님을 환대하는 염원을 담은 이 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청포도’를 곰곰이 읽으면 청포도, 푸른 바다, 청포 같은 청색 계열과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같은 백색 계열의 색조 대비가 선명해지며 청량한 정서를 자아낸다. 하늘 밑 푸른 바다는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는 밀려오는데, 그 돛단배를 타고 오는 손님, 먼 데서 청포를 입고 오는 손님은 누구일까?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온다고 했으니, 휴식이 필요할 테다. 손님을 맞아 청포도를 따 먹으며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았겠다. 아이에게는 손님 식탁에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라고 이른다.

요즘에야 흔해졌지만, 포도는 근대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외래 과일이다. 1900년 남프랑스 출신의 콩베르 신부가 경기 안성에 정착할 때 프랑스산 포도를 미사용으로 들여왔다. 정작 육사의 고향인 안동 일대에는 포도원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육사가 ‘청포도’를 창작한 시기는 1937년 7월, 혹은 이듬해 여름쯤으로 짐작될 뿐 정확지는 않다. 그가 친구를 따라 포항의 미쓰와포도원을 다녀온 뒤 이 시를 착상했을 거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올여름엔 울릉도를 다녀올거나. 대관령 독일가문비나무 숲의 서늘함 속에 몸을 숨길거나. 아니다. 다들 피서를 떠나 텅 빈 도시를 지키며 점심에는 채 썬 오이를 고명으로 얹은 콩국수라도 사 먹자. 그러면 입맛이 돌아올까. 저녁엔 애호박을 썰어 듬뿍 넣은 수제비를 먹고, 가족과 둘러앉아 입가심으로 수박화채라도 떠먹자. 반딧불이가 군무를 추는 아름다운 여름밤은 허투루 보내기 아까우니 ‘청포도’를 읽자.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박토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려던 육사! 노래의 씨앗들 중 몇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리. 검의 기운과 난초의 청초한 향기가 어우러진 그의 시에 경의를 표하면서 ‘청포도’를 읽자. 이 ‘향그러운’ 시를 천천히 흠향하며 무덥고 습한 7월을 건너자.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 前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