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1973 그림 에세이
496 | 생성일 2015-05-12 14:06
  • 내면의 침전물들을 승화한 그림[그림 에세이]

    내면의 침전물들을 승화한 그림

    대학 시절, 거리에서 싫어했던 은사님과 마주쳤지만, 나도 모르게 외면한 적이 있다. 옹졸하게도 과거 상처에 대한 앙갚음이라 여겼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었다. 백화점 통로에서 제자인 듯한 사람과 마주쳤지만, 그는 날 차갑게 외면했다.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그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렇듯 5월은 성찰의 계절이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잡다한 기억의 침전물 뭉치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회한의 앙금들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다. 류정숙의 막대풍선 같은

    문화일보 | 2025-05-13 11:42
  • 마음을 닦으라는 설법을 담다[그림 에세이]

    마음을 닦으라는 설법을 담다

    종종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나 사람들의 처지를 관찰하다 보면 ‘업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뱉은 말이나 행위가 자기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의 진리를 망각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조차도 신중해야겠다. 세상을 만드는 것도, 허무는 것도 ‘마음’이며, 그 안에 극락도 있고 지옥도 있다고 한다. 마음을 닦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성찰에 참조가 되는 작품이 무얼까 생각하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다. 전인식 작가의 ‘순환’이라는 평면적

    문화일보 | 2025-04-29 11:39
  • 명령어가 만든 이미지는 이미 고전[그림 에세이]

    명령어가 만든 이미지는 이미 고전

    부활절을 맞아 출석하는 예수향교회에서 칸타타 공연이 있었다. 중소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출연자들이 보인 음악적 역량은 놀라웠다. 무대 세트만 없었을 뿐이지 음악적 완성도는 뮤지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만약 인공지능 인터페이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노래와 관련된 영상까지 입체적으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프랑스 창작그룹 ‘오비어스(Obvious)’의 전시(선화랑)에서 자극받은 바가 있어서다. 포트렐(P. Fautrel), 카셀-뒤프레(H. Caselles-Dupre), 베르니에(G. Vernier) 3인의

    문화일보 | 2025-04-22 11:36
  • 따뜻하고 구수한 느낌의 닥지 그림[그림 에세이]

    따뜻하고 구수한 느낌의 닥지 그림

    인공지능(AI) 전시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전시장 유리창에 특이한 느낌의 그림들이 비쳐서다. 구민선 작가의 닥지 그림이다. AI로 인해 미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까 머릿속이 복잡했던 차에 어떤 관계성이 영감으로 다가왔다. 인공과 자연의 대비. 미래형 첨단기술과 사람(손)의 대비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 AI 시대에 닥종이 그림이라니,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안에서 재래식 온돌방을 만난 느낌이다. 닥지와 닥 펄프 재료에서 무언가 따듯함과 구수한 맛이 난다. 게다가 손이 무수한 지문을 남긴 투박하면서도 감각

    문화일보 | 2025-04-15 11:50
  • 희망과 생동의 나비춤을 그리다[그림 에세이]

    희망과 생동의 나비춤을 그리다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온 후 모처럼 평온을 되찾은 주말 아침이다. 김밥과 물병을 배낭에 담고 홀로 상춘의 산행에 나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초목과 꽃들의 환한 표정을 렌즈에 담느라 자주 갈지자걸음을 한다. 반석에 앉아 먹는 한 끼의 단사표음(簞食瓢飮·도시락과 표주박 물)도 산중 별미이자 식도락이다. 배추흰나비인가, 조그만 녀석 하나가 유희하듯 곡예비행을 하면서 스쳐 지나간다. 현실인데도 몽환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 한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나비 작가 허경애의 화면이다. 엠갤러리 초대전을 준비 중인 작가의 작업실엔 고결한 영혼의 희망과 평화를 담은 나비들이 춤추고

    문화일보 | 2025-04-08 11:37
  • 봄의 아늑한 대기를 담아왔어요[그림 에세이]

    봄의 아늑한 대기를 담아왔어요

    이맘때 성큼 다가온 춘색에 취해 눈을 감으면 들려올 법한 옛 노래가 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사뿐사뿐 리듬을 타는 곡조와 가수의 음색도 감미롭지만, 가사도 곡과 잘 조화되니 애창하지 않을 수 없다. 가곡 ‘봄이 오면’과 함께 시어와 운율이 참 예쁜데, 무려 100년이나 된 시(김동환)라니 뜻밖이다. 봄의 아늑한 공기에 취한 춘심을 잘 노래한 그림을 찾아 전시 마당에 나섰다. 초면인 박주선과의 만남은 이심전심으로 이루어졌다. 유년 시절 고향에서 느낀 봄 햇살의 포근한 정취와 아련한 향수를 화폭 위에 꿈꾸듯 담아낸다. 담담하니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길에는 벅찬

    문화일보 | 2025-04-01 11:37
  • 깊은 어둠 속 교교한 달빛… 절정의 숭고미[그림 에세이]

    깊은 어둠 속 교교한 달빛… 절정의 숭고미

    시대가 흘러도 고전의 감동은 여전하다. 웅장하고 장대한 압도적 스케일, 게다가 심연의 폐부를 파고드는 클래식은 언제나 우리의 정신을 고상하게 한다. 오늘의 예술이 양적으로는 풍성하지만, 질적 심오함은 고전에 못 미친다. 그것이 심오한 혼을 갈아 넣었다면, 오늘의 예술은 순발력과 기교로 급조된 것이다. 고전을 회생시켜 현대적 감각에 어필한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삼이다. 그의 역작 ‘달빛 녹취록’(사비나미술관)을 마주할 때 압도되고 심장이 뛴다. 동시에 장엄하기 그지없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 환청처럼 울린다. 숭고미로 농축된 깊은 어둠 속에서 달빛 교교한 비경을 관조하고 노

    문화일보 | 2025-03-25 11:40
  • 초월적 공상 여행기[그림 에세이]

    초월적 공상 여행기

    신묘한 꿈을 꿨다. 형광색 빛을 발하는 신비한 행성으로 패키지 우주여행을 간 것이다. 무언가 상서롭고 유쾌한 꿈으로 지금도 기억과 여운이 생생하다. 정말이지 너무도 오래전 소멸된 동심의 꿈이 되살아난 것이다. 뭔가 짚이는 기시감이 있다. 엊그제 밀스튜디오에서 본 마리봇(권태원)의 그림들이다. 기묘한 몽환적 색조가 감싸고 있는 미지의 행성 풍경 속에 한 소녀가 서 있다. 유심히 보면 눈이나 팔 등의 부위가 어떤 합성의 상태를 보인다. 생체와 로봇이 결합된 미래 기술을 담담하게 말한다. 먼 미래의 자아와 오래전의 자아가 혼재된 현재라는 접점에서 상상을 현실적 불안의 해법으로 보는

    문화일보 | 2025-03-18 11:41
  • 제5계절의 청산도[그림 에세이]

    제5계절의 청산도

    겨우내 혹한을 이겨낸 굳센 기개를 많은 문사와 지사가 노래한 푸른 청산. 봄볕이 따스한 날 그 표정을 보았는가. 절개와 저항의 상징인 강건한 상록의 빛이건만, 어느덧 스며온 봄 햇살에 퇴색된 풍모가 원경으로 물러나 있다. 잿빛 산하에서 홀로 독야청청한 시절을 뒤로한 채, 감상도 절제한다. 물론 청산의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가슴에 살아 있다. 겨울을 보내고 초봄을 맞는 경계 시점의 미묘한 춘색을 소소혜(이혜숙)가 절묘하게 화폭에 담았다. 그의 풍경은 아카데믹한 재현에 충실하면서도, 대상의 속살까지도 투시해내는 그림으로 차별성을 갖는다. 꿈꾸는 청산의 자태는 보아도 보아도

    문화일보 | 2025-03-11 11:44
  • 소중한 일상적 기억의 옴니버스[그림 에세이]

    소중한 일상적 기억의 옴니버스

    국내외 정세에 거센 격랑이 일고 있다. 다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만 짙은 안갯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 느낌이다. 매일의 뉴스들에 촉각이 곤두세워져 있는 나날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평온한 일상과 감정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토록 작고 소박한 염원을 품어본 적이 있었던가. 때마침 마주한 ‘구채연 전’(마리나갤러리)에서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희구하는 밝고 평화로운 매일의 모습이 그의 화면에 가득 담겨 있다. 작가만의 사소한 일상 풍경이지만, 공감과 감정이입을 달콤하고 따뜻하게 이어간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디테일들에 깨알 같은 재미까지 곁들였으니 아늑함

    문화일보 | 2025-03-04 11:40
  • 봄의 전령사가 떴다[그림 에세이]

    봄의 전령사가 떴다

    절기는 경칩을 앞두고 있지만,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전시장은 온갖 종류의 꽃이 만개해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있는 낙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꽃 그림들이 화려하고 생기가 넘치다 못해 광채로 눈이 부셨다. ‘박종필展’(박여숙화랑)은 이미 우리 곁에 봄이 왔음을 귀띔해 주고 있다. 흡사 한겨울 칼바람 맞으며 달콤한 봄 딸기를 먹는 기분이다. 꽃도 가상이든 실재든 타이밍인 것 같다. 물론 이는 큐레이팅의 일이다. 작가는 오랜 세월 계절과 상관없이 꽃만을 그려 왔다. 세상의 많은 화가가 다양한 감정과 동기로 꽃을 그리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만큼 마음을

    문화일보 | 2025-02-25 11:36
  • 꽃은 많을수록 좋다[그림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

    일제강점기 유일한의 독립활동을 주제로 한 뮤지컬 ‘스윙데이즈’가 충무아트센터에서 절찬리에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감동적 서사, 연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가창력, 무대영상 등이 어우러져 감동을 주는 수작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다수가 젊은 관객이라는 점이다. 역시 좋은 작품 뒤에는 수준 높은 관객이 있다. 무대의 감동과 여운이 아직 생생하다. 이심전심일까.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가, 눈을 사로잡는 그림을 만났다. 곽연주의 ‘환희’ 연작이다. 마치 ‘언제 어디서라도 당신의 감격에 함께하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대의 주인공들, 그리고 함께 혼

    문화일보 | 2025-02-18 11:46
  • 내면의 침전물들을 승화한 그림[그림 에세이]

    내면의 침전물들을 승화한 그림

    대학 시절, 거리에서 싫어했던 은사님과 마주쳤지만, 나도 모르게 외면한 적이 있다. 옹졸하게도 과거 상처에 대한 앙갚음이라 여겼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었다. 백화점 통로에서 제자인 듯한 사람과 마주쳤지만, 그는 날 차갑게 외면했다.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그 선생님이 받았을 상처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렇듯 5월은 성찰의 계절이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잡다한 기억의 침전물 뭉치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회한의 앙금들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다. 류정숙의 막대풍선 같은

    문화일보 | 2025-05-13 11:42
  • 마음을 닦으라는 설법을 담다[그림 에세이]

    마음을 닦으라는 설법을 담다

    종종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나 사람들의 처지를 관찰하다 보면 ‘업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뱉은 말이나 행위가 자기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의 진리를 망각하는 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다.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조차도 신중해야겠다. 세상을 만드는 것도, 허무는 것도 ‘마음’이며, 그 안에 극락도 있고 지옥도 있다고 한다. 마음을 닦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성찰에 참조가 되는 작품이 무얼까 생각하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다. 전인식 작가의 ‘순환’이라는 평면적

    문화일보 | 2025-04-29 11:39
  • 명령어가 만든 이미지는 이미 고전[그림 에세이]

    명령어가 만든 이미지는 이미 고전

    부활절을 맞아 출석하는 예수향교회에서 칸타타 공연이 있었다. 중소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무명의 출연자들이 보인 음악적 역량은 놀라웠다. 무대 세트만 없었을 뿐이지 음악적 완성도는 뮤지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만약 인공지능 인터페이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노래와 관련된 영상까지 입체적으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프랑스 창작그룹 ‘오비어스(Obvious)’의 전시(선화랑)에서 자극받은 바가 있어서다. 포트렐(P. Fautrel), 카셀-뒤프레(H. Caselles-Dupre), 베르니에(G. Vernier) 3인의

    문화일보 | 2025-04-22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