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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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황홀감에 빠져… 죽음 외에는 어떤 것도 바랄 수 없다
청나라 때 소설 ‘홍루몽’의 가련한 여주인공 임대옥은, 사랑하던 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지금에 와서는 슬프다는 생각보다도 오직 한시바삐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말끔히 끝맺고 싶었다.”(안의운 외 역) 그리고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그 시간에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상사병(相思病)은 이토록 강력하다. 그것은 모든 감정을 극도의 혼란에 빠트리고 생활을 중단시키며 육체를 죽음으로 이끈다. 상사병은 사랑하는 이와 연애, 결혼 등을 통해 맺어질 수 없어 생기는
문화일보 | 2025-11-14 09:35 -
죽음·타자와 마주하는 삶… 공허함 채우며 ‘의미’를 얻는다
무의미가 삶을 덮친다. 대체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걸음을 옮겨도 모든 길은 무의미로 차단되어 있다. 삶은 무의미 앞에서 전부 무너져 버린다.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무의미를 자신의 신체 전체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며 누구에게 던져야 할지 모를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내가 왜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을까? 왜 내가 풍을 맞았을까? 질문을 던진들 신은 자기 일이 아니라서 대답이 없고, 스물네 시간 떠나지 않는 아무런 대가 없는 고통은 그저 무의미하다. 나날을 지탱해 온 모든 의미
문화일보 | 2025-09-26 09:20 -
‘신화적 판타지’이자 ‘전쟁의 한 얼굴’… 성스럽고도 참혹한 ‘飛上’
비행 물체들이 살육을 위해 날아다닌다. 중동, 우크라이나, 어제, 오늘, 내일, 언제나. 공중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관점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공중전은 신화적이고, SF적이고, 역사적이고, 끔찍하다. 한마디로 인류의 초상화는 공중에 그려진다. 공중전은 그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탑건 매버릭’(2022)이나 ‘태양의 제국’(1989)이 보여주듯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렇기에 늘 필름과 음악 예술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공중전이라면, ‘지옥의 묵시록’(1979)의 한 장면을 생각
문화일보 | 2025-07-25 09:15 -
삶을 지탱했던 神·가치의 몰락… 인간의‘피와 살’도 사라지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인간도 죽었다.’ 다소 유치해 보이는, 다소 치기 어려 보이는, 한마디로 중2병적으로 보이는, 그리고 무엇보다 썰렁하게 코믹해 보이는 이 제목을, 나름대로 근현대사상사를 요약하는 것이라 평가하며, 독자 제위께 음미해 보시라 권해 본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니체를 통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신이 니체의 선언과 더불어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다. 급진적인 철학자마다 신의 해골을 목에 걸고 있으므로 신은 게임의 주인공처럼 여러 번 죽는다. 적어도 근대 사상에서 니체 이전에 신을 죽인 중요한 철학자는 칸트이
문화일보 | 2025-06-20 09:06 -
아무 이유없이 나 자신에게 던져진 나… 구토는 ‘존재에 대한 역겨움’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평생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저 ‘자유’라는 말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술, 도박, 연애 그리고 미술사로부터 사슬이 풀려 나온 그의 개성 넘치는 그림들이다. 밤이 되면 그는 구두약으로 머리를 검게 칠하고 술집으로 갔다. 거기서 술잔을 들고 오래 놀다 보면, 베이컨 자신이 되었건, 그의 동성 애인들이 되었건, 때로는 결국 세면대를 붙잡고 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게 청소하기 얼마나 어려운데! 변기로 갔어야지. 영화 ‘나인 야드’(2000)에서 주인공을 맡은 매슈 페리는 모범적으로 변기를 붙잡고 토한
문화일보 | 2025-05-16 09:02 -
날씨 흐리니 마음도 찌뿌둥… 우리 삶은 ‘유사성’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의 얼굴을 가진 게가 있다. 12세기 일본에선 다이라(平) 가문과 미나모토(源) 가문 사이의 권력 싸움이 일어난다. 미나모토 가문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다이라 가문은 멸망하고 겐지(源氏)는 일본의 주인이 되어 가마쿠라(鎌倉) 막부를 세운다. 두 가문의 최후 전투는 시모노세키(下關) 단노우라(壇の浦)에서의 해전이었다. 이 해전에서 다이라 가문이 세운 천황 안토쿠(安德)뿐 아니라 수많은 가신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전쟁은 끝난다. 두 가문의 전쟁을 노래한 13세기의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천황
문화일보 | 2025-04-21 09:12 -
밀어내거나… 유혹하거나… 냄새는 인간의 ‘사회적 삶’을 지배한다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5) 냄새 엄마 살냄새·연인의 향기 등 냄새는 세계를 간직하는 방식 보들레르 ‘이국향기’서 언급 나쁜 냄새 식별하며 가치 설정 암내로 집단 괴롭힘 당하기도 결국 향수 통해 나쁜 냄새 퇴치 몽테뉴 ‘에세’선 은폐수단 인식 쥐스킨트 ‘향수’ 인간운명 결정 정말 좋은 냄새가 있다. 엄마 냄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모든 불안한 일들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아빠의 냄새나 애인의 냄새일 것이다. 냄새는 오래 머물러온 방처럼 또는 늘 덮고 자는 이불처럼 나를 감싸며 아늑한 둥지를 만든다.
문화일보 | 2025-03-07 09:19 -
예술은 야릇한 팽이 같아… 관객·독자가 채찍질해야 작품이 된다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4) 예술작품의 근원, 감상자 창작자 없인 결과물이 없듯 감상자 없인 예술작품 없어 ‘문학’이란 사물 출현 위해선 ‘읽기’라는 구체적 행위 필요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자유서 나와 감상자와 예술가는 동업자 함께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 때로 두뇌는 오로지 음악을 재생하는 데 바쳐진 기계인 듯 우리의 내면에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음에 깊이 파고든 어떤 음악을 쉼 없이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감동한다. 또 우리는 마음을 끄는 연주회에 직접 가서 음악이 꽃물처럼 우리 자신
문화일보 | 2025-02-07 09:11 -
흉내·학습 ‘두 얼굴’ … 모방은 인간이 사는 방식 그 자체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3) 모방 예술 표절, 도덕적 수치 “외관만 흉내” 비난받아 운동·예절도 모방 대상 제대로 따라하면 칭찬 스피노자·하이데거 등 “우리는 타인의 마음 베껴” 이성적 계산 개입하기 전에 모방이 더 빨리 삶 만들어가 인간은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모방을 잘한다. 재능있는 인물이나 재주 없는 인물이나 늘 모방한다. 이를테면 모두 술과 담배는 잘 따라 한다. 또 모두 나름의 롤모델을 모방하며 무섭고 불투명한 앞날을 향해 나간다. 모방은 도덕상의 또는 가치 평가상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매우 반대되는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한편에서 최악으로 변질된 모방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때 그것은 ‘표절’이라는 이름을 지닌다. 한 사회의 모든 도덕적 규범을 낡은 것으로 여기고 그 사슬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급진적인 예술가도 표절이라는 금줄을 넘어서는 것만은 도덕적 수치로 여긴다.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편에서 모방은 가치 기준의 표식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포츠와 무술의 기본이 무엇인가? 선생이 알려주는 모범적인 자세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다. 특히 ‘운전’ 같은 실생활에 ?
문화일보 | 2025-01-10 09:27 -
부자의 교만이 빈자의 분노로 드러나듯… 비주류는 사회의 거울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2) 비주류 18세기 디드로 作 ‘라모의 조카’ 고귀 - 비천함 품은 분열된 인격 이성 - 비이성 속 정신착란 상태 헤겔·푸코, 철학적 분석 몰두 지배계층에 조소 뱉은 조카처럼 세상 진실은 비주류 통해 드러나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디드로가 쓴 소설 ‘라모의 조카’(황현산 역)는 특이한 운명을 지닌 작품이다. 러시아의 계몽군주 예카테리나 2세는 디드로 생전에 그의 장서들을 모두 구매해주는 방식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이 철학자를 후원했다. 디드로는 여제가 구매한 장서들의 사서 자격으로 자신의 책들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1797년 디드로가 죽은 후 그의 장서들은 구매자인 러시아 여제에게로 모두 보내져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서관에 소장되게 된다. 이 장서들 틈에 바로 디드로의 미발표 원고 ‘라모의 조카’가 숨어 있었다. 이후 이 원고의 필사본이 모종의 경로를 통해 독일의 문호 괴테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괴테의 독일어 번역으로 이 책은 1805년 처음으로 유럽 지성계에 소개돼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첫 독자들 가운데는 헤겔도 있었는데, 그는 2년 뒤 출간하는 자
문화일보 | 2024-11-15 09:12 -
인간은 유한하며 필멸하지만, 아이를 얻음으로써 불멸한다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1) 출산 ‘그림자 없는 여인’ 속 인간계 천상계엔 없는 죽음 악취 진동 출산의 의미 알게된 반인반신 인간의 진정한 행복 깨달아 유한성의 슬픔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종족 키우는 부모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는 방식 그림자 없는 여인의 이야기를 해드리려 한다. 한 편의 판타지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전능한 카이코바트가 지배하는 천계(天界)가 있다. 이 신적인 지위의 카이코바트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딸이 있다. 그녀는 그리스 신화의 흔해 빠진 인물들처럼, 또는 기독교의 신처럼 하늘의 지배자와 인간 사이에 태어났기에 신적인
문화일보 | 2024-10-11 09:42 -
인간 역사에 필연적인 ‘지리’… 경험 부족한 철학을 완성하다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0)지리학으로 철학하기 칸트, 대학서 지리학 강의개설 자연환경·지정학적 위치 주목 고대 그리스서 철학 시작된 건 바다 인접한 반도의 특성 때문 지리와 같은 경험적 조건 개입 추상적 관념화의 오류 벗게 해 하나의 학문은 자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지며, 이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상을 준다. 그래서 철학은 대체로 책상 앞에 앉은 사색가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이 책상 앞 서생의 이미지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곳에 지리학의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아직 항로가 없는 바다와 미지의 폭포와 산을 숨기고 있는 땅
문화일보 | 2024-09-13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