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통해 정화되는 인간 묘사 탁월… 25세때 작곡한 교향시[이 남자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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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빛을 통한 신성한 변모 내포
해방 노래한 현악기 선율 압권
교향시란 시적·회화적 영감
관현악 위한 단악장 표제음악

독일 출신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현악 기법의 대가이다. 자신 스스로 “난 한 자루의 빗자루도 음악으로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공언했던 것처럼 그가 음악을 통해 다루었던 소재 또한 무궁무진했다. 심지어 그는 불과 25세의 나이에 죽음을 통해 정화되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음악작품으로 그려내기도 했는데 바로 교향시 ‘죽음과 변용’이란 작품이다.

1888년 24세의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최초 교향시 ‘돈 후안’을 작곡했다. 교향시란 주로 시적, 회화적인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관현악을 위한 단악장의 표제음악을 일컫는데 이 작품에선 17세기 전설 속 인물인 호색가 돈 후안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신의 첫 교향시가 성공을 거두자 슈트라우스는 그 이듬해인 1889년 곧장 두 번째 교향시의 작곡에 착수한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같은 교향시이긴 했지만 내용적인 면에 있어선 전작과는 180도 달랐다. 첫 교향시 ‘돈 후안’에서 여성에 대한 집착으로 파멸해갔던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그는 자신의 두 번째 교향시에선 한 인간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죽음을 통해 진정한 해방을 얻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때 슈트라우스는 겨우 25세의 어린 나이로 그가 음악적 묘사에 있어 얼마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슈트라우스는 알렉산더 리터의 죽음에 관한 시를 읽고 음악적 영감을 얻게 되었는데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들어 죽어가는 한 사나이가 침대에 누워 지난 젊은 날을 회상하며 비감에 잠겨있다. 그러나 죽음은 허무한 결말이 아닌 변용(變容)이라는 것을 깨닫고 용기 있게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변용’이라는 단어를 눈 여겨봐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용모가 변한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변용은 성경의 마태복음 17장에 등장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 야곱, 요한 등 세 명의 사도와 함께 산에 올랐을 때 스스로 얼굴과 옷에서 빛을 발했던 사건에 기인한다. 이로써 슈트라우스가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변용의 의미는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닌 빛을 통한 정화, 이상적이고도 신성함으로의 변모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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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에 작곡하여 그 이듬해인 1890년 6월 21일 아이제나흐에서 슈트라우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변용의 주제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48년에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마지막 곡 ‘저녁놀에서(Im Abendrot)’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교향시 ‘죽음과 변용’을 작곡한 지 약 60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으로 슈트라우스가 ‘변용’이란 주제와 음악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슈트라우스, 교향시 ‘죽음과 변용’ 작품번호 24

슈트라우스가 25세 되던 해에 작곡한 초기 작품으로 그의 탁월한 음악적 묘사와 관현악 기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음악은 쉼 없이 연주되는 단악장의 작품이지만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느린 템포인 라르고의 첫 부분은 무겁고 침울하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침상의 병자를 연상케 하지만 죽음 이면의 해방을 예견하는 듯한 현악기 선율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부분은 빠른 알레그로로 금관의 거친 음형이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치열함을 묘사한다. 세 번째 부분은 이내 조용히 침잠되는 메노 모소로 죽음 앞의 사나이를 위로하듯, 또 지난 세월을 회상하듯 부드러운 선율로 감싸 흐른다. 마지막 부분인 모데라토는 죽음 뒤의 평화, ‘변용’을 표현하듯 장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