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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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군데군데가 군대야, 안심하지마… 뼈 때리는 ‘아무말 대잔치’
‘우정의 무대’(1989∼1997)가 사랑받은 덴 출연 병사들의 거짓말도 한몫했다. 자기 어머니가 아닌데도 무대에 뛰어 올라와서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울부짖듯 외쳤다. 주장하는 근거도 다채로웠다. ‘어젯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서’ ‘전우의 어머니는 곧 저의 어머니라서’. 속 보이는 능청스러움이 보기 좋았던 건 그 코너의 제목이 ‘그리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그립지 않은 병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사전모의 없이 매회 반복되는 그들의 거짓말은 모자 상봉을 축하해주는 일종의 상황극이었고 고
문화일보 | 2025-05-12 09:26 -
정직해지길, 겸손해지길, 축복받길… 교황이 남겼을 법한 마지막 기도
봄날에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 구가(謳歌: 입을 모아 함께 노래)하던 귀요미는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어찌하랴. 진달래는 해마다 피고 다람쥐는 여전히 뜀박질하는데 한번 간 인생의 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망하긴 좀 이르다. 노래는 시간의 파수꾼이다. 흘러간 노래는 없고 흘러온 노래가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약수처럼 그 시절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생수 한 모금으로 굳었던 몸이 반응한다면 비록 짧은 순간일지언정 우리는 소풍 가는 어린 음악대로 복귀한다. 흐렸던 눈은 맑아지고
문화일보 | 2025-04-28 09:19 -
살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
영국이건 미국이건 공항 터미널에서 묻는 건 비슷하다. 왜 왔느냐. 언제까지 머물 거냐. 천국의 입국심사는 어떨까. 왜 왔느냐 물으면 그냥 죽어서 왔다고 답하는 게 무난할 성싶다. 만약 ‘자격이 되니까 왔겠죠.’ 이렇게(삐딱하게) 대답하면 입국 보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천국의 사정관은 여권과 수하물검사를 안 하는 대신 온유와 겸손을 중요시한다. 언제까지 머물 거냐. 사실 이건 예상 질문이 아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물을 것 같다. 누굴 만나고 싶냐. 천국에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아직 지상에 있어서 못 만
문화일보 | 2025-04-21 09:08 -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우리… 조금 기다려주는 게 사랑이지
‘그는 나의 동서남북이었다(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게 좋았을까. ‘난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하지만 나중엔 비장한 탄식이 이어진다. ‘내가 틀렸다(I was wrong)’ 제목은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 배신이 아니라 죽음을 애도하는 시다. 휴 그랜트 주연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Four Wedding
문화일보 | 2025-04-14 09:28 -
얼굴이 대수냐… 진정한 가수, 때가 되면 다 안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조째즈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세대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20대 아들은 ‘그게 노래 제목인가요’(냉소), 50대 아버지는 ‘가수는 가물가물한데 노래는 많이 들어봤죠’(무덤덤), 반면에 80대 할아버지는 총기를 되찾는다. ‘곽순옥이 히트시킨(1964) 걸 패티김이 나중에 또 불렀지. 이산가족 찾기(1983) 할 때 맨날 방송(KBS)에도 나왔잖아’(격앙) 이만하면 가요박물관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노인을 위한 노래는 있다. ‘곽순옥 가수 인상이 수더분했지’ 노랫말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이라는 부분이 사진 속
문화일보 | 2025-04-08 09:30 -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접누나’… 봄은 오지 말래도 온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정미 ‘봄’ 봄은 오지 말래도 온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은 ‘봄’이 아니라 ‘처녀 총각’(1934)이다. 원곡 가수(강홍식)의 노래를 찾아서 들어보니 가사가 한 글자(‘봄은 왔네’) 다르다. 봄이 오는 건 단순 미래다. 그에 반해 봄은 온다는 (믿음은) 의지 미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이런 시는 없다. 1926년에 이상화(당시 25세)가 쓴 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다. 봄은 가지 말래도 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알뜰한 그 맹세’(1953·백설희 ‘봄날
문화일보 | 2025-04-01 09:22 -
‘구르는 돌’이 건네는 경고… ‘정신차려, 그러다 추락한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밥 딜런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요즘은 휴대폰 속에 까치가 산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문자를 실어 나른다. “저는 복직했고 다시 출퇴근 지옥철을 겪고 있습니다” 엊그제 결혼한 것 같은데 어느새 육아휴직 마치고 다시 일 나가는 길이란다. 성실한 모범 청년. 열심히 사는 게 신조라기에 그렇게만 살다 죽으면 억울하니까 틈틈이 즐겁게 살라고 조언한 기억이 난다. 근황 보고에 나는 격문으로 화답했다. “힘들 땐 이런 생각으로 기운 내라. 죽은 사람은 지옥철에 탈 수 없다” 곧바로 까치가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그는 환승 문자를 천국의 언어로 바꿨고 나는 오전 내내 밥 딜런 노래로 발성 연습(우~ 우~)했다. ‘천국에 입장할 때는(Knocking on Heaven’s Door) 신분증, 훈장 따위 쓸모없잖아(Take this badge off of me. I can’t use it anymore)’ 티모테 샬라메(1995년생)가 밥 딜런(1941년생) 역을 맡은 영화엔 유명한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제목은 ‘완전 무명’(A Complete Unknown)이다. 어디서 이런 제목을 골랐을까. 무명의 밥 딜런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노래(‘Lik
문화일보 | 2025-03-24 09:03 -
까지고, 데며 어른이 된 우리… 그래도 계속 달려야해
■ 주철환의 음악동네 - 크라잉넛 ‘외로운 꽃잎들이 만나 나비가 되었네’ 광화문역 1번 출구로 나가려면 문장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매일 다녀도 벽에 그런 글씨가 씌어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하지만 멈춰선 누군가에게 글은 길이 되기도 한다. 글을 붙인 이는 자상하게 출처까지 밝혔다. 소설에서 ‘어린 왕자’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생텍쥐페리가 레옹 베르트에게 건네는 헌사 중 일부다. 부랴부랴 서가에서 꺼내 휙휙 넘기지 마라. 펼치면 바로 첫 장에 나온다. “이 어른
문화일보 | 2025-03-17 09:07 -
휘고 꺾이는 인간사 누군들 어쩌리… ‘승승장구’ 아니라도 뚜벅뚜벅 걸으리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박서진 ‘남도 가는 길’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연기자 송강호에게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영화 ‘넘버3’를 안 봐도 이 대사는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현정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버렸어.” 조용히 넘어가면 무탈했으련만 고지식한 부하가 구타를 유발한다. “임춘애입니다, 형님.” 권위에 도전한 대가는 혹독했다. 더구나 그날 수업(?)의 주제가 ‘헝그리’ ‘무데뽀’ 정신이었다.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쓸데없이 토 달면 배신이야 배신이란 말을 유행어로 만든 송강호는 그해(19
문화일보 | 2025-03-10 09:18 -
‘환희의 송가’서 따온 노랫말… 이 교향곡 듣고 ‘거리의 분노’도 사그라들길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시청자를 사로잡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홍보 문구부터 달라야 한다. ‘악인(惡人)이 되지 않기 위해 악인(樂人)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영화 ‘악인전’(2019)이 프로그램 제목에 영감을 줬을 거다. 지금 보니 영화의 주인공 마동석(조폭), 김무열(경찰)이 ‘범죄도시 4’에선 정반대의 역할로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팔색조 연기파의 변신은 무죄이자 책무다. 예능 ‘악인전’(2020)의 주인공은 송창식, 송가인이다.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클래식과 국악에서 대중가요로 판을 바꾸었다. 송창식의 서울예고 입학 동기 중에 지휘자 금난새가 있는데 일반인 특히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을 친절하게 소개한 분으로 유명하다. 만약 송창식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밤중에 도포 자락 휘날리며 체력 연마하는 장면을 볼진대 예사롭지 않은 마에스트로가 탄생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결과적으로 쎄시봉은 가요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준 대신 클래식의 명인 하나를 빼앗은 건지도 모른다. 음악 그 자체의 음악을 절대음악이라고 한다. 어릴 때 클래식을 감상하거나 ?
문화일보 | 2025-02-24 09:10 -
“쨍하고 해뜰날”에 칙칙했던 분위기 ‘쨍’… 희망을 움틔우던 그 노래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송대관 ‘해뜰날’ 친구는 역시 옛 친구. 예전 광고문구가 입술에 착착 붙으니 나도 옛날 사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옛 친구들은 한 얘기 또 해도 ‘인제 그만 좀 해’ 타박하지 않아서 좋다. 전역한 지 수십 년 지났는데 거기선 아직도 군대 얘기가 환영받는다. 일과를 마쳐도 신병에겐 또 다른 훈련이 기다린다. 지금과는 형편이 다른 시절임을 감안하고 듣기 바란다. 사격 개시 구호(노래 일발 장전)에 따라 신병들은 무반주로 메들리를 이어갔다. 상황 파악이 늦은 병사가 어디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산울림의 ‘한밤에’를 호소력 짙게
문화일보 | 2025-02-17 09:16 -
‘누군가의 삶에서 내가 의미 있다는 것’ … 사랑받는 자의 품격 보여줘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비욘세 ‘내가 여기 있었지’ 스타의 기준은 섭외하기 어려운 순서다. 전화 한 번에 실물 영접이 가능한 연예인은 성실하지만 갈급한 자다. PD를 피(P) 말리고 더러운(D) 직업이라 정의한 예능 선배가 내 속의 절반은 섭외하느라 썩었을 거라 털어놓은 적이 있다. PD가 갑인 줄 착각했다가 소속사의 도도함에 기겁한 후배는 다른 부서로 옮겨가 펄펄 날더니 자연 다큐의 대가가 됐다. 밀림에 약육강식은 있지만 감언이설은 없더라는 소회가 애잔했다. 그는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상 준다면 다 올 것 같지만 연예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토토즐’을
문화일보 | 2025-02-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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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
영국이건 미국이건 공항 터미널에서 묻는 건 비슷하다. 왜 왔느냐. 언제까지 머물 거냐. 천국의 입국심사는 어떨까. 왜 왔느냐 물으면 그냥 죽어서 왔다고 답하는 게 무난할 성싶다. 만약 ‘자격이 되니까 왔겠죠.’ 이렇게(삐딱하게) 대답하면 입국 보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천국의 사정관은 여권과 수하물검사를 안 하는 대신 온유와 겸손을 중요시한다. 언제까지 머물 거냐. 사실 이건 예상 질문이 아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물을 것 같다. 누굴 만나고 싶냐. 천국에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아직 지상에 있어서 못 만
문화일보 | 2025-04-21 09:08 -
서로 다른 ‘우주’에 사는 우리… 조금 기다려주는 게 사랑이지
‘그는 나의 동서남북이었다(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게 좋았을까. ‘난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하지만 나중엔 비장한 탄식이 이어진다. ‘내가 틀렸다(I was wrong)’ 제목은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 배신이 아니라 죽음을 애도하는 시다. 휴 그랜트 주연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Four Wedding
문화일보 | 2025-04-14 09:28 -
삶 군데군데가 군대야, 안심하지마… 뼈 때리는 ‘아무말 대잔치’
‘우정의 무대’(1989∼1997)가 사랑받은 덴 출연 병사들의 거짓말도 한몫했다. 자기 어머니가 아닌데도 무대에 뛰어 올라와서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울부짖듯 외쳤다. 주장하는 근거도 다채로웠다. ‘어젯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서’ ‘전우의 어머니는 곧 저의 어머니라서’. 속 보이는 능청스러움이 보기 좋았던 건 그 코너의 제목이 ‘그리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그립지 않은 병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사전모의 없이 매회 반복되는 그들의 거짓말은 모자 상봉을 축하해주는 일종의 상황극이었고 고
문화일보 | 2025-05-12 09:26 -
정직해지길, 겸손해지길, 축복받길… 교황이 남겼을 법한 마지막 기도
봄날에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을 구가(謳歌: 입을 모아 함께 노래)하던 귀요미는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어찌하랴. 진달래는 해마다 피고 다람쥐는 여전히 뜀박질하는데 한번 간 인생의 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망하긴 좀 이르다. 노래는 시간의 파수꾼이다. 흘러간 노래는 없고 흘러온 노래가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약수처럼 그 시절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생수 한 모금으로 굳었던 몸이 반응한다면 비록 짧은 순간일지언정 우리는 소풍 가는 어린 음악대로 복귀한다. 흐렸던 눈은 맑아지고
문화일보 | 2025-04-28 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