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작가의 서재
-
피보다 진한 ‘남남’사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 작가의 서재 “피는 물보다 진하다.” 언어에는 한 사회의 문화와 관습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떠올리는 관용구 중 하나다. 표현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특징을 저만큼 잘 드러내는 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사이를 두고 ‘가족 같다’고 하거나, 가족 구성원끼리 심각한 갈등을 겪을 때 ‘남보다 못하다’고 일컫는 것 또한 마찬가지. 저런 표현과 마주칠 때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미디어에서는 재산 분배나 보험금 수령과 같은 특정 상황에서 뒤늦게 찾아와 돈만 받고 떠나는, ‘남보다 못한’ 가족의 사연이 종종 소개되곤 한다. 한편 누구보다 가깝고 신뢰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 같은’ 이들의 사연 또한 자주 등장한다. 사실상 가족임에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실질적 타인임에도 혈연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족으로 묶여버린 이들. 이러한 상황에서 은서란의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위즈덤하우스)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러한 가족의 역할이 실제 그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문화일보 | 2023-11-10 09:11 -
“난 왜 이럴까” 자책할 때 “나도 그래” 손잡아준다면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스스로가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거 겪었던 특정 상황을 다시금 맞닥뜨릴 때, 그래서 두렵거나 불안할 때, 내면의 취약함을 재차 확인할 때면 아득해진다. 달라지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아등바등했건만, 아직도 그 자리인가 싶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이다. 이럴 때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인다면 어떨까. 나도 그래요, 하고.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는 임솔아의 두 번째 장편이다. ‘최선의 삶’에서 청소년 여성의 서사를 그려낸 작가는 8년 만에 성인 여성들과 함께 돌아왔다. 여전히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생존’이다. 장애인 남성과 사랑에 빠져 유학을 중도 포기한 화영,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오랫동안 함께했던 여자친구 선미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우주, 부모로부터 독립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세상의 착취를 마주하는 보라. 어느 미술 전시 그룹을 중심으로 함께인 듯 별개인 여성 넷의 삶을 펼쳐 보이는 소설은 그들 각자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제각기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누구와 만났고 ?
문화일보 | 2023-10-13 09:17 -
아픔 가득 불면의 날에도 한결같이 아름다운 문장
■ 작가의 서재 평소 잘 못 자는 편이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야 한다던데, 내게 그런 날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로 일 년 동안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대개 나의 밤은 짧은 쪽잠과 불면으로 이루어진다. 책과 영화가 좋은 벗이 돼 줄 때도 있지만 가끔은 기억이나 꿈, 상상 등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아침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때의 기억은 순차적이지 않다. 잊고 지낸 것들이 갑자기 떠오른 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잠 못 드는 밤’은 불면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다. ‘뉴욕리뷰오브북스’의 공동창간자인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세 번째 장편인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불면의 밤을 그대로 따라간다. 앞선 나의 사례와 같이 기억의 편린과 지나가 버린 많은 것, 그에 대한 회한과 연민, 어디선가 만나고 전해 들었던 수많은 이에 관한 이야기가 조각보처럼 맞물리며 저자의 과거를 쌓아 올린다. 따라서 종종 소설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특정한 플롯이나 줄거리라고는 없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직?
문화일보 | 2023-09-08 08:59 -
기지촌 출신 재미교포 여성… 허기 그 이상을 채운 ‘음식’
■ 작가의 서재 오래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뱃속에서 이는 한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고추장이니, 김치니 챙겨 가라고들 했구나, 하고 충고를 곧이듣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평소 한식을 자주 먹지 않았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사양했는데, 정말이지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누군가가 먹는 음식은 그 사람이 살면서 겪는 경험의 큰 축이며, 정서의 기본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당시 경험한 한식에 대한 극심한 허기는 난생처음 디딘 낯선 땅에서 느낀 불안과 공포,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삶, 몸, 한층 더 나아가 정서와 무의식에까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뒤대학교수가 됨으로 미국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딸을 위해 헌신과 열정을 바치던 어머니가 이런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병들었다는 것. 이주 여성으로서의
문화일보 | 2023-08-11 09:11 -
고통에 몸부림 치는 외톨이… 그 모습서 보이는 나를 다시 생각하다
■ 작가의 서재 세계적 뇌 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소설이 타인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뇌가 극 중 인물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따라 함으로써 잠시나마 타인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시뮬레이션해 본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살짝 비틀어 소설은 한편으로 세상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끔 해준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거리 두기’를 통해 너무 가까워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소설 읽기 자체가 일종의 객관화된 시선이랄까.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
문화일보 | 2023-07-14 09:08 -
춘향전은 왜 남원을 배경 삼았을까?… 지역의 문화는 이야기와 얽혀 있다
■ 작가의 서재 ‘아무튼 스릴러’에는 “스릴러는 그 사회의 풍토병”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나 소설 등 스릴러 작품에 각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비단 스릴러뿐일까. 실은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일 테다. 서로 다른 문화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어떠한 이야기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이야기가 태어난 지역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런 면에서 필연이다. ‘문학 답사’라는, 얼핏 생경한 두 단어는 바로 이렇게 조화를 이룬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돌아보며 현재와 비교하고, 살핀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과거의 작품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되살아나고, 텍스트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던 작가의 감수성 또한 생생히 부활한다. 그런 면에서 답사는 “어제와 오늘의 만남”이다. 정병설의 ‘나의 문학 답사 일지’(문학동네)는 이러한 문학 답사의 교본과도 같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오래전부터 여행과 여행문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는 ‘한국문학?
문화일보 | 2023-06-16 09:16 -
퇴사 후 육아하면 노는 사람?… ‘노동의 자격’을 생각하다
■ 작가의 서재 “그럼 지금은 집에서 놀고 계시는 거네요?” 퇴사 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글을 쓰고 있다던 내게 누군가가 했던 말이다. 당시에는 무척 분개했으나 지금은 안다. 해당 발언에 모욕의 의사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그는 그저 보편적으로 반응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애를 보느니 출근을 하겠다”며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고, 가사 노동이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지 하소연하지만, 실상 가사와 육아 노동은 실질적인 ‘일’로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바로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않는 것은 곧 생산적이지 않다는 의미
문화일보 | 2023-05-19 09:15 -
“내 글이 타인의 삶 침범할 수도”… 글쓰기·현실의 간극 줄이는 법
■ 작가의 서재 바야흐로 ‘쓰기’의 시대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만 가는데, 책을 쓰겠다는 사람들은 갈수록 넘쳐난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 나를 봐줘, 내 이야기를 들어줘.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교실과 책 쓰는 법에 대한 강의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이처럼 모두가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시대이기에 역설적으로 말하기와 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읽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나 또한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생각한다. 어디까지 쓸 수 있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지? 내 삶은 나의 삶이지만 나만의 것이 아니며, 그 안에는 타인들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 나의 이야기지만 나 혼자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삶, 타인의 이야기. 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 앞에서,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너무도 쉽게 타인의 삶을 침범할 수 있는 오늘날의 환경에서, 쓰기와 말하기의 윤리는 어느
문화일보 | 2023-04-07 09:02 -
‘어머니’ 라는 존재,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다각도로 해석하기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러한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에요”라는 말 외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돌이켜보니 엄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음식이나 드라마 취향 정도랄까. 친구나 연인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언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언제 불행하다고 느끼는지 잘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엄마에 대해서는 새삼 이토록 몰랐구나 싶다. 작가 하재영은 일상적인 것을 새롭게 만들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에 능숙하다. 전작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 동물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물리적 장소이자 상징적 자리로서 집이 한 사람의 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한 그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어머니’다. 너무도 가깝고 당연한 존재, 그런 탓에 마치 그림자처럼 그 자리에 있되 우리 눈에 띄지는 않았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휴머니스트)는 이런 어머니라는 대상을 입체적
문화일보 | 2023-03-10 09:09 -
레즈비언 교사·전사 등 천의 얼굴… 詩人 로드, 소통·사랑으로 완성한 삶
■ 작가의 서재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저서인 ‘공감 연습’에서 “공감이란 자기 시야 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제껏 무엇을 경험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같은 선상에서 나는 흥미로운 작품을 읽고 나면 저자에 대해 따로 찾아보곤 한다. 작가의 생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그가 살면서 경험한 것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변주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와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만약 오
문화일보 | 2023-02-10 09:04 -
일·양육 잘 해내고 있는 걸까?… 나와 같은 이들에게 받는 공감과 위안
■ 작가의 서재 “정말 대단해요. 어쩜 그렇게 다 해낼 수 있어요?” 사람들은 두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이자 글을 쓰는 작가인 나를 향해 이와 같은 칭찬을 종종 건네곤 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쁘거나 뿌듯하기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는, 사실은 엉망인 내 모습이 떠오르기에. 실제로 나는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 의심스럽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지 못하고, 사랑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짜증을 낼 때가 많다. 그렇다고 좋은 작가인가 하느냐면, 역시나 자신이 없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벌써 몇 년째 끝마치지 못한 원고와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마감한 글들을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나처럼 흠결 많은 사람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아이를 둘이나 낳은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여태 글을 쓰는 것일까. 매일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처럼 자신감이 하락하고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나만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일과 양육 사이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
문화일보 | 2023-01-13 09:00 -
무심코 썼던 21가지 단어 … 그 속에 감춰진 왜곡된 인식
■ 작가의 서재 “마치 강간당한 기분이었어.”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지인이 말했다. 그는 과거에 경험한 부당한 일을 떠올리며 분개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만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당시의 찜찜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그것은 정확하지 않은 언어 때문이었다. 지인은 부당한 일을 겪으며 느낀 불쾌함을 ‘강간당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기분을 확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그와 같은 표현을 통해 그가 겪은 불쾌함은 확실히 강조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실제 강간 피해자들의 고통은 축소
문화일보 | 2022-11-25 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