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Book &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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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 Cut >사진기자가 포착한 ‘절망 속 희망의 순간’
그럼에도 삶은 나아간다 | 김선규 사진·글 | 차분한출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한국 천주교 역사 236년 만에 미사가 중단된 2020년 3월, 명동성당. 성당 안에는 어둡고 무거운 정적이 흘렀지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가운데 한 교인이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문화일보 사진부 김선규 기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고, 절망 속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고. 그때부터 저자는 코로나19로 먹구름이 드리운 사회 곳곳에서 절망을 딛고 희망을 싹틔우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방역 최전선에서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간호사, 면접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취준생, 하루 종일 파리만 날리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남대문 노점상,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라는 물음에 “그냥 다 좋아”라며 활짝 웃으시는 100세 할머니…. 그들의 절망 속 희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겼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40여 컷의 사진과 따뜻한 글. 저
최현미 논설위원 | 2021-06-18 10:47 -
< Book & Cut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미피’가 태어난 작업실
‘딕 브루너’ “나에게 행복이란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로 가는 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미피’의 작가 딕 브루너(1927∼2017)에게 행복은 작업실로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이 행복했던 건 도착한 곳에서 하게 될 일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는 매일 아침 5시 30분쯤 일어나 아내에게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만들어주고, 아침을 먹으며 아내의 일상, 전날의 소소한 일을 그린 뒤 집을 나섰다. 60여 년간 일주일에 6, 7일을 작업실에 갔으니 그는 생애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보낸 셈이다. 사진은 브루너 전기이자 작품집인 ‘딕 브루너’(북극곰)에 실린 그의 작업실이다. 작가가 1981년부터 생애 마지막까지 쓴 예루살렘스트라트 작업실로, 지금은 위트레흐트 중앙미술관에 옮겨져 있다. 브루너가 떠난 작업실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본다. 벽에는 친구와 팬들이 보낸 편지와 그림들이 가지런하고, 책장에는 자신의 그림책과 로알드 달, 토미 웅거러, 존 버닝햄 등 다른 작가들의 그림책이 가득하다. 그는 작품의 단순한 선만큼이나 깔끔한 성향이었던 듯하다. 그는 언제나 작업실을 찾아온 손님에
최현미 논설위원 | 2021-01-29 10:01 -
< Book & Cut >과수원 오두막에 책상 하나… 울프 명작이 이곳서 탄생했다
-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 “이건 그냥 평범한 책상이 아니랍니다. 런던이나 에든버러에서 구할 수 있는 그런 책상, 오찬을 위해 사람들 집에 방문했을 때 볼 수 있는 그런 책상이 아니에요. 뭔가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책상, 개성이 넘치고 믿음직하고 묵직하며, 대단히 듬직한 그런 책상이에요.”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1930년대에 6파운드 10실링을 주고 산 책상에 대한 얘기다. 잉글랜드 서식스 로드멜 마을, 울프 부부의 시골집 몽크스하우스. 그곳에서도 과수원 모퉁이에 자리한 글쓰기 오두막(오른쪽 사진)에 놓여있는 책상(왼쪽 )이다. 울프는 남편이 이 집을 구입한 1919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22년 동안 중요한 작품 대부분을 이 책상에서 썼다. 매일 아침 정원을 가로질러 글쓰기 오두막을 찾았고 낮에는 안락의자에서 손으로 소설 초고를 쓰고 오후엔 책상에 앉아 원고를 타자기로 쳤다. 그녀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우울증을 이곳의 자연 속에서 다스리곤 했는데, 때론 햇볕 아래 누워 사과와 니포피아를 바라보고 식사에 곁들일 라즈베리나 딸기를 따며 구스베리 잼도 만들었다고 한다. 캐럴라인 줍
최현미 논설위원 | 2020-11-27 10:02 -
< Book & Cut >뉴욕 풍경 바꿔놓은 팬데믹…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별빛이 떠난 거리 트럼펫을 힘차게 부는 남자와 이를 구경하며 웃는 여자. 어느 자유분방한 도시의 한가로운 풍경일까. 한데, 턱 아래 마스크가 보인다. 아, 팬데믹 시대다. 훗날, 우린 이렇게 사진의 연도를 추측하지 않을까. 한 손에는 커피. 아, 이것은 세련되고 바쁜 ‘그 도시’다. 짐작대로. 사진은 2020년 4월 30일 뉴욕.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도시. 저녁이 되면 고층 빌딩의 불빛이 별처럼 하늘을 메우던 곳. 이제는 코로나의 상처가 가장 큰 도시가 됐다. 올리버 색스의 연인이었던 프리랜서 작가 빌 헤이스가 팬데믹의 ‘정점’을 지나는 뉴욕을 이야기한다. 너무 서럽지 않은 사진으로. 삶은 계속된다는 의지의 글로. 코로나 사태가 막 시작된 날로부터 약 100일까지를 기록한 책, ‘별빛이 떠난 거리’(알마)는 125년 역사상 처음으로 24시간 운행을 멈춘 뉴욕 지하철과 텅 빈 맨해튼 등을 매일 축제였던 과거의 모습들과 번갈아 배치한다. ‘거대한 변화’가 극적으로 와닿는다. 책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다. 그저 보여주고, 또 ‘함께 보자’고 할 뿐. “어쩔 수 없는 일. 이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다. 이 망할 놈의 산 너머
박동미 기자 | 2020-09-18 10:34 -
< Book & Cut >꿈틀대는 삼손 머리카락… ‘세밀묘사 대가’의 聖畵
-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 어린 삼손이 맨손으로 사자를 제압한 성경 속 이야기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꽤 익숙하다. 19세기 유럽의 탁월한 삽화가였던 귀스타브 도레(1832∼1883)는 월트디즈니 동화처럼 각인됐던 이 이야기를 ‘살아 있는 역사’로 복원해낸다. 삼손의 다부진 몸과 몸부림치는 사자의 모습에서 힘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진다. 꿈틀대는 삼손의 머리카락은 어떤가. 스스로 그 ‘괴력’의 원천임을 증명한다. 이는 도레의 세밀한 선과 터치 때문인데, 고흐와 피카소도 매혹됐다는 바로 그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 라퐁텐의 ‘우화집’ 등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도레는 ‘근대 일러스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도 삽화를 실었고, 이 책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삽화가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명화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레가 19세기 유럽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그가 여러 사료와 학문적인 자료에 입각해 그려낸 수많은 성화(聖畵) 덕분이다. 특히 그의 판화성서는 19세기 부르주?
박동미 기자 | 2020-09-11 10:31 -
< Book & Cut >예술작품 속 ‘다양한 몸짓’의 의미는?
포즈의 예술사 |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로마 시대에 가운뎃손가락은 디기투스 임푸디쿠스(digitus impudicus), 즉 음란한 손가락으로 불렸다.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면 음경을, 그 양쪽에서 오므린 손가락들은 고환을 상징했다.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채 손을 위로 홱 움직이면 음경 삽입을 뜻하며,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몸짓이 됐다. 20세기에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몸짓도 들여왔다. 북미 지역에 널리 퍼진 ‘손가락질(the finger)’은 성적 상징성으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포즈로 쓰였다. 미술작품들은 이 몸짓이 서양에서 갈수록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영국 아티스트 뱅크시는 2002년 내놓은 스탠실 작품 ‘무례한 순경(Rude Copper·2002)’을 통해 정복을 입은 경관의 손가락질을 표현했다. 2008년엔 미국 팝초현실주의자 매리언 펙도 ‘엿 먹어(Fuck You)’라는 작품에서 순진한 소녀 모습과 음란한 손짓을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책 ‘포즈의 예술사’는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예술 작품에 담긴 다양한 몸짓에 주목하며 문화사적 의미를 살펴본다. 표지에 쓰인 그림 ‘알베르?
장재선 전임기자 | 2020-08-21 10:21 -
< Book & Cut >그대의 性 정체성은?… 그림으로 풀어낸 ‘젠더 입문서’
젠더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21세기 ‘최신 상식’이 됐으나, 여전히 ‘모두의 문제’로 여겨지진 않는다. 생경한 문구나 이미지 등 아직 젠더 관련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게다가 이 상식은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나라·지역별 편차도 크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LGBT를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LGBTQ가 보편화된 곳도 많고, 종종 LGBTQIA로 길어지기도 한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정보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뷰티풀 젠더’(아이리스 고틀립 지음, 까치)는 이 장벽을 ‘그림’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훌쩍 뛰어넘는다. “인간이 젠더를 발명했으므로 역시 인간인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젠더를 이해해보기로 하자”는 말로 책을 시작하는 저자는, 전작 ‘뷰티풀 사이언스’로 이미 ‘영리한’ 일러스트란 무엇인지 보여줬던 아이리스 고틀립이다. 성전환 수술을 했고, 지금의 자신을 ‘소년’으로 규정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고민하며 배운 것들을 산뜻하게 풀어낸다. 젠더의 많은 부분이 시각적이기에, 고틀립의 ‘젠더 입문서’는 매우 효과적이고 적절해 보인다. 책은 데이비
박동미 기자 | 2020-08-07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