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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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강약 없애고 연주자 마음대로…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프랑스의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는 클래식 음악사에 있어 가장 자유로웠고 전위적이었던,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음악가라 할 만하다. 그가 남긴 몇몇 대표작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남달랐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데 ‘비쩍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짜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발한 작명 센스 덕에 그는 종종 ‘세기말의 반항아’ ‘괴짜 작곡가’ 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결코 그의 음악들마저 치기 어린 일탈의 결과라 여겨선 안 된다. 그는 소위 ‘반(
문화일보 | 2025-05-22 09:05 -
‘파파’ 부르며 따랐던 하이든에 존경·감사 담은 ‘음악신동의 헌정곡’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와 하이든(1732∼1809)은 동시대를 살며 서로 존경과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 잘츠부르크 출신의 모차르트가 25세에 빈에 정착했을 때, 하이든은 그의 작품을 통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대선배인 하이든을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대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작품들을 스승 삼아 그로부터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미를 배우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법을 다듬어 나갔다. 모차르트가 하이든과 사제의 연을 맺으며 배움을 구한
문화일보 | 2025-05-15 09:06 -
관념적이면서 입체적 선율… 예술세계 논하던 파리 청년들 모습 오롯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와 함께 프랑스 근대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작곡가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사이엔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다. 우선 드뷔시의 음악은 모호하며 몽환적이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어진 고전적 음악형식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해 자유분방한 선율과 리듬, 불협화음을 사용했다. 그에 반해 라벨의 음악은 프랑스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과 틀을 완고히 지켜내고 있다. 물론 몽환적인 뉘앙스와 불협화음이 나타나긴
문화일보 | 2025-05-01 09:32 -
문학적 해석력에 자유로운 선율… 피아노를 위한 기악작품
슈베르트(1797∼1828)는 ‘마왕’ ‘송어’ ‘방랑자’ 등 전 생애에 걸쳐 무려 600곡이 넘는 가곡을 남겼는데 이는 그가 31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사실에 비춰보면 실로 대단한 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600여 곡의 모든 가곡은 각각의 독창성을 지닌 명곡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단 한 곡도 거르지 않고 모두 연주되고 있으니 양적이나 질적인 면 모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것이다. 이 점이 우리가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 칭송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천재적인 창작력은 비단 가곡에만 머무르지 않았
문화일보 | 2025-04-24 10:11 -
세르반테스 소설을 음악으로… 3개 선율로 빚은 ‘좌충우돌 모험’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 출판한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는 세계 문학사에 있어 걸작으로 평가받는 고전 작품이다. 작품은 후대 문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음악가들에게까지 창작의 원천이 되었는데 오페라, 발레, 가곡 심지어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 작품들로 재탄생되었다. 돈키호테를 소재로 한 몇몇의 음악 걸작 작품들을 들 수 있지만 그중 단 하나만을 꼽으라면 단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교향시 ‘돈키호테 op 35’다. 클래식
문화일보 | 2025-04-17 09:19 -
따듯한 ‘봄의 기운’ 가득 담은 상냥하고 친절한 선율
■ 이 남자의 클래식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기존의 3악장 아닌 4악장 구성 자신만의 낭만적인 개성 드러내 후대들이 ‘봄’이라는 별칭 붙여 현재까지 가장 사랑받는 소나타 베토벤 하면 흔히들 격정과 고뇌로 가득 찬 교향곡을 떠올리게 된다. 교향곡 ‘운명’이나 ‘영웅’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함으로부터의 감동은 그 여느 작곡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베토벤의 작품들 중에도 번민과 고뇌와는 거리가 먼, 오롯이 상냥하고 친절한 따듯한 봄의 기운을 그득히 담아낸 작품도 있다. 바로 ‘봄’이란 부제를 지닌
문화일보 | 2025-04-10 09:07 -
스승의 아내 향한 연민·사랑·죄책감… 애끓는 피아노 선율에 담아
■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람스, 피아노사중주 3번 ‘베르테르’ 스승인 슈만이 세상을 떠난뒤 그의 부인 돌보다 연모의 감정 베르테르의 슬픔 공감하던 시기 자신의 복잡한 심경·처지 담아 비애·허무로 가득한 작품 내놔 1774년 괴테는 사랑에 관한 자신의 아픈 경험과 절친한 친구가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결합시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유럽의 거리엔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입었던 푸른색 코트와 노란 조끼를 걸친 남성들로 넘쳐났다. 한편 이 소설은 당시 수백여 명의 청년들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키며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공전의 히트작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음악작품으로도 탄생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브람스(1833∼1897)의 피아노사중주 3번 ‘베르테르’다. 1875년 8월 브람스는 자신의 새로운 피아노사중주 작품을 출판업자인 짐로크에게 보내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악보의 속표지에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는
문화일보 | 2025-04-03 09:23 -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 같은 음악” … 소설 ‘데미안’에도 등장
■ 이 남자의 클래식 - 북스테후데 ‘파사칼리아’ D단조 작품 161 춤곡서 유래한 파사칼리아 장르 바로크 시대때 순수 기악으로 북스테후데의 대표 오르간 작품 D단조로 시작되는 어두운 선율 대위법 더해가며 밝아지는 특징 분주한 일상과 주변의 요란한 소음들에 치일 때, 고즈넉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 다시금 고요함에 귀 기울이며 차분히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히 가라앉은 산사의 공기 같은, 자유롭게 행복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같은 음악이 있다. 바로 바로크 음악의 거장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 D단조이다. “나는 기분이 울적하면 피스토리우스에게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럴 때면 어두운 교회에서 내면 깊이 침잠해 마치 자기 자신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같은 음악에 도취되었다. 가끔 오르간 연주가 끝난 후에도 우리들은 그대로 교회에 남아 저녁 빛이 높은 고딕풍의 창을 통해 들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북스테후데(1637~1707)는 후기 바로크 음악 시대(1680~1750)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교회음악과 오르간 연주의 거장
문화일보 | 2025-03-27 09:11 -
가장 행복한 시절의 가장 비극적인…‘염세적 카타르시스’ 절정
■ 이 남자의 클래식 -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 빈 오페라하우스 감독 당시에 미인 알마와 결혼후 만든 명곡 목가적이지만 허무한 선율 교향곡 10편중에 최고 비극적 ‘카타르시스’란 고대 그리스어에서 기인한 말로 무언가 해로운 것들을 덜어내거나 제거하는 것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널려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이론 중 하나로 관객들은 비극을 통해 그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마침내 눈물과 함께 내면의 정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슬픈 음악은 몸에 좋다. 청자는 슬픈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슬픔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종내에는 카타르시스의 폭발과 함께 이내 내면의 해로운 것들을 덜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비극적’이란 부제로 유명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6번’이다. 말러(1860∼1911)의 음악적 특징으로 길고 난해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외에도 꼬리표처럼 항상 따라붙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음악을 관통하며 흐르는 정서인 염세주의다. 그의 음악에 뿌리 깊게 내린 염세와 회의적 정서는 그의 출신과 성장 과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말러는 체코 보헤미아
문화일보 | 2025-03-20 09:18 -
‘산골짜기서 봄이’ 詩 구절서 영감… 단 한달만에 완성한 첫 교향곡
■ 이 남자의 클래식 - 슈만 교향곡 1번 ‘봄’ 손가락 장애 등 숱한 역경 거쳐 클라라와 결혼 ‘인생의 봄’ 열려 슈베르트 곡 연구 뒤 작곡 착수 힘찬 사운드로 시작, 희망 담아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운 시기, 곁의 누군가가 ‘네 인생의 봄날은 이제 시작이야’라며 무조건적인 응원을 건네어 온다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될까. 현재의 이 시간이 바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임을 상기시키며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 또한 따사로운 봄날이기를 소망하는 음악이 있다. 바로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이다. 1840년 9월 12일 슈만은 독일 쉐네펠트의 게데흐트니스 교회에서 사랑스러운 아내 클라라와 결혼식을 올리며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드디어 슈만에게도 인생의 봄날이 찾아온 것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지난 수년간 슈만은 모질기만 했던 인생의 우여곡절들을 견뎌내야만 했다. 앞날이 창창한 피아니스트였던 슈만에게 어느 날 손가락에 장애가 찾아왔다. 혹독한 피아노 연습은 결국 슈만의 손가락을 망가트리고 말았고 슈만은 작곡가이자 비평가, 음악 잡지의 편집장으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
문화일보 | 2025-03-13 09:23 -
애수 어리면서 우아한… 빗방울 떨어지는 듯한 ‘봄의 멜로디’
■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람스 ‘비의 노래’ 바이올린 협주곡 대성공 뒤 내친김에 소나타 1번 만들어 그로트 시에 붙인 가곡 차용 바이올린 소나타 3편중 백미 꽁꽁 얼어붙은 땅과 앙상한 나뭇가지에 권태로워질 이맘쯤이면 무척이나 봄비가 기다려진다. 겨울비야 추위 따위나 몰고 올 테지만 봄비는 온풍을 싣고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며 산과 들의 초목을 깨워낼 테니 말이다. 활짝 만개할 꽃나무가 그리울 요즘 봄비를 그리며 듣기 좋은 작품이 있다. 바로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다. 브람스는 오스트리아 남부의 호수에 둘러싸인 휴양도시 푀르차흐(Portschach)를 사랑했다. 브람스는 종종 이곳에 머물며 휴식과 함께 악상들을 펼쳐냈는데 1879년 여름에도 그랬다. 이곳에서 이제 막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완성한 브람스는 동료 피아니스트인 빌로트에게 악보와 함께 편지를 부쳐 새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빌로트씨. 악보를 한 번 연주해 보세요. 아마 온화하고 상쾌한, 비 내리는 저녁의 달콤하고도 씁쓸한 분위기를 느끼시게 될 겁니다.” ‘바이올린 소나?
문화일보 | 2025-03-06 09:28 -
‘황제’를 위한 연주곡… 화학자·의사 보로딘, 일요일마다 짬내 작곡
■ 이 남자의 클래식 - 보로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알렉산드르 2세 즉위 25주년 치적 기리기 위한 극무대 기획 음악가 12人에 공연음악 위촉 연주전 황제 암살로 무대 취소 獨 방문때 리스트 만나 곡 헌정 국민주의 음악이란 민족 고유의 선율이나 음악 어법을 제재로 하여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담아낸 음악을 일컫는 말로 흔히 ‘국민악파’ 음악이라고도 한다. 국민악파 음악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걸쳐 러시아, 북유럽, 보헤미아 등지에서 성행했는데 작곡가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전설적인 영웅들을 주제로 음악을 통해 자의식이 아닌 민족의식을
문화일보 | 2025-02-2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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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이면서 입체적 선율… 예술세계 논하던 파리 청년들 모습 오롯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와 함께 프랑스 근대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작곡가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사이엔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다. 우선 드뷔시의 음악은 모호하며 몽환적이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어진 고전적 음악형식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해 자유분방한 선율과 리듬, 불협화음을 사용했다. 그에 반해 라벨의 음악은 프랑스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과 틀을 완고히 지켜내고 있다. 물론 몽환적인 뉘앙스와 불협화음이 나타나긴
문화일보 | 2025-05-01 09:32 -
문학적 해석력에 자유로운 선율… 피아노를 위한 기악작품
슈베르트(1797∼1828)는 ‘마왕’ ‘송어’ ‘방랑자’ 등 전 생애에 걸쳐 무려 600곡이 넘는 가곡을 남겼는데 이는 그가 31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사실에 비춰보면 실로 대단한 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600여 곡의 모든 가곡은 각각의 독창성을 지닌 명곡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단 한 곡도 거르지 않고 모두 연주되고 있으니 양적이나 질적인 면 모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것이다. 이 점이 우리가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이라 칭송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의 천재적인 창작력은 비단 가곡에만 머무르지 않았
문화일보 | 2025-04-24 10:11 -
마디·강약 없애고 연주자 마음대로… 미니멀리즘 음악의 시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프랑스의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는 클래식 음악사에 있어 가장 자유로웠고 전위적이었던,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음악가라 할 만하다. 그가 남긴 몇몇 대표작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남달랐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데 ‘비쩍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짜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발한 작명 센스 덕에 그는 종종 ‘세기말의 반항아’ ‘괴짜 작곡가’ 등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결코 그의 음악들마저 치기 어린 일탈의 결과라 여겨선 안 된다. 그는 소위 ‘반(
문화일보 | 2025-05-22 09:05 -
‘파파’ 부르며 따랐던 하이든에 존경·감사 담은 ‘음악신동의 헌정곡’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와 하이든(1732∼1809)은 동시대를 살며 서로 존경과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 잘츠부르크 출신의 모차르트가 25세에 빈에 정착했을 때, 하이든은 그의 작품을 통해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대선배인 하이든을 깊은 존경의 마음으로 대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작품들을 스승 삼아 그로부터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미를 배우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법을 다듬어 나갔다. 모차르트가 하이든과 사제의 연을 맺으며 배움을 구한
문화일보 | 2025-05-15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