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연구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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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 ‘음모론’에 맞서려면…
■ 연구자의 서재 다음 문장들의 참 거짓을 가려 보라. 지구는 평평하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일루미나티라는 비밀 결사의 일원이다. 코로나19는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고의적으로 만들어졌고 백신을 맞으면 자폐가 생긴다. 대형 연예기획사가 사실은 사이비 종교에 지배당해 작품에 종교적 상징을 숨겨뒀다. 반응은 크게 맹렬한 지지와 완전한 멸시로 나뉜다. 그리고 음모론이라는 단어는 후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음모론은 낙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다. 사회학자 전상진의 ‘음모론의 시대’(문학과지성사)는 음모론이 오래된 현상이며 통치와 저항 모두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음모론이 제기하는 문제로부터 출발해 새로운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모론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구조의 영향이나 문제 제기 자체가 틀릴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올바른 질문에 대한 잘못된 답변”(217쪽)이기 때문이다.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에서 음모론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군대를 만들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도, 참사의 원?
문화일보 | 2024-07-19 09:22 -
‘생산’ 가능해야 국민?…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보는 사회
■ 연구자의 서재 성확정 수술을 받은 이후 강제 전역당한 고 변희수 하사.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넘은 올해 4월에 이르러서야 그의 죽음은 순직으로 인정됐다. 국가를 지키겠다는 굳은 다짐과 특출난 전차 조종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전역당해야 했던 걸까? 이것은 대한민국의 형성 과정에서 군인이 지니는 의미와 관련된다. ‘‘성’스러운 국민’(서해문집)은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의 삶이 뿌리내리고 있는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쓰는 작업이다. 식민지 시기 도입된 ‘간통죄’와 ‘정조’ 개념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
문화일보 | 2024-06-21 09:20 -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연애·동거… 이 사랑을 어떻게 규정할까
■ 연구자의 서재 ‘한 쌍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사회가 규정하는 이상적인 가족이다. 하지만 ‘이성 간’ ‘성적 결합’으로 이뤄진 ‘2명의 부부’와 ‘혈연’이라는 가족의 정의는 다양한 삶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가족의 구성원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면 어떨까? 두 사람이 사랑해서 만나는 와중에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면?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홍승은 작가의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낮은산)는 저자의 폴리아모리(다자연애) 경험을 담고 있다.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관계만이 진정한 사랑의 징표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 저자의 경험은 관계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규범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 책의 힘은 세 사람이 사랑, 연애, 섹스 안에서 경험하는 아주 구체적인 불안, 슬픔, 기쁨, 쾌락에서 출발해 관계의 윤리라는 문제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드라마나 리얼리티 예능의 문법은 지금의 사회에서 사랑을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배정받은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기준으로 서로를 ?
문화일보 | 2024-05-24 09:10 -
차별·통제에 맞선 저항… 모든 몸은 욕망할 권리가 있다
■ 연구자의 서재 우리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고, 저항하는가. 폭력적인 사회 안에서도 우리가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 영영 남아서 우리를 살게 하고 사회를 바꾸어내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이 건네는 대답을 나누고자 한다. 이것은 욕망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사람만 10명인 이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정과 시설 안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수동적으로 돌봄을 받기만 한다는 통념과 달리, 가족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로 생계를 충당하기도 하고, 직원이 부족한 시설에서 거주인들이 많은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도 한다. 장애여성이 노동을 할 수 없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다는 통념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장애를 전문성으로 삼기도 하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다른 세상과 삶을 주고자 애쓰고 있다. 장애여성이 노동과 돌봄의 주체가 되는 미래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현재
문화일보 | 2024-04-26 09:23 -
분노가 서로 연결되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
■ 연구자의 서재 생존, 그것도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 같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익숙한 대답은 분노와 연대다. 부정의를 목격한 사람들의 분노가 연결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분노가 어떻게 연결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후마니타스)는 여기에 힌트를 제공한다. 일상적인 경험들과 감정들 안에서 분노와 연대, 나아가 혁명까지도 재정의해내는 로드의 통찰은 그가 흑인이라는 의자에도, 여성이라는 의자에도 마음 편히 앉을 수 없는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과 관련
문화일보 | 2024-03-29 09:11 -
같은 단어도 ‘아전인수’ 해석… 공론장이 공허해진 이유
■ 연구자의 서재 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를 꼽으라고 할 때 ‘혐오’와 ‘청년’을 빼놓을 수 없다. 두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제각기인 텅 빈 말이라는 점이다. 이런 말들이 합리적인 대화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까? 합의된 언어를 통한 대화가 가능해야 법이나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는 합리적인 정치적 대화 또한 가능하다고 할 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정치적 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치철학자 박이대승은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오월의봄)를 통해 작금의 한국 사회가 처
문화일보 | 2024-02-23 09:08 -
적당한 나이에 취업하고 결혼해야 ‘행복한 삶’이라는 세상
■ 연구자의 서재 새해를 맞아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하고, 타인의 행복을 기원한다. 행복은 뭘까. 사람들은 인문학적으로 행복의 의미를 규명하거나, 과학적으로 행복의 원리와 기능을 밝히려 한다. 그러나 과연 정답이 있을까. 사실 많은 질문에는 정답이 없고, 꼭 있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질문은 조금 비틀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페미니스트 학자인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후마니타스)에서 ‘행복은 무엇인가’ 대신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문화일보 | 2024-01-19 09:11 -
덕질이든 짝사랑이든… 헛것에 달려드는 마음
■ 연구자의 서재 사랑은 자해고 취향은 저주다. 함께 아이돌 덕질을 하는 친구와 나눈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다양한 감정이 포개어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종의 억울함이다. 내가 쟤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게 아니라, 가만히 있던 나를 쟤가 이렇게 만들어 버렸는데. 그래서 취향은 저주고, 저주에 걸린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돌 팬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 이희주 작가의 소설 ‘환상통’(문학동네)은 사실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돌 ‘민규’를 함께 좋아하는 ‘덕질 메이트’ m과 만옥, 그리고 만옥을 짝사랑하는 한 사람. 이들은 각각 책의 1부, 2부, 3부의 화자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도 만옥과 그의 마음이 있다. 이 책은 만옥이라는 팬의 마음을 통해 덕질에 대해, 또한 덕질을 통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팬의 마음들을 먼저 보여준 이후에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짝사랑을 보여주는 책의 구성은 어떤 마음이 더 ‘진짜’인지 질문하는 듯하다. 아이돌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고, 이따금씩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문화일보 | 2023-12-01 0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