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2199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
90 | 생성일 2019-08-26 11:48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毋 自 欺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毋 自 欺

    성기의자(誠其意者)는 무자기야(毋自欺也)니 여오악취(如惡惡臭)하며 여호호색(如好好色)이 차지위자겸(此之謂自謙)이니 고(故)로 군자(君子)는 필신기독야(必愼其獨也)니라.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악취는 싫어하고 좋은 경치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자기 쾌족(快足)이라고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대학’ 전6장의 말씀이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善)은 천부(天賦)의 본연이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기가 진정한 자기일 텐데 때로는 외부 세력에 의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척하고, 작은 이해득실에 양심을 어기고 불선(不善)에 찬성하기도 한다. 모두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다. 나는 38년 전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조준하 선생께 ‘무자기(毋自欺)’와 ‘신기독(愼其獨)’을 배웠던 날의 충만감을 잊지 못한다. 내 좌우명이 된 게 바로 그때다. 하늘을 속이고 또 남을 속일 수는 있으나 어찌 자기를 속일 수 있으랴. 그 ‘무자기’의 실천을 위해 나는 ‘선불선’의 기로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사계(沙溪) 김장생 선생

    문화일보 | 2021-05-31 11:34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나비의 꿈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나비의 꿈

    부지(不知) 주지몽(周之夢) 위호접(爲胡蝶) 호접지몽(胡蝶之夢) 위주여(爲周與). 모르겠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건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건가. 주(周)는 장자의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핵심사상인 ‘제물론(齊物論)’ 말미에 ‘나비의 꿈’ 이야기를 우화로 넣었다. 그런 만큼 그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장주와 나비가 꿈속에서, 또는 꿈 밖에서 알쏭달쏭하다. 언젠가 그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문화일보 | 2021-05-24 11:39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늙은 말의 지혜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 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만난 글귀다. 전국(戰國)시대 말, 한(韓)나라 공족(公族)으로 태어난 한비자(韓非子)는 노자·순자(荀子)의 성악설을 계승한 법가(法家) 사상가로 중형론(重刑論)을 주장했다.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암군인 한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냈다. 진시황은 그의 저서를 보고 몹시 감탄했으나 그와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한비자는 그곳에서 옥중자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늙은 말의 지혜’는 ‘한비자 설림(說林)편’에도 나온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봄에 원정을 떠나 고죽국(孤竹國)을 치고 겨울에 돌아오는데 도중에서 눈이 내려 길을 잃었다. 위급한 이때 임금에게 아뢴 관중(管仲)의 말은 이것이었다. “늙은 말의 지혜를 쓰십시오.” 병사들은 늙은 말을 풀었다. 나이 든 말은 고향길을 알고 있어 그 말이 앞서는 대로 뒤따르니 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비자는 노마의 지혜를 성인의 지혜에 빗대고 있는데 나는 눈발을 헤치며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묵묵히 고향길을 찾아가는 늙은 말에게서 ?

    문화일보 | 2021-05-17 11:43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부생아신(父生我身)하고 모국오신(母鞠吾身)하며 복이회아(腹以懷我)하고 유이포아(乳以哺我)로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게 하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으니 배로써 나를 품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이셨도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구절이다. ‘호미도 날이언만은 낫같이 들 리가 없으니다.’ 옛글 한 토막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은혜를 낫에 비유한 것이다. 어느 날 술이 불콰하게 오른 아들은 집에 돌아와 노모를 보자 반색하며 등에 업었다. 손사래를 치며 마다하는 어머니를 기어이 거북 등판 같은 등에 업었다. ‘장난으로 어머니를 등에 업었네. 너무나 가벼워, 세 발짝, 그만 걸음 멈춘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의 하이쿠다. 아들을 세 걸음에서 멈추게 하는 각성. 언제 이렇게 되셨는가? 어머니의 실체가 달아난 듯한 느낌, 그만 술이 확 깨고 만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남방으로 향하고 계셨다. 도중에 뼈 한 무더기를 만나자 그분은 오체를 땅에 대고 예배를 드렸다. 제자가 까닭을 물으니 “여기에는 내 전생에 전생의 부모님의 뼈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

    문화일보 | 2021-05-10 11:41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마이너스에도 플러스가 있다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마이너스에도 플러스가 있다

    오늘까지의 내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수필집 ‘마음의 야상곡’에서 만난 글귀다. 그는 인생 3분의 1에 해당하는 삶을 병고에 시달렸다. 수술로 일곱 개의 늑골을 잃었고, 한쪽 폐가 잘려나갔지만, 그가 얻은 것은 일곱 개의 늑골이나 한쪽 폐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고 말한다. 가톨릭 작가로서 죄와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 ‘침묵’ ‘깊은 강’등이 있으며 프랑스 유학 중에는 모리아크의 소설론을 주목하며 ‘떼레즈 데께루’를 탐독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죄와 구원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실은 표리일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죄와 재생(再生)은 동전의 양면이며 죄와 구원은 표리일체며 등을 붙이고 있는 샴쌍둥이와 같다는 것이다. 죄 가운데 그 사람의 재생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부터 그는 죄조차도 우리에게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며 마이너스를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플러스로 전화(轉化)할 것을 권장한다. 우리 인생에서 일시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것- 좌절, 질병, 실패 등도 반드시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있고 그 가능성을 발견해서 구체화할 수?

    문화일보 | 2021-05-03 11:22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後漢사람 연독(延篤)의 독서법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後漢사람 연독(延篤)의 독서법

    “내가 평소 기억력이 부족해, 일찍이 100여 번씩 읽었던 것도 몇 달 뒤에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오직 연독(延篤)의 글만은 몹시 아꼈다. 10여 세 때, 한 번 보고 그 자리에서 외우고는 이제껏 50년이 되도록 한 글자도 잊은 적이 없다.” 위는 홍석주 선생이 ‘학강산필’에서 연독(後漢人)의 글을 소개한 내용이다. “동틀 무렵이면 머리를 빗고서 사랑채에 앉곤 했다. 아침에는 ‘주역’과 ‘서경’ ‘주례(周禮)’ ‘춘추’를 외웠다. 저녁에는 남쪽 다락에서 시를 읊조리고, 백가(百家)도 틈틈이 익혔다. 이때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받쳐주는 것도 몰랐고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내게 몸뚱이가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비록 고봉(高鳳)이 책 읽다가 폭우가 쏟아지는지도 모르고 (아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당에 널어 둔 겉보리가 모두 떠내려가게 했음) 고점리가 축을 연주할 때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했다고 해도 내게 견주면 댈 것도 아니었다”고 연독은 ‘여이문덕서(與李文德書)에 적고 있다. 독서삼매에 들어 자기 자신마저도 잊는다. 홍 선생은 어려서 읽은 이 연독의 글을 왜 평생토록 줄줄 외웠을까? 독서는 단순히

    문화일보 | 2021-04-26 11:30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혼돈의 죽음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혼돈의 죽음

    일착일규(日鑿一竅) 칠일이혼돈사(七日而混沌死) 하루에 구멍 하나씩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은 죽어버렸다. ‘장자’ 응제왕(應帝王) 편의 우화다. 남해의 임금은 숙이고 북해의 임금은 홀이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混沌)이었다. 숙과 홀이 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후의에 보답하고자 상의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7개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은 없으니 우리가 뚫어줍시다”라고 뜻을 모아 하루에 구멍 하나씩을 뚫어주었는데 일곱째 날에 혼돈이 그만 죽고 말았다. 결국 숙과 홀의 섣부른 친절이 혼돈을 죽게 만들었다. 혼돈의 본성을 파악하지 못한 그들의 판단착오다. 상대방을 위한 선행일지라도 내 입장이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인간들 유위(有爲)의 행동이 자연의 순박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그 과오를 장자는 이렇게 꼬집었던 것이다. ‘섞을 혼(混) 어두울 돈(沌).’ 굳이 그의 이름을 ‘혼돈’이라고 작명한 장자의 속내를 짚어본다. ‘혼돈’의 사전적 의미는 천지개벽 초에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아니한 상태, 사물의 구별이 판연(判然)하지 않고 모호한 상태라?

    문화일보 | 2021-04-19 11:31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사어의 시간(尸諫)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사어의 시간(尸諫)

    맹가(孟軻)는 돈소(敦素)하고 사어(史魚)는 병직(秉直)하니라. 맹자(孟子)는 바탕을 도탑게 했고, 사어는 올곧음을 지녔다. ‘천자문’을 지은 주흥사(周興嗣)는 맹자의 ‘돈소’와 사어의 ‘병직’을 들어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일깨운다. 인의(仁義)를 강조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사람의 본바탕인 착함을 더욱 도탑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춘추시대 위(衛)나라 대부였던 사어(史는 관직, 魚는 그의 字)는 자신이 맡은 일을 늘 살펴보며, 올곧게 지켜야 한다는 공직자의 자세를 몸소 보여줬다. 위나라 임금 영공(靈公)이 어진 현부 거백옥을 쓰지 않고 미자하를 총애했다. 사어가 임종 무렵 자식들에게 말했다. “내가 조정에 있으면서 거백옥을 등용시키고, 미자하를 쫓아내지 못했으니 이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살아서 바로잡지 못했으니 죽어서도 예를 갖출 수가 없구나.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창문 밑에 그대로 두고 빈소도 마련하지 마라.” 그의 아들은 그대로 했다. 영공이 조문 와서 그 까닭을 물으니 아들은 부친의 유언을 임금께 고하고 울 뿐이었다. 영공은 깜짝 놀라 말한다. “이는 내 허물이로다. 사어가 살았을 때

    문화일보 | 2021-04-12 11:37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호손의 白碑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호손의 白碑

    그가 오래 살아서 허옇게 늙은 주검으로, 늙어버린 아내 페이스와 자녀들, 손자, 그리고 많은 이웃이 애도의 행렬을 지은 가운데 무덤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그의 묘비에 아무런 희망의 시를 새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암울하게 죽어 갔으므로.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의 소설 ‘젊은 굿맨 브라운’의 결구다. 굿맨 브라운은 어느 날 밤, 낯선 사내와 동행이 되는데 그는 브라운의 조부가 세일럼 거리에서 퀘이커교도 여인을 채찍질했으며 브라운의 부친은 필립왕 전쟁 때, 인디언 부락에 불을 질렀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지금 악마의 검은 미사에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미사 장소에 가 보니 교회 지도자들과 마을 사람들, 아내까지도 검은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선과 독선을 목격한 브라운은 아내까지도 의심하는 냉소적 인간으로 변해 세일럼 마을로 돌아온다. 이 글의 결미에는 ‘묘비에 아무런 희망의 시를 새기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나는 콩코드의 슬리피홀로 묘역을 찾은 적이 있다. 반월형의 하얀 묘비에는 과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너무나 작고 간단했다. 단지 호손(HAWTHORNE

    문화일보 | 2021-04-05 11:42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노인과 바다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노인과 바다

    “네가 날 죽이고 있구나, 고기야, 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넌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난 여태까지 너처럼 거대하고 아름답고 태연하고 고결한 존재를 보지 못했단다. 내 형제야, 이리 와서 날 죽이렴. 누가 죽이고 누가 죽든 난 상관하지 않으마!”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이다. 어부 산티아고 노인은 멕시코만에 배를 띄우고 혼자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40일은 한 소년과 함께 지냈으나 소년의 양친이 노인의 운이 끊어진 것이라며 소년을 다른 배에 태웠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다른 날보다 더 멀리 나갔다. 한낮에 큰놈이 물렸다.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거대한 돛새치는 배를 더욱 먼 바다로 끌고 나간다. 밤낮이 바뀌는 동안 그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몇 날 몇 밤을 노인은 바다에서 혼자 하늘·바다와 대화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합일(合一)을 경험한다. 이제 그는 고기가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내 형제야, 이리 와서 날 죽이렴. 누가 죽이고 누가 죽든 난 상관하지 않으마.” 노인의 입에서 그런 독백이 흘러나왔다. 일?

    문화일보 | 2021-03-29 11:33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神性의 원형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神性의 원형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Vocautus atque non vocatus deus aderit.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神)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묘비명이다. 또한 그의 집 현관문에서도 만날 수 있는 글귀다. 이 글귀는 심리학자인 융을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신앙이 있었지만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융의 수제자인 폰 프란츠는 자기 스승을 가리켜 ‘큰 샤먼’이라고 불렀다. 샤먼은 저승의 신들을 불러 환자의 병에 대해 묻는다. 이런 입무(入巫)의 과정은 융의 ‘개성화 과정’의 원초적인 유형이다. 그는 자기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노이로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누미노제(numinose) 즉 신뢰와 함께 두려움을 자아내는 ‘신적인 것’에 대한 접근이라고 밝혔다. 누미노제를 체험하는 사람은 질병의 저주에서 풀려나는데 그것은 병 자체가 누미노제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 했다. 융은 신과 영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내적(內的)인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만년에 “신을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신을 안다”고만 답했다. 그리고 “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착각이다.

    문화일보 | 2021-03-22 11:31
  •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변화의 주재자가 신(神)이다

    <맹난자의 한 줄로 읽는 고전>변화의 주재자가 신(神)이다

    지변화지도자(知變化之道者)는 기시신지소위호(其知神之所爲乎)인저! 변화의 도를 아는 사람은 그 신(神)의 하시고자 하는 바를 아는구나! ‘계사전’ 제9장에서 공자가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논어’ 술이 편에서 그는 “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神’이란 대체 무엇인가?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공자의 초상화를 집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렸는데 공자가 신비함이나 기적을 말한 바 없이 최고 덕목을 인(仁)에 두고 인간을 교화한 그의 인간성에 감격한 나머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자가 ‘계사전’에서 언급한 신은

    문화일보 | 2021-03-15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