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2031 우리 마을 문화재
47 | 생성일 2016-06-08 15:16
  • <우리 마을 문화재>고종·명성황후 잠든 곳… 제국황제 위엄 갖추려 규모 달라져

    <우리 마을 문화재>고종·명성황후 잠든 곳… 제국황제 위엄 갖추려 규모 달라져

    남양주 금곡동 홍릉·유릉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조선 왕릉은 모두 40기다. 조선왕릉은 모두 42기이지만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은 제외됐다.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릉(洪陵·사진)과 홍릉에 바로 인접해 있는 유릉(裕陵)도 그 40기 왕릉에 포함돼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탓인지 요즘 남양주 나들이 길에 나섰다가 홍릉과 유릉을 경유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홍릉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속 황제인 대한제국 제1대 황제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고종은 일반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무능한 임금으로 알려져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항일의병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

    이경택 | 2018-10-31 11:02
  • <우리 마을 문화재>보물 지정된 조선 석탑… 인목대비가 봉안한 佛像 등 31구 발견

    <우리 마을 문화재>보물 지정된 조선 석탑… 인목대비가 봉안한 佛像 등 31구 발견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경기 남양주 운길산(610m)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는 운길산 등반객들이 하산길에 자주 들르는 곳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됐다고 전해온다. 수종사 창건 유래와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깨게 된다. 이어서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했다고 전해온다. 수종사를 등산객들이 하산길에 종종 들르는 이유는 두물머리(양수리) 조망이 좋기 때문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서거정(1420∼1488)은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지닌 사찰’이라고 극찬했다. 유서 깊은 사찰인 만큼 유심히 경내를 살펴보면 보물급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바로 그것. 석탑은 원래 사찰 ?

    이경택 | 2018-10-10 10:57
  • <우리 마을 문화재>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조·인열왕후 무덤… 격조 높은 석조물

    <우리 마을 문화재>유네스코 세계유산 인조·인열왕후 무덤… 격조 높은 석조물

    파주 장릉 조선 시대 왕릉 중에서 한글로 장릉이라고 하는 곳은 모두 세 군데다. 그러나 한자가 다르다. 강원 영월에 있는 단종(端宗)의 능은 장릉(莊陵)이다. 김포시 풍무동에 있는 장릉(章陵)은 인조(仁祖)의 부모 능이다. 왕은 아니었으나 인조가 왕이 되면서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존됐기에 왕릉이라 부른다.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의 장릉(長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로 인조(재위 1623~1649)와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의 합장릉(合葬陵)이다. 갈현3리 버스 정류장에서 500m만 들어가면 장릉을 만날 수 있다. 장릉은 그동안 보존을 위해 비공개였으나 2016년 6월부터 2년여의 시범 개방을 거쳐 올해 9월 전면 개방했다. 공개 제한지역이던 파주 장릉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국민의 문화적 관심과 관람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지난 2016년 6월 17일 시범 개방했고, 이후 관람환경과 편의시설을 꾸준히 보완·정비해 최근에 전면 개방에 이르게 됐다. 파주 장릉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우선 능의 주인부터 그렇다. 조선 제16대 임금인 인조와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이경택 | 2018-09-12 10:51
  • <우리 마을 문화재>국내 최대규모 탁자식 고인돌… 덮개돌 무게만 80t

    <우리 마을 문화재>국내 최대규모 탁자식 고인돌… 덮개돌 무게만 80t

    강화 부근리 고인돌 고인돌은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하는데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돌멘(Dolmen)으로 통칭되는 고인돌은 이집트의 피라미드(Pyramid), 영국의 스톤헨지(Stonehenge), 프랑스 카르나크의 열석(列石·여러 개의 큰 돌을 줄지어 세운 것) 등과 같은 거석기념물(巨石紀念物)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대체로 기원전 1200∼200년 무렵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들었던 무덤이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간석기 등이 주로 출토된다. 국내의 고인돌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돼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지다가 철기 시대에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 강화군, 전북 고창군, 전남 화순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에는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사적 제137호·사진)은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전체 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돼 있다. 원래 네 개의 ?

    이경택 | 2018-08-22 11:12
  • <우리 마을 문화재>아들 원했던 고려 선종이 자연 암벽에 새긴 남녀 佛身

    <우리 마을 문화재>아들 원했던 고려 선종이 자연 암벽에 새긴 남녀 佛身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은 경기 파주읍에서 고양시 덕양구청 방향으로 가는 78번 국도변의 장지산(長芝山) 용암사 경내에 있다. 표지판이 크지 않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보물 제93호인 마애이불입상은 대웅전 뒤편 노송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모습을 보인다. 사찰 마당에서는 용암사의 범종, 석탑 등도 만날 수 있다. 천연 암벽에 불신(佛身·부처의 몸)을 조각하고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별도로 만들어 얹어놓은 2구(軀)의 병렬식 불상이다. 입상 2구가 나란히 조성돼 있어 ‘마애이불’이라 이름 붙여졌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거대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높이 17.4m의 거불이다. 이렇게 자연 암벽에 불신을 조성하는 것은 고려 때 유행했던 수법으로, 안동 이천동 석불상(보물 제115호)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따라서 마애이불 역시 고려 시대 불상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문화재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사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 모양이

    이경택 | 2018-08-08 10:54
  • <우리 마을 문화재>조선 최초의 ‘王上下妃陵’… 齋室은 공간 구성 뛰어나 보물 지정

    <우리 마을 문화재>조선 최초의 ‘王上下妃陵’… 齋室은 공간 구성 뛰어나 보물 지정

    여주 효종영릉 경기 여주시의 효종영릉(孝宗寧陵)은 신륵사에서 남한강을 건너 차로 10여 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왕릉이다. 영릉은 조선 최초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다. 왕과 왕비의 능이 같은 언덕에 위아래로 왕상하비(王上下妃) 형태로 조성돼 있다. 위쪽의 능은 조선 17대 효종대왕의 능이고, 아래쪽 능은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능이다. 그래서 쌍릉이라 불리기도 한다.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대왕은 재위 10년(1649∼1659) 동안 군제를 개편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등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복구하는 데 온 힘을 쏟았으며,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펼쳤고, 상평통보를 널리 사용토록 하는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효종의 능은 본래 경기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 구리시 동구릉) 서쪽 산기슭인 원릉 자리에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산릉을 조성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석물이 벌어지고 현궁까지 물이 침투할 것을 염려하여 1673년에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고 재실도 그대로 옮겼다. 재실은 이듬해인 1674년에 인선왕후를 합장하면서 다시 한 번 자리를 이전하게 된다. 이때 이전된 재실이 현존 재실로 추정된다. ?

    이경택 | 2018-07-25 11:35
  • <우리 마을 문화재>묘법연화경 등 보물 4점… 양피지 聖經·세계 古지도 소장

    <우리 마을 문화재>묘법연화경 등 보물 4점… 양피지 聖經·세계 古지도 소장

    경기 고양시 ‘원각사’ 경기 고양시 동국대일산병원 인근에 있는 원각사는 불교 신도가 아닌 이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작은 사찰이다. 그러나 원각사는 문화재나 불교 문헌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유명한 곳이다. 고양시에 있는 문화재 가운데 보물 6점 중 4점이 원각사에 소장돼 있다. 묘법연화경(언해) 권1, 4(보물 제1010-2호·사진), 자치통감 권193∼195(보물 제1281-3호),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42(보물 제1658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9(보물 제1794호)가 바로 그것이다. 보물뿐만이 아니다. 원각사 신중도(유형문화재 제284호) 등 고양시의 유형문화재 24건 중 12건이 역시 원각사에 소장돼 있다. 고양시 문화재의 60∼70%가 원각사에 있는 셈이다. 지난해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불교기록문화유산 고문헌 도록 1, 원각사의 불교문헌’을 출간하기도 했다. 도록에 수록된 문화재는 483종 612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 기간만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불교 회화로부터 조각, 공예품, 동경, 도자, 와전 등 439종 860점을 담은 ‘원각사 소장유물 도록’을 간행하기도 했다. 경내

    이경택 | 2018-07-11 11:27
  • <우리 마을 문화재>1957년 건립된 좌우대칭 화강석 건물…“문화재 등록 예고”

    <우리 마을 문화재>1957년 건립된 좌우대칭 화강석 건물…“문화재 등록 예고”

    파주 ‘구 교하면사무소’ 경기 파주시 교하동은 한강 임진강 등이 합류돼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서 물이 서로 합친다 해 지역명도 교하(交河)라 했다. 교하란 옛 지명은 원래 파주 일대의 너른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명이었으나 지금은 파주시 남서부에 있는 행정동을 의미한다. 교하면은 광무3년(1899) 행정구역 개편 당시 와동, 지석, 석곶, 청암면의 14개 리를 지칭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에 와동면과 지석면을 병합해 와석면으로 이름을 바꿨고, 193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4호에 따라 와석면과 청석면 일부를 통합해 교하면이 됐다.

    이경택 | 2018-06-20 11:02
  • <우리 마을 문화재>임진왜란때 日 유출된 조선 성종 후궁 묘비석… 400년만에 환수

    <우리 마을 문화재>임진왜란때 日 유출된 조선 성종 후궁 묘비석… 400년만에 환수

    진관동 숙용심씨 묘표 조선조 성종의 후궁이었던 숙용심씨(淑容沈氏·1465∼1515)의 묘표(墓表)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126번지 한옥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묘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로 흔히 비석이라고도 불린다. 묘표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등이 새겨진다. 진관사 찾아가는 고갯길 자락에 묘표가 자리 잡고 있어 예전에는 눈에 잘 띄고 찾기도 쉬웠지만 지금은 주변에 한옥이 빼곡히 들어차 물어물어 가야 한다. 우선 한옥마을 한가운데 천상병, 중광, 이외수 시인의 작품이 전시된 ‘셋이서 문학관’(서울 은평구 진관동 125-29)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옆 골목길을 끼고 50여m 걸어가면 학산루 건물이 보이고 건물 담장 뒤편으로 묘표와 제단이 있는 동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보인다. 동산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묘표도 보호를 위해 두꺼운 유리막으로 덮여 있다. 이 묘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이 환수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또 묘표는 성종대왕 후궁 숙용심씨의 묘가 실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왕실의 유물이다. 숙용심씨는 청송 심씨 출신으

    이경택 | 2018-06-05 11:22
  • <우리 마을 문화재>김포장릉, 인조 아버지 정원군 묘… 조선왕릉 중 유일한 후궁소생 추존 왕릉

    <우리 마을 문화재>김포장릉, 인조 아버지 정원군 묘… 조선왕릉 중 유일한 후궁소생 추존 왕릉

    조선왕릉은 2009년 6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에서부터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까지 모두 40기의 왕릉이 인류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왕릉은 모두 42기이지만 북한의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은 제외됐다. 그런데 조선왕릉 40기 중 무려 31기(12개소)가 경기도에 있다. 김포시청 인근(경기 김포시 풍무동 산 141-1)에 있는 ‘김포장릉(金浦章陵·사진)’도 그중의 하나다. 장릉은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의 부모인 추존 왕 원종과 인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1970년

    이경택 | 2018-05-16 11:53
  • <우리 마을 문화재>1890년 일제강점기 하역회사의 사무소 겸 숙소… 지금은 카페로

    <우리 마을 문화재>1890년 일제강점기 하역회사의 사무소 겸 숙소… 지금은 카페로

    인천 구 대화조사무소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는 이들 중 건축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차이나타운 인근인 관동1가 17에 자리 잡은 ‘인천 구 대화조(大和組)사무소’(등록문화재 567호·사진)가 바로 그곳이다. 100여 년 전에 지어진 3층 목조건물로 근대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야 하는 필수 답사 장소이기도 하다. 등록문화재명은 ‘구 대화조사무소’이지만 건물에는 ‘카페 팟알(pot_R)’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팟알은 커피와 팥빙수, 나가사키 카스텔라로 유명한 ‘맛집’이기도 하다. 1880년대 말∼1890년대 초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건물은 해방 직전까지는 하역 업체인 대화조의 사무실 겸 숙소로 쓰였다. 대화조는 인천항을 무대로 영업을 했던 하역회사 이름이다. 1883년 제물포항이 문을 열고 무역항으로 자리 잡으며 해상 교역량이 늘어나자 짐을 배에서 부두로, 배에서 배로 옮기는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대화조는 인부를 해운회사에 공급하는 업체 가운데 하나였다. 3층 건물로 지금 1층은 테이블이 놓인 카페 공간으로, 2, 3층은 여전히 다다미방으로 세미나실 용도 등으로

    이경택 | 2018-05-02 10:48
  • <우리 마을 문화재>고려때 창건… 10만평 절터에 수많은 주춧돌·석축 ‘한국의 마추픽추’

    <우리 마을 문화재>고려때 창건… 10만평 절터에 수많은 주춧돌·석축 ‘한국의 마추픽추’

    양주 회암사지 흐트러진 주춧돌 몇 기에 온전치 못한 탑신의 잔해, 그리고 황량한 빈터 위로 불어대는 스산한 바람…. 절이 있던 자리인 폐사지라는 단어를 접할 때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 14번지 천보산(423m) 자락의 회암사지(사진) 앞에 서면 그 같은 선입견이 깨진다. 계단 형태로 조성된 절터는 일단 그 규모만 33만3233㎡에 이른다. 평수로 계산하면 10만 평이 넘는다. 절터에 남겨진 수많은 주춧돌과 석축은 옛 영화를 무언 중에 말해주고 있다. 사찰 입구의 당간지주와 괘불대로부터 부도탑 등은 이 사찰의 규모가 어떠했는지 쉽게 상상치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일부 답사객들은 이 회암사지를 보고 ‘한국의 마추픽추(페루 유적지)’라며 감탄하기도 한다. 기록에 따르면 번성기 때 회암사의 규모는 전각만 260여 칸에 암자는 17개였고, 승려는 3000여 명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회암사는 조선 중기까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대 최고의 가람으로 자리잡는다. 회암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인도 출신의 원나라 승려 지공선사(指空禪師)가 1320년대 통도사 등 사찰을 순례하다가 회?

    이경택 | 2018-04-18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