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읽씹’은 권력투쟁 산물… 韓과 尹,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넜다[허민의 정치카페]

  • 문화일보
  • 입력 2024-07-09 10:01
  • 업데이트 2024-07-09 15:43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허민의 정치카페 - 한동훈은 왜 ‘읽씹’ 했을까

韓, 비대위원장 전부터 총선까지 尹과 4번 충돌… ‘읽씹’은 윤-한 갈등 흐름 속의 에피소드
대권 조언그룹, ‘대통령과 차별화’ 꾸준히 권고… 韓, 용산과 얽히기 거부·마이웨이 선언한 것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 집권당 표심을 뒤흔들고 있다. 주된 논란은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 시절인 지난 1월 김 여사의 5차례나 되는 메시지에 ‘노 답’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적절성 여부다.

검사 시절엔 김 여사와 수백 차례나 문자를 주고받았던 한 후보는 이번엔 왜 ‘읽씹’으로 일관했을까. 이는 한 후보 주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끊임없이 차별화할 것을 주문하는 대권 자문그룹의 조언, 그리고 지난해 말 이미 시작된 윤-한 간 권력투쟁의 흐름과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흐름과 맥락

윤-한 충돌은 지난해 12월 26일 한동훈 비대위원장 추대 전부터 시작됐고, 총선 때까지 모두 4차례나 있었다.

1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 윤재옥 원내대표가 용산에 ‘비대위원장 선호도 여론조사’ 결과를 알린다. 김한길·원희룡·한동훈 3인을 놓고 조사한 결과, 한동훈이 앞선다는 내용이었다. 이 와중에 한 위원장은 12월 19일 김건희 여사 디올백 논란과 관련, “법 앞에 예외는 없다”면서 ‘총선 후 특검’론을 폈다. 용산은 사뭇 당혹했지만 ‘비대위원장=한동훈’ 대세론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이게 첫 번째 충돌.

올해 들어 새해 벽두부터 여당 비대위원들 일각에서 ‘김건희 사과론’이 불거지자 김 여사는 한 위원장에게 “모든 게 제 탓” 등 내용이 담긴 두 개의 문자를 보냈다(1월 15일). 이틀 뒤(1월 17일)엔 한 위원장 측근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한 위원장은 “김경율이 잘못한 게 뭐냐. 우리 당이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사람”이라고 옹호했다. 한 위원장은 김 여사의 세 번째 메시지(1월 19일)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이에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찾아와 “대통령의 지지 철회” 뜻을 전달했고(1월 21일), 한 위원장은 “당무 개입”이라고 맞받았다. 두 번째 충돌이다.

세 번째 충돌은 3월 20일 발표된 총선 비례 의석 명단을 놓고 발생했다. 상위 순번에 친한계 인사들이 집중 배치되자 용산은 ‘한동훈이 당을 접수하려 한다’고 부글부글 끓었다. 네 번째 충돌은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4월 1일) 직전 비대위원장 사퇴 배수진을 치고 ‘의대 증원 유연화’를 요구하면서 일어났다. 대통령이 담화에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자 한 위원장은 부산 유세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숫자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용산을 직격했다.

◇왜 ‘읽씹’ 했을까

새해 벽두부터 여당 비대위 일각에서 제기된 김건희 여사 ‘사과 필요론’은 ‘사과 불가’ 생각이 확고했던 윤 대통령의 입장과 충돌했다. 당시 윤 대통령 생각은 한 달 뒤 KBS 신년 특별대담(2월 7일)에서 디올백 이슈에 대해 “몰카 정치공작”이라며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주장한 데에서 확인된다.

김 여사는 결국 한 위원장에게 직접 의견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여권 핵심 인사 A 씨는 “김 여사가 한동훈 비대위의 사과 필요 입장과 대통령의 사과 불가 사이에서 고민하다 한 위원장에게 직접 뜻을 묻는 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1월 15일 두 차례, 19·23·25일 한 차례씩 모두 5번의 문자 메시지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김 여사의 사과 여부가 총선 최대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한 위원장은 왜 ‘읽씹’ 했을까. 이는 한편으로는 비대위원장 추대 직전부터 시작됐던 윤-한 충돌의 흐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위원장 주변에서 조언해주는 자문그룹의 존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알려진 조언자로는 기존 정치권 외 인물로 진중권 작가와 김경율 회계사 등 ‘조국흑서’ 멤버들이 있다. 사회 원로 가운데에는 진보언론 프레시안 창업자인 이근성 전 대표와 진형구 전 대전고검장 등이 꼽힌다. 이 전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1974년) 주모자였고, 진 전 고검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고속 승진한 후 17대 총선 때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까지 준비했던 인물이다.

두 조언자는 인맥으로도 얽힌다. 이 전 대표는 한 후보의 이모부, 진 전 고검장은 한 후보의 장인이다. 이들은 차기 대권 플랜 구상 속에서 한 후보에게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 측은 이에 대해 “한 후보는 이 전 대표와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고 장인과는 정치적 문제를 상의하는 사이가 아니다”고 밝혔다.

◇관점과 해석

문자 ‘읽씹’ 사건을 보는 관점과 해석은 계파별로 다르다.

첫째, ‘읽씹’의 적절성 평가. 한 후보와 친한 인사들은 디올백 사과 문제는 김 여사와의 개인적 의논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고 공적 채널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는 의견이지만, 비한 측은 오래 알고 지낸 김 여사가 자존심을 굽혀가며 정중하게 보낸 글에 읽고 답하지 않은 건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적절치 않았다는 입장이다.

둘째, 김 여사의 사과 의지가 있었느냐는 논란. 친한 측은 메시지 곳곳에 사과에 대한 김 여사의 부정적 생각이 배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비한 측은 김 여사가 ‘위원장의 뜻에 따르겠다’고 강조했을 뿐 아니라 사과하도록 설득하는 게 집권당 비대위원장의 역할이었다고 강조한다.

셋째, ‘읽씹’이 총선에 미친 영향. 친한 측은 윤 대통령의 국정 실패로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지 메시지에 무대응한 게 패인은 아니라는 주장이나, 비한 측은 총선의 최대 쟁점이었던 디올백 문제에 대한 사과 기회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했다는 판단이다.

넷째, 한 후보의 “공적 채널 소통” 주장의 적실성. 친한 측은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은 물론 언론 인터뷰나 당 공식 회의 등을 통해 전달한 얘기도 공적 채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비한 측은 한 후보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 채널과 이 문제와 관련한 소통은 거의 없었다는 주장이다.

다섯째, ‘읽씹’ 사건이 전대에 미칠 유불리. 발생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메시지가 공개된 것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한 후보 측으로 결집할 거란 친한 측 계산과 ‘한동훈=배신자’론이 부각됨으로써 한 후보 측 지지자 내에서 집단 이탈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한 측 관전법이 충돌하고 있다.

◇적대와 경멸

‘읽씹’ 이후 한 후보의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시선은 더 거칠어졌다. ‘적대’와 ‘경멸’이 점증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 부부와 일체화하는 순간 차기 대권은 없다는 판단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과 윤, 둘은 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동과 서,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는 키플링의 예언처럼.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조국흑서’는 진중권·서민·김경율·권경애 등 진보 인사들이 조국을 비판하며 2020년 8월 출간한 책. 원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였지만 ‘조국흑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짐.

‘KBS 신년 특별대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디올백 논란에 “몰카 정치공작”이라며 사과 요구를 피해감. 그는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언급.

■ 세줄 요약

흐름과 맥락 : 윤-한 충돌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추대 전부터 시작됐고, 총선 때까지 모두 4차례 진행돼. 한동훈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사건은 지난 연말 이미 시작된 윤-한 권력투쟁의 흐름과 맥락 속에서 읽어야.

왜 ‘읽씹’ 했을까 : 한동훈의 조언자로는 진중권·김경율 등 진보 출신 인사들과 이근성·진형구 등 사회원로가 꼽힘. 한동훈의 ‘읽씹’은 대통령과 끊임없이 차별화할 것을 주문하는 이들 대권 자문그룹의 조언과 관련돼.

적대와 경멸 : ‘읽씹’을 보는 관점과 해석은 계파별로 다름. ‘읽씹’ 이후 한의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시선은 더 거칠어져. 이들과 얽히는 순간 차기 대권은 없다고 판단한 듯. 한과 윤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허민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