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
홀로 걷는 첫 등굣길, 어른들이 응원할게 !
처음 혼자 자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홀로 보내야 하는 밤은 고난과 설렘의 시간이었다. 나는 평소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바로 자면서 무언가 먹기. 문제는 ‘무언가’를 껌으로 정했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카락은 늘어진 껌 범벅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공포에 떨거나 울지 않고 부모님 방으로 달려가지도 않았다. 둘째 날부터는 껌 없이도 잘 잤다. ‘혼자 갈 수 있어? 응’은 어린이가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가는 이야기다. 자신만만하게 집을 나선 어린이는 ‘랄랄랄’ 신이 나지만 곧 어려움에 봉착한다. 자신보다
문화일보 | 2025-06-13 09:59 -
생애 첫 이사… 새집도 하루하루 더 좋아질거야
아이들에게 집은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다. 이 공간의 빛과 질감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습관과 취향이 되어 태초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크든 작든, 새것이든 낡았든,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준으로 집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집 옷장에서 숨바꼭질하고, 장난감 같은 침대에서 꿈을 꾼다. 아빠는 302호에 이사한 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에 초를 꽂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첫 번째 소원에 아이 방 벽면 가득 무지개를 그려주고, 두 번째 소원에 피자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세 번째 소원에 오늘은
문화일보 | 2025-05-30 09:22 -
선생님도 첫 만남은 늘 떨리고 두려워
까불고 싶은 날, 까만 밤, 파랑의 여행 등 전작에서 매번 다양한 동시를 보여준 정유경 시인의 네 번째 동시집이다. ‘이야기 동시집’을 표방하는 ‘바람 동시집’ 시리즈로 출간됐으며 초등교사인 화자가 학교에서 살아가는 교사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수록작을 이야기의 흐름을 갖춘 연작 동시로 구성하고, 모든 페이지마다 화려한 삽화를 비중 있게 실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동시집이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그러한 편집 기획에 바탕해 등장한 화자가 초등교사라는 사실이다. 대개 동시의 화자는 어린이인 데 비해, 어른을 전
문화일보 | 2025-05-23 09:09 -
동박새도, 고양이도, 너구리도…“우린 다 연결돼있어”
이맘때, 그러니까 골목 담장에 장미와 불두화가 필 때이다. 아이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조금 내빼고 붕어처럼 뻐끔댔다. 공기가 하도 달콤해서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거라고 했다. 뒷산의 아카시아 내음이 진동했다. 오종종하게 달라붙은 애들의 뒷모습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기도 했지만 짐짓 선생다운 목소리로 달랬다. 이리 와, 읽던 책을 마저 읽자. 그때 기쿠치 치키의 그림책 ‘산을 날다’를 봤더라면 어땠을까. 읽던 책을 덮고 뒷산으로 나가자고 할걸. 산 위로 해가 뜬다. 해를 받아 비둘기의 날개가 반짝인다.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산을 넘
문화일보 | 2025-05-16 09:12 -
동심의 세계선 무엇을 가져야만 행복이 아니에요
성명진의 첫 동시집 ‘축구부에 들고 싶다’(2011)엔 축구 잘하는 6학년이 아니라 밖으로 나온 공을 재빨리 선수에게 던져 주고 신나서 달리는 ‘나’가 있다. 잘하든 못하든 남이 보든 안 보든 그저 좋아하는 것을 맘껏 좋아하는 아이가 트랙 바깥을 질주하는 이 천진난만한 벅참이 바로 동심이다. 한편 축구에서 처음 이긴 아이들이 마침 쏟아진 소나기도, 갑자기 상대편을 가로막은 강아지도, 운동장을 지나간 예쁜 나연이도, 모두 다 잘했다고 박수 치는 ‘오늘은 다 잘했다’(2019)는 함께여서 충만한 동심을 노래한다. 이번 시집 ‘밤 버스에
문화일보 | 2025-05-09 09:13 -
파고 또 팠는데… “시도하는 것만도 귀한 경험이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공부도 예체능도 잘하는 게 없었다. 그나마 글쓰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아준 사람은 부모님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먼저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게 시를 써 오라 하시더니 엉망진창인 글을 졸업생 문집에 축사로 실어 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도 매일 읽고 쓰는 어린이로 지냈다. 지금의 직업과 상관없이 내겐 귀하고 값진 경험으로 남아 있다. ‘자꾸자꾸 파다 보면’의 ‘케이든’은 폭우가 내린 다음 날 장화를 신고 뒷마당으로 나간다. 비에 깎인 잔디 위로 단단한 것이 나와 있다. 말뚝도,
문화일보 | 2025-05-02 09:38 -
“다른데 같은 고양이라고?”… 미처 몰랐던 나의 고정관념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고양이 한 마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수염을 꼿꼿이 펴고, 도톰한 발로 사뿐사뿐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이 그림책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양이의 걸음마다 만난 동물들이 고양이를 본다.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양면에 걸쳐 아이가 본 고양이, 강아지가 본 고양이, 여우가 본 고양이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들이 본 고양이 이미지는 조금씩 다르다. 책장이 점점 넘어갈수록 더욱 확연히 차이 난다. 어항 속 금붕어가 본 고양이는 굴절 때문에 왜곡이 심하다. 생쥐의 눈에는 불타오르는 눈빛과 날
문화일보 | 2025-04-25 09:22 -
“별아, 반짝이는 너와의 모든 순간은 참 따뜻했어”
안녕달 작가가 창작 10주년을 맞았다. 케이크 대신 백설기를 올려 축하하고 싶다. ‘수박 수영장’ 이후 담백하고 무해한 감성으로 이야기를 이어온 그의 작품에는 은은한 단맛과 고소한 맛이 배어 있다. 그래서 자꾸만 손이 간다. 신작 ‘별에게’도 그렇다. 따뜻한 떡을 나누듯, 이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다. 바다초등학교 정문 앞, 할머니가 머리에 인 대야를 내려놓는다. 하교하던 아이들이 모여든다. 작은 별이 가득하다. 개나리처럼 노란빛을 내뿜는다.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작은 별 하나를 집으로 데려간다. 머리에 꽃잎이 쌓이는 줄도
문화일보 | 2025-04-18 09:34 -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토끼·나무의 아름다운 여행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아와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시작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보여주는 이 첫 장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감동으로 복기된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친구를 사귀고 숲을 이루는 역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늑대에게 쫓기던 토끼가 뛰어들자 나무는 토끼를 숨겨준다. 이번엔 토끼가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무를 위해 신나게 바퀴를 굴린다. 연약한 가지와 이파리로 친구를 구한 나무와 친구의 뿌리까지 수레에 고이 싣고 떠난 작은 토끼가 세상 곳곳을 누비는 장면은 가슴 벅차도록
문화일보 | 2025-04-11 09:46 -
추운 봄에도 희망은 따뜻해요
■ 어린이 책 봄의 왕국 표지율 글·그림│달그림 봄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봄은 겨울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대놓고 추운 겨울이 낫다. 따뜻해질 거라는 희망을 줬다가 뺏는 봄은 겨울보다 더 힘들다. 그림책 ‘봄의 왕국’의 표지는 차가운 분홍이다. 벚꽃이 떠오르는 화사함이 아니라 서늘한 보랏빛이 감돈다. ‘CASTLE BOM’이라는 건물 앞, 은방울꽃에 한 모녀가 둘러싸여 있다. 은방울꽃의 꽃말이 뭐였더라. 엄마가 딸에게 왕관을 수여하는데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아무래도 꽃놀이하듯 산뜻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 ‘봄’은 깨진 술병
문화일보 | 2025-04-04 09:16 -
병원 침대에 누워 바라본 천장… “4×4 빙고 게임이네”
■ 어린이 책 4X4의 세계 조우리 글│노인경 그림│창비 똑같은 수의 가로 칸과 세로 칸으로 구성되는 정사각형의 세계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빙고! 바로 빙고게임이다. 주어진 주제의 단어를 각 칸에 중복 없이 무작위로 적고, 번갈아 단어를 부르며 각자 칸에 적은 단어가 나올 때 지워가다가, 규칙으로 정한 개수만큼의 줄을 먼저 만들면 이기는 게임이다. 종이와 필기도구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교실이든 학원이든 기차간에서든 심심함을 뚫고 ‘빙고!’를 외치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개 두 사람이 가로 다섯 칸, 세로 다섯 칸의 빙고게임
문화일보 | 2025-03-28 09:32 -
소중한 존재란…‘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이
■ 어린이 책 여우비 최영아 글·그림│북극곰 춘분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 큰 눈이 내렸다. 때아닌 눈을 맞으며 아득한 기분에 휩싸였던 밤이 지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창밖은 청명하다. 이제 정말 봄인가? 최영아의 그림책 ‘여우비’를 펼친다. 외따로이 떠돌던 구름은 꽃향기가 실려 오는 산골 마을에서 여우를 만난다. 여우의 곁에 머무르며 쨍한 햇빛을 가려 주고, 즐겁게 그네 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봐 준다. 여우와 가까워지면서 ‘소중한 친구’란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구름은 여우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고 싶어 한다. 흰
문화일보 | 2025-03-21 09:19
-
홀로 걷는 첫 등굣길, 어른들이 응원할게 !
처음 혼자 자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홀로 보내야 하는 밤은 고난과 설렘의 시간이었다. 나는 평소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바로 자면서 무언가 먹기. 문제는 ‘무언가’를 껌으로 정했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카락은 늘어진 껌 범벅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공포에 떨거나 울지 않고 부모님 방으로 달려가지도 않았다. 둘째 날부터는 껌 없이도 잘 잤다. ‘혼자 갈 수 있어? 응’은 어린이가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가는 이야기다. 자신만만하게 집을 나선 어린이는 ‘랄랄랄’ 신이 나지만 곧 어려움에 봉착한다. 자신보다
문화일보 | 2025-06-13 09:59 -
생애 첫 이사… 새집도 하루하루 더 좋아질거야
아이들에게 집은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다. 이 공간의 빛과 질감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습관과 취향이 되어 태초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크든 작든, 새것이든 낡았든,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준으로 집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집 옷장에서 숨바꼭질하고, 장난감 같은 침대에서 꿈을 꾼다. 아빠는 302호에 이사한 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에 초를 꽂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첫 번째 소원에 아이 방 벽면 가득 무지개를 그려주고, 두 번째 소원에 피자로 저녁 식사를 하고, 세 번째 소원에 오늘은
문화일보 | 2025-05-30 09:22 -
선생님도 첫 만남은 늘 떨리고 두려워
까불고 싶은 날, 까만 밤, 파랑의 여행 등 전작에서 매번 다양한 동시를 보여준 정유경 시인의 네 번째 동시집이다. ‘이야기 동시집’을 표방하는 ‘바람 동시집’ 시리즈로 출간됐으며 초등교사인 화자가 학교에서 살아가는 교사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수록작을 이야기의 흐름을 갖춘 연작 동시로 구성하고, 모든 페이지마다 화려한 삽화를 비중 있게 실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동시집이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그러한 편집 기획에 바탕해 등장한 화자가 초등교사라는 사실이다. 대개 동시의 화자는 어린이인 데 비해, 어른을 전
문화일보 | 2025-05-23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