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새로나온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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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詩>폭염 - 최지은
약속은 잊은 채 거실에 누워 있는 일요일 오후 거북이 한마리 발목을 스치고 검은 머리칼 사이로 숨어 든다 가끔씩 새우가 튀어오르기도 하는 여름날의 투명한 꽃병 반만 열린 창밖에서 하얀 올빼미떼 하염없이 날아들 때 내 머릿속 가득 짖어대는 내가 잃어버린 개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17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가 있다.
문화일보 | 2021-06-09 11:23 -
<새로나온 詩>남 생각 - 이문재
늘 남 생각 처음 길 나선 초보 운전 같은 모기장 안에 모기 한마리 들어온 것 같은 매번 다른 마음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매번 초보 초행 매번 남 생각 ---------------------------------------------- 약력 :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혼자의 넓이’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6-02 11:44 -
<새로나온 詩>시간 3 - 유자효
내 마음이 가 있으면 저 세상도 지척 때로 내게 전해지는 먼 조상의 마음 내 마음이 떠나면 지척도 만리 나를 떠난 그 마음은 잊음의 전생 시간은 공간이요 공간은 시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7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신라행’ ‘성 수요일의 저녁’ ‘여행의 끝’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5-26 11:23 -
<새로나온 詩>목백일홍, 그 꽃잎을 - 고영서
얼마를 견뎌야 저 타오름의 경지에 닿나 이녁 몸피는 화상투성이 맨들맨들 맨발로 올라 낙상하 기 좋아라 발등에 손가락이라도 닿을라치면 간지러운 발 작에 하르르 각혈하는 그대가 보인다 어느 먼 옛날 목숨 같 은 사랑을 떠나보내고 이 꽃그늘 아래 목 놓아 운 적 있었 나 기침의 흔적들로 낭자한 연못 바람도 뜨거운 삼복三伏에 피고 지기를 아득해라, 한 움큼의 꽃잎을 쓸어 가슴에 한 사람을 들여앉히는 일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악력 :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기린 울음’ ‘우는 화살’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5-12 11:31 -
<새로나온 詩>끝이 살아 있다 - 한향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타자 앞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지만 끝은 살아 있어야 한다 공의 끝 끝이 살아 있으면 죽어도 죽지 않은 공이다 한 사람의 일생도 결국은 신이 던진 찰나의 공 어느 날 문득 한 생애가 우주 속으로 저문다 해도 그 역시 영원한 공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04년 ‘현대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아무르강에 그리운 사랑 있네’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4-28 11:29 -
<새로나온 詩>두 자리 - 천양희
스스로 속지 않겠다는 마음이 산을 보는 마음이라면 스스로 비우겠다는 마음이 물을 보는 마음일 거라 생각 는데 들을 보는 마음이 산도 물도 아닌 것이 참으로 좋다 살아 있는 서명 같고 말의 축포 같은 참 그것은 너무 많은 마음이니 붉은 꽃처럼 뜨거운 시절을 붉게 피어 견딘다 서로가 견딘 자리는 크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만해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너무 많은 입’ ‘지독히 다행한’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4-21 11:33 -
<새로나온 詩>소나기 - 손병걸
활짝 열린 창문 베란다, 화분 속 키 작은 꽃나무 한 그루 촉촉한 이파리들 물비린내에 취한 듯 파르르 파르르 떨고 있다 베란다 너머 먼 산 끝자락 온통 발그레해진 뭉게구름 일순, 내 발가락에 힘 들어가고 곤두서는 머리카락 아흐!잠깐 사랑이 다녀가셨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푸른 신호등’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4-14 11:34 -
<새로나온 詩>재와 사랑의 중추식 미래 - 김연덕
우리는 나란히 누워 천장에 길게 난 유리를 계곡을, 햇 빛에 그을린 거실과 수영 선수를 그 위로 일렁이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잡고 눈을 감고 반쯤 잠들어, 그간의 어떤 오후보다 사이가 좋게. 스스로 망가뜨린 기억도 잊을 수 있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재와 사랑의 미래’가 있다.
문화일보 | 2021-04-07 11:34 -
<새로나온 詩>서천(西天) - 이상국
초승달 옆에 샛별이 반짝인다 달은 집에 갔다 보름 만에 왔는데 샛별이 몰래 따라갔다 왔다고 한다 지금은 둘 사이가 걸어가면 오분 거리다 오늘은 음력 정월 초아흐렛날 별들은 마당을 씻어놓고 집 밖에 나앉았는데 달이 혼자 집에 갔다 안 올까봐 샛별이 또 지키고 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1976년 ‘심상’으로 등단,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동해별곡’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3-31 11:35 -
<새로나온 詩>착란 - 신미나
눈이 멀어버릴 듯이 빛이 잘게 부서졌다 먼 해변까지 희고 둥근 조약돌이 깔렸다 누군가 멀리서 손짓했다 거기서 나오라고 빨리 나오라고 발밑에서 뭔가 파삭, 으깨졌다 발가락 사이로 끈적한 것이 삐져나왔다 사방에 수천개의 뱀 알이 깔려 있었다 몇개는 진동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싱고, 라고 불렀다’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3-24 11:40 -
<새로나온 詩>암전 - 김명철
빛은 어둠에 둘러싸이고 나서야 빛이 된다 일몰의 반대쪽을 향하는 새들의 심정도 그럴 것이다 조급한 어둠이 새의 심장을 파고들 듯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어둠을 묻힌 눈이 창 안을 어지럽히고 있다 나무 책상 위에 적어놓았던 문장들이 어룽거린다 이제는 차가운 유리 책상에 엎드려 왼쪽 귀를 왼팔에 베고 오지 않는 편지를 나에게 써야 할 때 비껴 얼굴을 들어보면 검은 눈에 덮인 문장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들 감은 눈알을 파고드는 빛의 먼지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기원’ ‘우리는 바람의 얼굴을 꽃이라 하고 싶다’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3-17 11:28 -
<새로나온 詩>그곳에 가고 싶다 - 송기영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너와 만나 삼백 분을 이야기한 다. 몇 마디를 나누고 몇 마디는 부러진다. 그곳에 가기 위 해. 나는 너와 헤어진다. 너는 내 등 위에 몇 개의 발자국 을 찍는다. 그곳에 가려면, 일단 아무 데나 가 보는 게 좋 을까. 그곳에, 가기 위해. 너를 삼백 년 뒤에 만난다. 서로를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바닥만 내려다본다. 잔금이 남아서, 더러 반짝이는 얼굴. 다시 갚을 수 없는 그 표정을 어디서 배웠을까. 그곳에, 가기 위해. 나는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 곳에, 가기 위해. 사람들,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2008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ZIP’ ‘써칭 포 캔디맨’ 등이 있다.
문화일보 | 2021-03-10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