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정석[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7-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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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확산의 본거지가 되면서 비난이 고조됐다. 삼성이 하는 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국민적 실망도 컸다. 그래서 삼성을 대표해 이재용 회장이 직접 대국민사과에 나섰다. 병원의 책임이었지만, 그룹의 책임자인 이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이었다. 당시 이 회장의 사과문은 지금도 ‘사과의 정석’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과의 주체, 사과의 이유, 향후 개선 방향과 함께 이 회장은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신다”면서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울먹이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사과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변명하지 않겠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화법으로 늘 야당의 공세보다 먼저 사과를 했다. 야당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은 것이다. 자동차 공장을 동행 취재한 여기자에게 연인이나 친구에게 쓰는 ‘스위티’라고 불렀다가 성희롱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판단되자 곧바로 전화해 정중하게 사과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아들 구속 문제로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함으로써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사과할 때는 애매하게 하지 말고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하면서 행동 계획까지 밝혀야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을 쓴 김호·정재승 교수는 “21세기엔 사과가 리더의 언어”라며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을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믿음이 생긴다”고 했다. “제대로 사과를 하지 못하는 리더가 21세기엔 패자가 된다”고 했다.

‘명품백 수수’ 문제로 김건희 여사의 ‘사과’ 문제가 여당 전당대회의 최대 화두가 됐다. 김 여사가 지난 1월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사과 의사를 밝히는 문자를 5차례 보냈는데 ‘읽씹’했다는 것이다. 원희룡·나경원·윤상현 후보는 한 후보가 답하지 않아 사과 기회를 놓쳐 결국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사과의 주체는 한 후보가 아닌 김 여사 자신이다. “사과하면 지지율이 떨어질 것 같아서 사과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회장처럼 사과했으면 이 논란은 진작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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