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2221 Interview
67 | 생성일 2019-09-06 11:41
  • < Interview 소회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관례는 고쳤으면”… “정치논리로 파행 거듭한 정무위 아쉬워”

    < Interview 소회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관례는 고쳤으면”… “정치논리로 파행 거듭한 정무위 아쉬워”

    ■ 20代 국회 떠나는 비례대표 최운열·김종석 의원 좌담 29일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던 20대 국회가 마무리됐다. 경제 전문가 출신으로 여야에 각각 영입돼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며 정무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국민복리보다 이념이 우선돼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최 의원과 김 의원은 당위론 또는 정치 논리에 입법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국회에 와서 보니 시스템 디자인에 대한 고민 없이 ‘옳은 게 옳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단순 논리로 도입하는 제도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모든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면 우리가 꼼짝을 못한다”며 “통과가 안 돼 다행인 법안도 많다”고 꼬집었다. 포스트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대를 맞아 과감한 인식 전환과 규제 개혁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좌담회는 지난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두 의원은 모두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불출마했고,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사회 = 조성진 정치부 차장 △사회 = 4년 의정

    조성진 기자 | 2020-05-29 11:17
  • < Interview 소신-이미경 >1993년 서울대 교수가 조교 성희롱… 공동대책위 꾸려 국내 첫 성희롱 판결 이끌어내

    < Interview 소신-이미경 >1993년 서울대 교수가 조교 성희롱… 공동대책위 꾸려 국내 첫 성희롱 판결 이끌어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약 30년간 이미경 소장이 몸담아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국내 최초의 성폭력 전문 민간상담기관이다. 성폭력에 대한 법과 제도가 미비하던 1990년대부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왔고, 피해자 치유와 역량 강화를 해온 이곳은 기존의 활동에 더해 이 소장의 희망처럼 성폭력에 대한 연구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기 전에는 국내에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상담기관은 사실상 없었다.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중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대응하는 곳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여성학을 공부하다 이에 문제점을 느낀 이 소장뿐만 아니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등 뜻있는 여성계 인사들이 1990년부터 개설 준비를 시작해 이듬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식 설립됐다. 상담소를 개소하자마자 21년 전 성폭행범을 살해한 김모 씨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서울대에서 교수가 조교를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상담소는 ‘성희롱도 범죄’라고 주장하며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피해자를 지원했?

    나주예 | 2020-05-22 10:44
  • < Interview 소신-이미경 >“성폭력, 갑자기 나타난 괴물 아닌 권력관계에서 일어나”

    < Interview 소신-이미경 >“성폭력, 갑자기 나타난 괴물 아닌 권력관계에서 일어나”

    ■ ‘30년간 피해자 보호 앞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우월적 지위에 따른 권력 악용 n번방도 약점잡아 협박 힘 작용 피해자 비난 잘못된 사회학습 20년 흘렀는데 후유증 고통도 성폭력 예방의 기본은 평등함 피해자 95% 女… 성평등 시급 일상속 언어·태도부터 바꿔야” 1991년 4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23.1㎡(7평)짜리 월세 오피스텔, 활동비 20만 원. 약 30년 전이라고는 해도 한 단체의 활동 여건치고는 지금 봐도 열악하다. 총무로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시작을 함께한 이미경(60) 소장이 기억하는 상담소 초기의 활동 환경은 이랬다. 남녀평등이나 ‘여권(女權)신장’이란 말을 내세우면 유난스럽다는 눈초리를 받던 당시의 열약한 여성 인권과 왠지 비슷한 맥락이었다. 지금은 여러 후원과 도움이 모여 서울 마포구에 4층짜리 건물을 마련, 부설연구소인 ‘울림’과 근처에 성폭력피해자쉼터인 ‘열림터’를 갖춘 상담소가 됐지만 그간 상담소가 거쳐온 세월과 과정은 올해 환갑을 맞은 이 소장의 표정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지난 12일 마포구의 상담소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이 소장은 “이렇게 상

    박준희 기자 | 2020-05-22 10:44
  • < Interview 열정 >“투기 종목 침체 심각… 선수층 두껍지 못해 좋은 선수 나오기 어려워”

    “유도계 떠났지만 여전히 관심” “헝그리 정신 이젠 안 통해 유망주 키울 토대 만들어야” 김재엽 동서울대 교수가 유도계와 인연을 끊은 지 벌써 24년이 지났다. 그는 유도인 이전에 스포츠인이다. 스포츠와의 인연은 끊을 수 없다. 축구, 골프를 즐기면서 20대 못지않은 체격조건,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회장 박노준) 부회장을 2011년 출범 때부터 맡고 있다. 국가대표선수회는 대표 출신 스포츠인의 화합, 스포츠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을 꾀하고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성원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김 교

    허종호 기자 | 2020-05-15 10:15
  • < Interview 열정 >김재엽 “유도계서 밀려난 지 24년…악바리 투혼, 공부에 쏟아부었죠”

    < Interview 열정 >김재엽 “유도계서 밀려난 지 24년…악바리 투혼, 공부에 쏟아부었죠”

    ■ 한국 유도 간판스타… 강단·예능서 활약하는 김재엽 서울올림픽 金메달 따고 은퇴 추석날 시상식서 한복입어 화제 후원사 노출 안돼 엄청 욕먹어 은퇴후 지도자의 길 들어섰지만 판정시비 항의로 ‘미운털’ 박혀 연금중단 징계받고 일자리 잃어 사업 손 댔지만 사기당해 실패 자해·자살 시도후 대인기피증 이혼후 아이들 키우며 견뎌내 공부밖에 재기할 방법없다 생각 매트에서처럼 죽기살기로 덤벼 17년째 동서울대에서 강의중 김재엽(56) 동서울대 스포츠학부 교수는 1980년대 한국유도의 간판스타였다. 그는 계명대 2학년이던 1984년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LA올림픽 남자 60㎏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했고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7 세계선수권대회, 1988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김 교수는 기술로 승부를 보는 경량급에서도 손꼽히는 테크니션으로 꼽혔다. 주특기인 허벅다리 걸기와 빗당겨치기는 물론 모든 유도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김 교수는 계성고 재학 시절 100연승 이상을 올렸고 고교 3학년이던 1982년부터 은퇴를 결정한 1988년까지 붙박이 국가대표였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JTBC

    허종호 기자 | 2020-05-15 10:15
  • < Interview 열정-김영철 >“길 나가면 항상 궁예·김두한으로 불려…이젠 ‘동네 한 바퀴 오셨네!’ 해주시죠”

    < Interview 열정-김영철 >“길 나가면 항상 궁예·김두한으로 불려…이젠 ‘동네 한 바퀴 오셨네!’ 해주시죠”

    ■ ‘동네 한 바퀴’로 정감 전하는 배우 김영철 낯선 동네 찾아 사람들 인터뷰 대본 없이 즉석에서 현장 전해 王·형사 등 많은 배역 했지만 아직 의사 역할은 맡은 적 없어 의사 같아 보이지 않았나 봐요 얼마전 뉴욕 사는 아들이 편지 ‘아버지 존경스럽다’처음 전해 “좋은 배우보다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 김영철(67)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게 약 2년 전이었다. 2018년 7월의 어느 날, KBS 1TV에서 정규편성되기 직전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보다가 갑자기 ‘촉’이 와서 인터뷰했다. 익숙한 서울 도심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단순한 포맷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리를 ‘걷는’ 속도로 보여주니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푸근한 인상에 넉넉한 음색의 김영철이 앞장서니 절로 믿음이 갔다. 기자처럼 느낀 시청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결국 정규방송으로 편성됐고, 지난달 25일 ‘속초’편으로 70회를 맞았다. “하루 종일 촬영에 평균 걷는 거리가 10∼12㎞는 된다”고 했으

    김인구 기자 | 2020-05-08 10:59
  • < Interview 열정-김영철 >소소한 일상 공개하고 대학 동아리 탐방하고… 구독자 어느새 10만

    < Interview 열정-김영철 >소소한 일상 공개하고 대학 동아리 탐방하고… 구독자 어느새 10만

    유튜브 채널 ‘영철마불’ 김영철은 최근 다양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유튜브 채널 ‘영철마불’이다. ‘영철마불’은 ‘김영철 마음의 불꽃’이라는 뜻. 할리우드 인기 블록버스터 시리즈 ‘어벤져스’의 제작사 마블(Marvel)을 연상시킨다. 처음엔 그냥 시험 삼아 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구독자가 10만 명을 넘었다. 김영철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영철마불’, 대학 동아리를 탐방하며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아이영맨’, 스타를 직접 인터뷰하는 ‘사딸라 데이트’ 등 크게 3가지 코너로 구성돼 있다. ‘영철마불’은 배우가

    김인구 기자 | 2020-05-08 10:52
  • < Interview 열정-김진호 >“한국인 ‘손가락 감각’ 특히 섬세해… 특유의 승부근성도 한몫”

    ■ 세계최강 한국양궁 왜? 올림픽 金 25.5% 양궁서 나와 女양궁 1988년부터 ‘불패신화’ 한국양궁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금메달 2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를 획득했다. 한국이 역대 하계올림픽에서 거둔 금메달 90개 중 25.5%가 양궁에서 나왔다. 그중에서도 여자양궁은 단체전이 정식종목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리우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는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양궁엔 ‘신궁’이 끊이질 않고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김진호(59) 한국체대 교수는 ‘원조 신궁’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고교 시절부터 국제무대를 주름잡았고, 오늘날 세계 최강 한국양궁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양궁은 한국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면서 “한국인은 과녁에 명중하는 데 필요한 감각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은 특히 손가락 감각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두 배는 섬세하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젓가락을 쓰고, 또 호기심이 많아 사물을 만지고 느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한국 내 모든 박물관에 ‘만

    정세영 기자 | 2020-05-01 10:40
  • < Interview 열정-김진호 >“끝내 ‘올림픽金’ 허락하지 않았던 양궁… 그 덕에 겸손 배워 ‘금빛 인생’ 맛봤죠”

    < Interview 열정-김진호 >“끝내 ‘올림픽金’ 허락하지 않았던 양궁… 그 덕에 겸손 배워 ‘금빛 인생’ 맛봤죠”

    ■ 女양궁 원조 신궁…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 1978년 아시안게임 韓양궁 첫 금·다음해 세계선수권 5관왕 당시 김연아급 인기…‘올림픽 효자종목’ 자리매김에도 기여 LA올림픽서 후배 서향순에게 밀려 금메달 좌절…동메달 그쳐 충격 컸지만 긍정적 자극으로 승화 “패한 선수들 맘 이해” 3월 IOC ‘여성과 스포츠상’ 수상…이에리사 이어 두번째 한국체대 교수서 퇴임하면 전국 유망주에게 재능기부 할것 김진호(59) 한국체대 교수는 한국 여자양궁의 원조 신궁(神弓)이다. 김 교수는 1970∼1980년대 한국 스포츠의 간판스타였다. 김 교수는 예천여고 2학년이었던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금메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양궁의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이듬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30·50·60m, 개인종합, 단체전 등 전 종목을 휩쓸며 5관왕에 올랐다. 당시 대한궁도협회에서 전통 무예인 국궁과 양궁을 전담했다. 신궁 김 교수의 등장으로 양궁은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김 교수는 세계무대에선 최고의 궁사로 인정받았다. 그는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정세영 기자 | 2020-05-01 10:40
  • < Interview 열정-김대길 >“열사 유관순 강인함 드러나게 서대문형무소 햇빛까지 계산”

    < Interview 열정-김대길 >“열사 유관순 강인함 드러나게 서대문형무소 햇빛까지 계산”

    ■ 4m 유관순 동상 만드는 김대길 교수 부릅뜬 눈·꽉다문 입·맨발차림 독립 열망하는 결연한 의지표현 부모잃은 열사 아픔도 담으려해 동상 계획안 짜던 스승 김행신 작년 세상떠난후 작업 이어받아 5월 제막앞두고 마무리 제작중 평소 생명력탐구 추상조각 몰두 유관순 역동성도 내작품과 통해 치마, 저고리를 입은 다부진 모습에 태극기를 든 채 맨발 차림으로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부릅뜬 눈, 꽉 다문 입이 특징인 유관순의 얼굴에는 독립에의 결연한 의지가 넘치고 있다. 경기 고양시 강화플라스틱(FRP) 공장에서 만난 유관순의 모습이다. 전남대 미술학과 김대길 교수 제작팀이 만들고 있는 유관순 동상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높이 4m, 폭 1.8m 크기의 대형 유관순 열사 동상은 유 열사의 수감일인 5월 20일 서대문역사공원(옛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제막식을 앞두고 있다. 공정을 살펴보면 광주에서 점토 원형 제작을 마친 후 고양시의 FRP 공장에서 FRP 원형으로 만들어져 23일 현재 청동 주조작업 직전 상태에 돌입해 있다. 청동 주조는 인근 공장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경택 | 2020-04-24 10:45
  • < Interview 자유 >대학 중퇴 뒤 회사 차려…展示관련 디자이너 활동, 세계여행 뒤 작가 변신

    ‘빼빼가족’ 최 씨는… ‘빼빼가족’ 가장 최동익 씨의 현재 직업은 여행작가다. 가족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을 마친 뒤 여행 책을 펴내면서부터 직업이 바뀌었다. 최 씨의 이전 직업은 전시기획 디자이너였다. 대구대 시각디자인과 3학년을 다니다 그는 더는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에 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신포도와 여우’라는 월간 문화지도 만들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13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1993년에는 디자인 회사를 차려 대표가 됐고, 한때는 직원이 16명에 이를 정도로 회사를 키웠다. 이후 2002년부터 울산 남구 장생포에 조성 중이었던 고래박물관 전시 자료 확보에 올인했다. 고래박물관 총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무보수로 일하면서 일본에서 어렵사리 전시용 고래 뼈를 구해오는 등 고래 관련 자료 확보에 열정을 바치느라 돈을 벌지 못했고, 디자인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어 2008∼2010년에는 울산 울주군에서 열리는 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전시팀장으로 일했다. 전시팀장을 그만둔 후 최 씨는 아내, 3명의 자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급기야 2013년 6월 3일 울산 간절곶에서 포르투갈 호카곶으?

    곽시열 기자 | 2020-04-17 10:52
  • < Interview 자유 >“온가족 세계여행 뒤 얻은 행복… 방 한 칸서 살지만 300점짜리 인생”

    < Interview 자유 >“온가족 세계여행 뒤 얻은 행복… 방 한 칸서 살지만 300점짜리 인생”

    - 집 팔고 유라시아 횡단 이후 6년… ‘빼빼가족’ 최동익 씨 2013∼2014년 직장 그만두고 미니버스 한 대로 24개국 여행 다섯식구 모두 체중 50㎏ 안팎 여행서적 내며 ‘빼빼가족’ 유명 “여행 도중 아이들이 문제 해결 자녀 인생 스스로에게 맡겨야 지금 내 인생은 백지 받은 상태 이번엔 ‘부부 전국여행’ 계획” 부모와 세 자녀 등 일가족 5명이 하나같이 빼빼 말랐다. 가족들의 몸무게는 남녀를 불문하고 50㎏ 안팎이다. 키가 170㎝가 넘는 20대 아들 두 명 모두 병역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기준에 못 미쳐 현역 입영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족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빼빼가족’으로 불린다. 가족에게 배달되는 택배 물품 주소란에 택배 기사들이 배달 편의를 위해 빼빼가족이라고 쓸 정도로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유명 인사들이다. ‘빼빼가족’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3년 6월 3일부터 2014년 5월 16일까지 348일 동안 울산에서 유럽의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대륙 24개국 횡단 여행을 13㎡(4평) 미니버스(일명 ‘무탈이’) 한 대로 성공리에 마친 뒤부터다. 이 여행의 선장은 여행을 처음 제안하고 출발부터 마

    곽시열 기자 | 2020-04-17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