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처단’ 포고령에 의료계와 루비콘강 건넜다…보건복지부도 ‘패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5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지난 3일 비상계엄 당시 포고령에 ‘의료인 처단’이라는 표현이 담기면서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포고령에 관여한 바 없고 계엄 자체에도 반대했다"고 밝혔지만 포고령으로 인한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6일 계엄사령부가 발표했던 포고령에 따르면, 5항은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정 직역에 대한 언급은 6개 항 중 5항이 유일했다.

포고령이 공개된 후 의료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정부가 1년 가까이 갈등 관계에 있었던 전공의들을 향해 ‘처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이미 사직 처리돼 파업 중이라고 볼 수 없고, 이들 중 절반은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복귀해야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포고령 때문에 복지부도 난처한 처지가 됐다. 복지부는 지난 달 전공의들에게 거듭 여야의정협의체 참여를 촉구하는 등 최근까지도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가자는 입자이었다. 하지만 포고령에 ‘의료인 처단’이라는 표현이 담기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당장 의료계에선 계엄 해제 이튿날부터 비판 성명이 나왔다. 대한의학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의료진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심각한 적대적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정부는 전공의 강제 복귀 조항이 계엄 포고문에 포함된 경위를 국민 앞에 명확히 밝혀야 하며 책임 있는 관계자의 해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조규홍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포고령은 복지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포고령 5항 문구와 관련해 의견을 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저는 포고령이 발표되고 나서 알았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또 "포고령에 들어간 내용은 정부 방침과 완전 배치된다"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계엄이 해제된 4일 이른 오전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취약계층 보호와 필수의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직원분들은 동요하지 말고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다해달라"는 메시지를 냈다. 조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최종 사표 수리 전까지는 직에 전념하며 의료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이전보다 더 거세지면서 복지부의 핵심 과제인 의료개혁은 정상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 대한병원협회는 5일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왜곡된 시각과 폭력적 행태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가 운영 중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참여 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4일과 5일에 각각 예정돼 있었던 특위 전문위원회도 연기됐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