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2233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320 | 생성일 2019-10-11 11:48
  • 봄동[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봄동

    봄에는 똥을 먹는다고? 글자를 보지 않고 발음만 들어보면 그렇다. 봄에 먹는 배추, 속이 들지 못한 채 잎이 옆으로 퍼진 배추의 발음은 틀림없이 ‘봄똥’이다. 가을에 씨를 뿌린 뒤 노지에서 겨울을 났으니 속이 들 수가 없다. 겨울바람을 피하느라 잎이 땅에 바짝 붙어 자라니 넓게 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라난 모습이 마치 소가 싸 놓은 똥과 비슷해 본래 ‘봄똥’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한 설도 있다. 봄은 힘이 세다. 추운 겨울을 견뎌 낸 뒤 새로운 희망으로 맞게 돼서 그런 것일까? ‘봄’은 뒤에 결합하는 단어들을 거의 된소리로 만든

    문화일보 | 2026-03-13 11:20
  • 쫀득한 쿠키[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쫀득한 쿠키

    정작 두바이 사람들은 먹지 않는데 이 도시의 이름을 넣은 과자의 인기가 뜨겁다. 겉은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이니 쿠키라 할 수 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초콜릿을 비롯한 복잡한 이름의 달콤하고 끈적한 재료에 견과류와 기성 과자를 부숴서 넣는다. 이런 재료들이 어우러져 끈적한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쫀득한 쿠키’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바이는 그렇다 쳐도 이 이름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이나 이상한 이름이다. 우리에게도 과자가 있지만 아무래도 과자는 서양의 음식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과자’라고 부르는 서양

    문화일보 | 2026-03-06 11:29
  • 피자와 ‘핏자’[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피자와 ‘핏자’

    “나는 핏자가 들어가는 건 핏국밖에 안 먹는다.” 30여 년 전의 국어학 전공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이런 말장난이 통했다. 3월에 갓 입학한 대학원 신입생이 점심시간에 피자를 연구실로 주문해서 먹자는 제안을 한다. 그런데 경주 토박이 남자 선배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이리 대답한다. 피자가 귀하고도 비쌌던 시절이니 아직 구경도 못 해 본 선배였지만 선짓국을 가리키는 ‘핏국’으로 ‘피자’와 운을 맞춰 재치 있게 대답했으니 웃음이 날 법도 하다. 오늘날에는 골목마다 피자 가게가 있을 정도이지만 피자가 대중화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탈

    문화일보 | 2026-02-27 11:05
  • ‘세 잔’과 ‘쌔 잔’[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세 잔’과 ‘쌔 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일행의 잘못은 아니다. 시원한 맥주가 생각 나서 세 사람이 맥줏집을 찾았다. 생맥주 관리가 시원치 않은 집이라 병맥주를 주문했는데 잔 하나에 금이 가 있다. 20대 초반의 ‘알바’를 불러 ‘새 잔 주세요’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잠시 후 이 친구는 거품이 찰랑대는 생맥주 세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새 잔 달라고 한 건데요?’라고 했더니 이 친구 대답이 가관이다. 그럼 ‘쌔 잔’이라고 하셔야죠! 어이가 없다. 방언 전공자에게 ‘에’와 ‘애’의 구별은 필수이니 정확하게 ‘새’라고

    문화일보 | 2026-02-20 11:10
  • 나이를 먹다[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나이를 먹다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먹는다. 먹는 것의 첫 번째는 역시 음식이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그 외에 담배, 연기, 마음, 나이, 겁, 욕, 뇌물, 점수 등을 비롯해 전체 15가지의 서로 다른 부류를 먹는다. 음식은 본래 생존을 위해 먹은 것이지만 큰 즐거움을 주기도 하니 반갑다. 담배는 몸에 해로우나 즐거움을 주기도 하니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마음은 먹기 나름이니 좋고 나쁨을 가리기 어려우나 나머지 종류는 대부분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연탄가스나 유독 가스는 죽음에 이르게 하니 피해야 한다. 겁을 먹으면 비겁해지고 욕을

    문화일보 | 2026-02-13 10:47
  • 불맛과 냇내[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불맛과 냇내

    ‘냅다’라는 형용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냅다 뛰어가다’에 쓰여 몹시 빠르고 세찬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 얘기가 아니다. 연기 때문에 눈이나 목구멍이 따가운 느낌이 들 때 쓰이는 형용사 말이다. 과거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모닥불을 지펴 불을 쬘 때는 이 말을 사용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화재를 비롯해 원치 않는 불이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연기를 맡을 일이 없으니 이 형용사를 쓸 일이 없어 잊히는 것이다. ‘내’도 마찬가지다. ‘시내’에도 쓰인 ‘내(川)’가 아니다. 연기나 냄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어 ‘연기(煙氣)’ 이전에 쓰

    문화일보 | 2026-02-06 11:01
  • 카배추[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카배추

    겉은 연두색, 속은 노란색의 잎이 사람 머리 정도의 크기로 겹겹이 말려 있는 채소가 있다. 그 이름은 서양에서 온 배추란 뜻의 양배추(洋白菜)다. 이 채소의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이니 정확한 이름이지만 방언에서의 이름은 매우 다양하다. 그 대표형으로 정리해 보자면 ‘다두배추, 가다배추, 카배추’ 등이다. 배추와 양배추는 식물학적으로는 다른 종이지만 생김새와 용도가 비슷하니 모두 배추라 하는데 문제는 앞에 붙은 말들의 유래다. ‘다두’와 ‘가다’는 이 채소가 서양에서 유래했지만 중국 북방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두는 ‘대두

    문화일보 | 2026-01-30 11:38
  • 대가리와 주둥아리[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대가리와 주둥아리

    “고놈, 대가리는 조막만 한데 주둥아리는 길쭉하니 참 귀엽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소란은 이 말로부터 시작된다. 늘 이웃과의 대화가 고픈 할머니가 주인의 품에 안긴 특이한 개를 보고 하는 소리다. “우리 강아지, 아니 우리 애한테 대가리라뇨, 주둥아린 또 뭐예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40대 견주의 날 선 말에 엘리베이터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얜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란 말이에요”라고 쏘아붙이며 나가는 말도 아프다. 국어 선생으로서 심판을 보자면 할머니의 압승이다. 개도 동물이니 ‘머리’와 ‘입’ 대신 ‘대가리’

    문화일보 | 2026-01-23 11:15
  • 달콤쌉싸름[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달콤쌉싸름

    대중적인 음식으로 입소문을 타려면 ‘단짠’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단맛은 손쉽게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인간이 길들인 맛이고 짠맛은 그야말로 맛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맛을 가리키는 두 말이 ‘단짠’으로 합쳐지는 것에는 큰 거부감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맛을 표현할 때 많이 쓰는 ‘달콤쌉싸름’은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각각 ‘달다’ 및 ‘쓰다’와 관련이 있는 말인데 이 두 맛은 서로 반대여서 과연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달콤하다’는 ‘달다’보다 더 감칠맛이 느껴지니 말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반면에 ‘쌉

    문화일보 | 2026-01-16 11:25
  • 우케와 ‘실 오프너’[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우케와 ‘실 오프너’

    ‘놈들은 우케 멍석에 앉았던 참새 떼처럼 와 웃으며 우르르 도망쳤다’. 1974년부터 연재된 송기숙의 소설 ‘자랏골의 비가’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언뜻 보면 오타처럼 보이는 ‘우케’는 무엇일까? 무언가를 펴 놓고 말리기 좋은 것을 가리키는 멍석 위에 참새 떼가 좋아할 만한 것이 놓여 있다면 알곡이라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렵다. 이토록 낯선 말이지만 놀랍게도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훈민정음’에도 이 단어가 나타난다. 사전을 보면 방아를 찧기 위해 말리는 벼라 풀이돼 있으니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쓰거나 들어봤을 말이

    문화일보 | 2026-01-09 11:21
  • 담배를 떼다[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담배를 떼다

    ‘떼다’라는 동사는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데 이 목적어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의외로 ‘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만큼 껌이 우리의 일상에서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동사는 매우 넓게 사용돼 그 넓이만큼 많은 목적어가 사용된다. 화투로 점을 칠 때도, 애써 밴 아이를 지울 때도 이 동사를 쓴다. 이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서도 이 동사를 쓴다. 인생에서 가장 먼저 동사 ‘떼다’를 쓰는 순간은 지극히 슬픈 경험이다. 바로 영양 많고 먹기에 편한 엄마의 젖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순간이기 때

    문화일보 | 2026-01-02 11:01
  • 밑반찬[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밑반찬

    ‘위’의 반대말을 말해 보라면 가장 먼저 ‘아래’라는 말이 생각날 것이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래’ 대신 ‘밑’을 써도 될 때가 많지만 이 둘은 미묘하게 다르다. ‘위아래’와 같은 합성어는 가능한데 ‘위밑’은 안 된다. ‘윗옷’과 ‘아래옷’은 있는데 ‘밑옷’은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음식을 가리키는 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밑반찬’은 있지만 ‘아래반찬’은 없다. 물론 ‘윗반찬’도 없으니 밑반찬이 꽤 특이하게 쓰이는 셈이다. 밑반찬은 만들어서 오래 두고 언제나 손쉽게 내어 먹을 수 있는 반찬을 가리킨다. 이 뜻풀이

    문화일보 | 2025-12-26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