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혁신의 자유 뺏는 52시간 도그마[포럼]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국회가 국가의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반도체 산업을 지키기 위한 반도체특별법을 논의하고 있다. 여당은 특별법에 근무시간 규제를 예외로 하는 조항을 포함하려 하고, 야당은 민감한 문제라면서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여당은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반도체특별법에서 주 52시간 근무 규제에 예외를 둠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되찾고 근로자의 행복을 증진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행복 추구권을 보장해 주는 기본 조건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보장이다. 그동안 사적 자치의 원칙이 여러 분야에서 허물어지면서 근무시간 규제가 강화돼 왔다.

근무시간 규제는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도그마였다. 마르크스적 사고는 노동계약을 착취로 인식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무시간은 규제돼야 하고 근무시간이 적을수록 근로자는 해방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들의 논리는 100년 전에도, 지금도 오류임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환과 전문화는 소외가 아니라 풍요와 행복을 주는 필수조건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 때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정치 세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근무시간 규제를 금과옥조처럼 모셨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폄훼하는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기득권 세력으로 성장하고 정권을 농단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근무시간 규제에 익숙해졌다. 1987년 체제 이후 근무시간 규제는 강화됐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한 번도 상승한 적이 없다. 지금은 조선·철강·자동차·화학 등 우리 기간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반도체의 위상도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열심히 일했던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죄가 됐기 때문이다.

혁신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집중된 상태에서 일정 시간의 노력이 투입돼야 하는 작업이다. 연구·개발(R&D) 종사자들은 주 52시간제가 터무니없는 규제임을 잘 안다. 과거 ‘3당 4락’의 입시를 경험한 이들은 노력의 기쁨을 안다. 혁신은 근로자들을 위한 일이다. 혁신을 통해 근로자의 행복은 증진하며 나라는 풍요를 즐긴다.

일각에서는 근로자의 건강 때문에 근무시간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R&D 종사자 등 사무직 근로자는 자신의 휴식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므로 노동 강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생산직 근로자보다는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주 52시간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근로자의 건강 문제는 기우일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원하는 주 52시간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정략적인 이해관계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노동조합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묶어 놓기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경제가 흔들리고 근로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오늘 끝낼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는 유연근무 제도를 정착시켰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근로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했다. 그런데 근무시간이 지나면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행위는 근로자의 근로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일이다. 노사 합의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이제는 자유롭게 일하고 혁신할 권리를 근로자에게 돌려줄 때다. 근로자의 자유와 풍요를 위해 근무시간 규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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