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킹메이커 거쳐 재난 한복판에… 그의 ‘마지막 사투’[故 이선균 유작 ‘탈출’]

  • 문화일보
  • 입력 2024-07-10 09:13
  • 업데이트 2024-07-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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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청와대 행정관 차정원(이선균)은 딸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분투한다. CJ ENM 제공



■ 故 이선균 유작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 12일 개봉

연쇄 추돌·실험견 공격…
붕괴위기 공항대교 배경
생존위해 뛰는 행정관役

‘끝까지 간다’ ‘하얀 거탑’
출연작 속 캐릭터 스쳐가

또다른 유작 ‘행복의 나라’
정보부장 열연, 내달 개봉


“끝까지 함께해주지 못해 미안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남편이 사별한 아내가 남긴 동화책 속 자필 메모를 읽는다. 극 중에선 분명 죽기 전 동화책을 쓴 아내가 살아 있는 남편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지만, 관객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스크린 속에 보이는 인물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선균이고, 영화는 그의 유작이기 때문. 영화는 계속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크린에서 만나기 힘들 이선균이란 배우와 그의 연기에 대한 그리움이 잔상으로 남는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는 자욱한 안갯속 연쇄 추돌 사고, 여기에 공항대교를 붕괴 직전으로 만들며 순식간에 인물들을 재난의 한복판으로 몰고 간다.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군에서 살상용으로 훈련시킨 개들이 탈출한다. 문제는 이 군용견들이 다리 위 사람들 모두를 표적으로 여긴다는 것. 살고 싶으면 숨고,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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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은 자신의 상관인 청와대 안보실장 현백(김태우)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청와대 행정관 ‘차정원’을 연기했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냉혈한이든 따스한 남자든, 콧수염을 붙이든 안 붙이든, 매번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었던 이선균의 이제까지 모습들이 정원이란 캐릭터에 스며들어 있다.

우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현백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략을 짜는 정원의 모습은 그가 말 그대로 ‘킹메이커’를 연기한 영화 ‘킹메이커’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초반 인간미 없고, 냉소적인 정원의 모습은 영화 ‘기생충’에서 타인을 은근히 무시했던 ‘박동익’을 연상시킨다. 특히 정원이 딸 경민(김수안)과 함께 자신들만 살겠다고 다친 사람들을 외면하며 도망치는 장면은 ‘기생충’에서 과외 교사 기정(박소담)이 칼에 찔렸는데, 쓰러진 자기 자식만 살리겠다고, 운전기사 기택(송강호)에게 빨리 차 키 내놓으라고 성내는 동익의 모습과 겹친다.

재난이 닥치자 죽기 살기로 종횡무진하는 건 그에게 백상예술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안긴 ‘끝까지 간다’를 통해 익숙한 모습이다. 재난 극복 과정에서 동료애를 깨닫게 된 뒤 보여주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면모는 이선균이란 배우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드라마 ‘하얀 거탑’의 ‘최도영’이 연상된다. 까칠했던 인물이 인간적으로 변모하면서 냉소적이었던 중저음은 어느새 따스한 중저음으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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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재난 영화의 각종 공식을 답습한 범작이다. 영화 속 가장 위험한 대상이 돼야 할 군사용 실험견들이 상황에 따라 공격력에 차이가 나는 점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용기 있는 시민들과 무기력하고 어떤 면에선 무자비한 국가를 대비시키는 구조는 최근 한국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클리셰다.

이선균의 캐릭터 외엔 모든 캐릭터가 평면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브릿지’ 염색한 장발의 렉카 기사 ‘조박’으로 분한 주지훈의 변신은 과감하지만, 어색함을 지우기 어렵다. 애틋한 노년 부부(문성근·예수정), 티격태격 자매(박희본·박주현), 정의감 넘치는 행동으로 아빠를 변화시키는 딸 경민 등도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결말 지점에 클로즈업돼 슬로모션으로 담기는 이선균의 얼굴은 배우의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2021년 촬영됐던 영화는 지난해 5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김 감독은 지난 8일 시사회에서 “선균이 형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감독으로서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 형과 같이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고, 특히 동선이나 캐릭터의 감정에 대해 굉장히 논의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내달 14일 영화 ‘행복의 나라’로 한 차례 더 관객과 만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재구성한 영화다. 그는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 역을 맡았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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