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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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덧없는 인간사 목격한 山이 낮게 말했다… “내게 오렴”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4) 외치(Oetzi), 산에 오르다 5300년전 오스트리아 알프스 키 165㎝에 힘도 약한 ‘외치’ 사냥대신 나무·돌 다듬기 즐겨 그런 그를 30년 사랑해준 엘렌 어느 날 다른 남자와 짐싼 그녀 뒤따라가 머리채 움켜잡은 순간 곰 넓적다리뼈 도끼가 옆구리에 흐릿한 시야로 달아나는 ‘한쌍’ 눈폭풍·추위 막아준 큰바위밑 엘렌의 젖무덤보다 더 푸근해 행복한 잠이 끝없이 밀려왔다 “엘렌, 네가 나한테 그럴 수는 없는 거야. 네가 날 버리고 후치를 따라가면 안 되는 거야. 너 없이 나는 어떡하라고…….” 외치는 숨 쉴 때마다 쿡쿡 결리는 오른쪽 옆구리를 매만지며 갈다 만 화살촉과 부싯돌, 손도끼 등을 가죽부대에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엘렌과 후치가 서로 주고받는 눈길이 이상하고 불안하다고 느꼈던 예감이 오늘 아침 현실로 드러났다. 움막 밖에서 날카로운 휘파람소리가 들리자 엘렌은 외치가 공들여 만들어 준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부드럽고 멋진 가죽옷을 말아 안고 살그머니 나갔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외치가 뒤따라 나가며 엘렌의 긴 머리채를 움켜잡?
문화일보 | 2019-05-22 14:09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섬에서 살아볼까 한다고? 그렇다면 당장 더블린부터 다녀가게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3)기항(寄港)의 섬 이십 년 전의 첫 만남부터 공항에 마중 나올 때까지 그는 여전히 술과 함께였다 날 반긴건지 술을 반긴건지 새벽부터 달려나온 녀석 영락없는 아일랜드인 모습 제주만 섬인가, 여기도 섬 어차피 지구는 우주의 섬 더블린의 삶을 보고가면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거라네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자 철은 휴대폰부터 켰다. 헤이, 나 지하 1층 바에서 모닝 비어 한잔하고 있을게. 패트릭의 문자가 벌써 들어와 있었다. 공항에 마중까지 안 나와도 되는데 굳이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누라 잔소리를 피해 아침부터 한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철의 코끝에서도 구수한 기네스 향이 아른거렸다. 어휴, 하필 그 짜증 나는 드골공항에서 갈아탔단 말이지. 파리 시내엔 좀 들어가 봤나? 노트르담 머리가 날아가다니…! 아깝긴 하지만 부자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지. 벌써 1조 이상 모였다며? 빅토르 위고가 거길 배경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그 성당은 벌써 옛날에 폐사지가 되었을 거야. 더구나 요즘 세상에 누가 신 따윌 신경 쓰겠나, 그 잘난 프랑스인들이 말야…
문화일보 | 2019-05-08 11:08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직장회식 빠지고 대리운전하러 간 그날밤, 동료들과 마주쳤다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2) 솜사탕 포플라 대리기사로 내가 나타나자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가래침을 뱉으며 돌아섰다 회사 그만두고 잠이 줄었다 하루 1분씩… 이러다 죽을까 이력서를 들고 집을 나서니 기다렸다는 듯 버스가 왔다 ‘시원한 밀짚모자 포플라~’ 버스서 흘러나온 이노래는 어릴적 낮잠 들때 들리던… 잠에서 깨 솜사탕을 핥았다 ‘시원한 밀짚모자 포플라 그늘 아래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장의 아가씨~’ 아, 정말 오랜만에 불러보는 노래다. 응? 그런데 내가 왜 이 노래를 하는 거지? 아니다. 버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나도 모르게 따라 했던 것이다. 승객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날 위해 틀어주었는지 모른다. 운전석 거울에 반쯤 비친 기사의 얼굴이 어쩐지 나와 닮았다. 난 이 노래를 좋아한다. 어릴 적 한여름 낮, 마룻바닥에 누워 매미 소리 들으며 막 선잠이 들 때 누군가 부르는 이 노랫소리는 나를 행복한 잠 속으로 빠르게 떠밀었다. 곧 알게 되었지만 이웃 집 누나가 집안일을 하면서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그 누나는 늦도록 시집을 가지 않았?
문화일보 | 2019-04-24 10:59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성님네 형수가 들이닥친 담날, 오산댁은 뒷정리도 못하고 내뺐다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1) 시방부텀 봄이여 좀 내비두지 않고 왜 쑤석거려 읍내는 왜 델고가 술 쳐마시나 여편네는 내가 원흉인 줄 알어 오산댁이 강반장 믿고 의지해 현장따라 댕기며 밥해줬는데… 그 따우 찌질한 짓거리를 해? 이런 시러베 자슥들을 봤나! 오해 풀려 오산댁 다시 온다니 우리 발목 잡던 겨울귀신 가고 훠이~훠이~ 시방부터 봄이여~ “염병, 춘삼월 된 지가 한참이구먼 으째 이리 썰렁한 겨?” 곽 목수는 잔뜩 움츠려 팔짱을 낀 채 함바집 안으로 들어섰다. 말이 함바지, 그걸 꾸려가던 사람이 떠난 지 일 년도 더 된 컨테이너 농막이다. 인근의 농업대학 연구소 공사가 끝난 후 방치돼 있는 것을 공사 동료들이 사랑방처럼 쓰고 있었다. 오늘 그 공사 때 십장을 맡았던 강 씨가 한 팀으로 일했던 다섯 사람에게 기별을 해왔다. 읍내 오일장에서 고등어 몇 손을 샀으니 오랜만에 한잔하자는 거였다. 강 씨는 함바집 아낙이 버리고 간 업소용 고추장 깡통으로 만든 화로를 지피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선 ‘데모도’ 손 씨가 생선을 신문지에 펼쳐놓고 소금을 뿌리다가 특유의 삐딱한 미소를
문화일보 | 2019-04-10 11:40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그는 한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다, 모두 두려워했다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20) 무서운 놈 K L은 K에게 짜장면을 댔다 P는 명실공히 ‘넘버 투’다 나 K는 싸움을 싫어하지만 밟을 때는 확실하게 밟는다 L이 소유한 빌딩 옆에서 포장마차 하는 P를 만났다 C는 경찰 경비과장이 되고 나 K는 보험사 영업과장이다 “야, K! 누가 널 좋아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냐 병신새끼” L이 내게 매우 공격적이다 나보고 ‘병신새끼’라니… K, 난 그가 무서웠다. 그가 곁눈으로 치어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어쩌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면 일단 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게 좋다. 그의 기분에 따라 느닷없이 주먹이며 발길질이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들은 그런 그를 모두 두려워했다. 그는 한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이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절로 잔인해진 미친놈 같았다. 그를 중심으로 주먹깨나 쓰는 애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고 그것은 가장 두려운 조직이 됐다. 나 L은 그에게 짜장면을 대는 것으로 쉽게 신분보장이 이뤄졌다. 그는 배갈 한 병에 짜장 곱빼기를 꼭 두 그릇씩 먹었다. K, 그를 생
문화일보 | 2019-03-13 11:01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이렇게 무심하게 가기도 힘든데… 여전히 알고 싶은 ‘정든 타인’이여!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9) 그녀에게 ‘代물림’ 간장종지 꺼내다 박살 별일이네! 되뇌며 뒤처리하다 받은 부고 문자에 어안이 벙벙 갱년기 겪으며 만남이 뜸해져 病苦 사실조차도 몰랐다니… 사람은 자기안으로 열린 존재 담담히 떠난 당신의 길 대해, 언젠가 뒤이어갈 나의 길 대해 그때까지 잘 계세요, 오랜 벗! 입춘도 지났으니 봄눈이라 부를까요. 포슬포슬 쌀가루처럼 흩날리다 강물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봄눈이 안개처럼 자욱한 북한강변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 세밑의 분주한 겨울 아침, 당신은 강 저편으로 떠났습니다. 강 이편에 남은 우리들과 함께했던 지상의 시간들에 홀연히 작별을 고하며…. 당신의 부음을 듣고 우리들은 어안이 벙벙했지요. 더욱이 지난 한 해에 가까운 지인을 셋이나 잃은 나는 이 믿기지 않는 추가 부고가 황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사십 년 가까이 이어져 온 모임의 멤버들인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 거야? 되물으며 풀숲에서 별안간 날아오른 한 마리 새의 비상에 놀란 미어캣들처럼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요. 그날 아침 나?
문화일보 | 2019-02-20 11:18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미완의 사이, 공허함을 모면하려 시계와 달력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8) 늙은 어린왕자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 곧 날짜가 넘어가면 달력은 벽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달력은 초침 꼬리를 데리고 내가 서 있었던 시간밖에서 중간 회색의 빛깔로 웃는다 어린왕자는 B612에 있을까? 그는 지금 몇 살쯤 되었을까? 늙은 어린왕자라니… 담배가 없다. 빈 담뱃갑의 비닐포장을 벗겨 종이 갑만 재활용 종이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문득 귀찮고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습관적 이 행동은 바람직한 사회적 미덕이라고 당연시했었지만 이것이 과연 얼마나 실효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쓰레기통 앞에서 엉거주춤 선 채 사회적 이상과 구호의 실체에 마주하여 이제야 처음으로 쩔쩔매는 지금의 내가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하여 그 꼴을 거울에 비쳐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허접한 몰골은 굳이 거울을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눈앞에 그려지기에 도리질을 치며 한 손에는 담뱃갑을 또 한 손엔 비닐포장을 쥔 채 멍청하게 서 있는 동안 지구는 초속 1669킬로미터로 자전을 하며 돌고 또 동시에 초속 29.8킬로미터로 ?
문화일보 | 2019-01-30 11:26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슈퍼스타 예수의 마이웨이를 수백 년 앞서 예언한 마스터 요나”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7) 거룩한 독서 내 심정 대변하는 요나의 구절 모르고 살아온 쌍둥이 형제와 만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느님 명을 어기고 도망가고 희생 제물로 자기를 던지라니 이런 쾌남이 있는가! 자신이 못 본단 사실을 잊고 볼것이 안보임을 알아챈 그에게 낯선 視界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도 폴은 카페 움브레 아니매에서 책을 읽고 있다. 라틴어로 ‘영혼의 그늘’을 뜻하는 공간에서 그가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애견 벤은 카페 밖 가로수 그늘에 앉아 스쳐 가는 세상의 호흡을 읽는다. 환속한 프란치스코회 신부가 십여 년 전 차린 이 카페는 에스프레소 수준으로 진한 아메리카노가 유명하다. 커피 인심이 넉넉하여 리필도 해주는데 폴은 이미 그 두 잔을 다 마셔버려 웨이터가 잔을 거둬갔다. 커피 한 잔 주문에 세 시간째 2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에게 자리를 내어 달란 요구 따윈 하지 않는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방식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허락되는 편의를 잘 알고 있기에 거의 매일 한 차례씩 그 카페를 ?
문화일보 | 2019-01-09 11:13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놈이 그 자리에 없으면 다른 자리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
■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6) 서로에게 그림자일 뿐 술자리 제일 먼저 왔던 金화백 석달째 보이질 않자 뒷말 무성 백일 지나자 “작업실로 오라” 사실주의에 30년 천착하더니 재벌 사위 친구 조롱에 작심 추상으로 변화시킨 작품 열점 “작품 열 개가 모여 한 작품이뤄 우리 사는 거와 비슷한 그런것 거짓말 안해, 간사하지도 않고” 최근 김 화백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술자리면 제일 먼저 와서 가장 늦게까지 있는 그가 벌써 석 달째 보이질 않자 술자리 친구들의 화제는 자연 그의 부재에 쏠렸다. 혹자는 그가 장기 해외 스케치 여행을 갔을 것이라고 했으나 김 화백의 주머니 형편상 터무니없는 발상으로 결론 났고, 우울한 예술가의 비극적 정황을 점쳐보는 이도 있었으나 지인들은 차라리 악담을 하라며 퉁을 주어 본전도 못 건진 이도 있었다. 아무튼 그 누구도 김 화백의 소식을 모르는 사이 석 달하고도 열흘, 그러니까 꼭 백일이 지나서 김 화백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자기가 작품의 한 주제에 빠져 골몰하느라 외부와의 연락도 일절 끊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제 그동안의 작품들을 보여주려 하?
문화일보 | 2018-12-19 15:16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진짜 금칠한 금박액자의 금빛보다 더 金 같지 않아요?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5) 금빛의 조건 바지의 경이로운 금빛에 매료 실제로는 누런색 바탕칠 위에 섬세한 붓 터치의 효과일 뿐 거품이 문명을 만들어내는 것 환상·환시…이런 것 없었다면 인류문화는 굉장히 따분할 걸 어둑신한 주점용 조명 아래서 술잔 일렁이는 금빛 환시 명상 뉴욕 밤 택시 노란색도 황금빛 그는 고개를 약간 외로 꼰 채 수그린 이마에 한 손을 얹고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스름녘 황금빛 잔광이 바로크풍 아치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그의 얼굴 절반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마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반가면을 쓴 팬텀 같은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된 그의 모습에 생각했던 이상으로 혐오감이 치솟았다. 그는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테이블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카페 맞은편은 소호에서 가장 번화한 유흥가이다. 길을 건너자 화려한 네온 간판들이 거리의 여인들처럼 다투어 호객을 했다. 금요일 밤의 소호는 바람난 귀부인처럼 내숭을 던져버리고 자포자기적 해방감으로 들썩인다. 그녀는 그와 함께는 아니지만
문화일보 | 2018-11-21 11:20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영감의 느린 파리채에 깔린 금파리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
김의규·구자명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14) 빠름보다 느리지 않은 느림 물린 밥상 모서리 앉은 금파리 반쯤 먹은 꽁치조림·흘린 밥알 앞발 모아 싹싹 빌며 입맛 다셔 어느새 꽁치 대가리서 식도경 영감의 눈, 순간 매섭게 빛나고 손 슬그머니 뻗어 파리채 잡아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휘두르는 영감 손 놀리며 비웃다 그 웃음은‘틱’소리와 끝났다 윙~ 금속성 광채를 빛내며 금방 물린 밥상 모서리에 날아와 앉은 금파리. 반쯤 쪼아 파먹은 꽁치조림, 김치, 그릇 바닥에 몇 숟가락 남은 된장국. 흘린 밥알들, 그리고 몇 모금 남은 숭늉. 끄윽~ 영감의 비린 트림이 밥상 위를 게으르게 덮는다. 금파리가 앞발로 머리를 비빈다. 닦아낸다. 털어낸다. 영감은 금파리의 비비는 짓을 보다가 짜장면을 생각했다. 파리채 옆에 놓인 동네 중국집에서 광고용으로 준 이쑤시개 통에서 이쑤시개 하나를 뽑아 들었다. 쯥쯥쯥쯥~ 벌어진 이빨 틈새를 쑤셔대다가 이름 끝에 ‘자’가 들어 있는 옛 계집이 생각났다. 명자? 숙자? 혜자? 거의 희미해진 기억의 쪼가리를 아예 털어 낼 심산으로 도리질을
문화일보 | 2018-11-07 10:55 -
<이 푸른 별에서 너와 나는>“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3) 비 내리는 고모역¹ 단신 越南한 실향민 시아버지 동란중 어머니·여동생과 이별 이산가족 상봉 1차부터 신청 아흔 두 살 생애 마감 며칠 전 아들 불러 다시 상봉신청 부탁 빛바랜 수첩속 누런 詩 한편 큰아들·시누이 숙연한 경청 “어머니가 그리웠던 할아버지 핑생 가심에 비가 내?던기라” “우와, 할아버지 살아계셨으면 우리도 저거 맛보는 건데, 쩝.” 식혜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막내가 TV 뉴스를 일별하더니 말했다. 간밤에 늦게 내려와서는 집안 남정네들 틈에 끼어 겁 없이 가양주를 마셔대더니 부석부석해진 얼굴이 티를 냈다. 경산댁은 마흔이 낼모레인 딸년이 철딱서니라곤 도통 없이 시들어 가는 게 참 딱했지만, 마루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영감이 행여 들을까 나직이 대꾸했다. “와 아이라, 니 아부지가 할부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 일로 관에 들락거?다 아이가. 이래 일찍 그기 다시 시작될 줄 누가 알았노.” 시아버지가 원산서 부르주아 반동 지식인으로 찍혀 동란이 터지기 얼마 전 홀어머니를 두고 단신 월남한 실향민이란 건 알 만한
문화일보 | 2018-10-17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