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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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충주 고구려비와 장미산성
충주시 중앙탑면의 선돌(立石)마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지역을 차지한 뒤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 땅이야!’라는 의미로 세운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북쪽에는 장미산(336.4m)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남한강의 탄금호가 있다. 1981년에 국보로 지정돼 그 내용이 이미 잘 알려졌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 이야기를 덧붙이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고구려비가 왜 그곳에 있지?’ 이런 질문을 던지면 금방 답을 하기가 어렵다. 힌트는 선돌마을 북쪽의 장미산성에 있다. 장미산성은 정상에서 시작해 남쪽 능선을 따라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퇴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둘레
문화일보 | 2024-12-30 11:39 -
<48> 남양주 조안면의 새재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양평군의 두물머리 맞은편에 남양주시 조안면이 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고향 마재마을이 있고, 그의 생가와 묘소, 실학박물관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옛 중앙선 선로에 만든 국토종주자전거길이 팔당호를 따라 면을 관통하고, 새롭게 단장한 능내역 폐역은 봄가을이면 자전거를 빌려 타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선 시대 강원도의 원주, 횡성, 평창, 영월, 정선, 강릉, 삼척, 울진, 평해에서 경기도의 양평과 지평을 거쳐 서울을 오가던 평해길도 조안면을 지나갔다. 양평 남한강가의 평해길을 지나
문화일보 | 2024-12-23 11:33 -
<47> 적도와 불근셤
1531년(중종 26) 우리나라 최고의 전국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25책)이 간행되었는데, ‘동람도(東覽圖)’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전도 1장과 도별지도 8장이 수록돼 있다. 책의 두 면 크기에 맞게 전도를 그렸기 때문에 전도는 남북보다 동서가 더 길게 보이고, 거리와 방향의 정확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도별지도는 왜곡이 더 심하다. 면적에서 큰 차이가 나는 8도를 모두 동일한 크기의 종이 안에 그려 실제 면적과 거리를 비교해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크기가 작아 펼쳐 보기에 편하고 일반 양반들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간 정보를 간단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담았
문화일보 | 2024-12-16 11:38 -
<46> ‘잣고개와 작고개’
경기도 용인시 구성구 동백동은 대단위 신흥 아파트단지인 동백지구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동백이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지명 동막과 백현 두 마을을 합하고 ‘동’과 ‘백’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이 중 백현의 한자 栢峴은, 잣고개를 한자 栢(잣 백)과 峴(고개 현)의 뜻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잣고개는 동백동에서 처인구 포곡읍의 마성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자 그 아래 마을의 이름이기도 했다. 栢을 써서 잣나무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성(城)의 우리말인 ‘잣’을 가리킨다. 마을 동쪽의 선장산(349.6m) 정상을 둘러싼 고대 용구현의 통치성인
문화일보 | 2024-12-09 11:41 -
<45> 둔치, 골칫덩어리에서 복덩어리로
우리나라 하천의 특징을 가장 잘 알려주는 개념은 하상계수(河狀係數)로, 연중 유량이 가장 적을 때와 가장 많을 때의 비율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한강은 1 대 393, 낙동강은 1 대 372, 금강은 1 대 299인 데 반해 이집트의 나일강은 1 대 30, 중국의 양쯔강은 1 대 22, 독일의 라인강은 1 대 8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강의 하상계수가 유난히 크다. 그것은 시기별로 강수량의 격차가 심한 기후대에 속하고, 유역의 면적이 넓지 않고 산지가 많아 빗물이 바다로 빠르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상계수가 커서 발달한 우리나라의 하천 지형이 둔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던 일
문화일보 | 2024-12-02 11:35 -
<44> 여의도의 샛강과 잠실의 새내
높고 큰 서울 건축물의 불빛이 빚어내는 한강의 밤 풍경은 정말 멋지다. 세계 6대 마라톤대회를 모두 완주하며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닌 필자의 동료 선생님은 한강만큼 멋진 강을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낮 풍경도 그렇지만, 밤 풍경은 특히 비교 불가란다.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여의도 등 한강 가의 한 곳에 가서 보는 밤 풍경도 분명 멋지지만, 한강 가를 따라 길게 걸어가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밤 풍경을 경험하는 것은 황홀 그 자체다. 세계적인 밤 풍경이라 자신 있게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한강 가를 따라 걷다 보면 의외로 도시의 빌딩숲이 전혀 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문화일보 | 2024-11-25 11:38 -
<43> 몽촌과 웅진, 곰말과 곰나루
475년 9월, 고구려군 3만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해 북쪽 성을 공격한 지 7일 만에 함락시키고 남쪽 성으로 옮겨 공격해오자 개로왕이 성문을 나가 도망하다가 고구려군에 잡혀서 처형됐다. 아들 문주가 두 신하와 함께 남쪽 신라로 가서 구원병 1만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수도 한성은 이미 파괴되고 아버지도 살해됐기에 백제의 22대 임금에 오른 후 그해 10월에 곰나루(熊津)로 수도를 옮겼다. 고구려군이 한성을 공격할 때 개로왕이 들어가 지키고 있던 남쪽 성은 지금의 몽촌토성이다. 백제가 곰나루로 수도를 옮긴 후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됐고, 얼마 후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서
문화일보 | 2024-11-18 11:34 -
<42> 삽교천방조제와 삽다리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10·26사건 또는 10·26사태라고 부르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필자는 놀라서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만 난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기에 당시 자료 화면을 영상으로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날 낮에 박정희 대통령이 다녀왔던 삽교천방조제의 기공식 화면이 앞쪽에 항상 등장한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어떻게든 쌀 생산량을 늘려 굶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이 국가 최대의 지상 과제였다. 비료 생산과 종자 개량을 통해 단위
문화일보 | 2024-11-11 11:34 -
<41> 문경새재, 백두대간에서 가장 붐빈 고개
백두대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설악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 등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들을 거쳐 지리산에서 끝나며 우리 국토의 척추를 구성한다. 그 상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언젠가부터 종주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우리가 잘만 정비하고 개발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누구나 종주하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희망해 본다. 조선 시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신성한 기운이 우리 국토 곳곳으로 이어지는 통
문화일보 | 2024-11-04 11:38 -
<40> 일곱매와 여덜미
일곱매란 지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굳이 표준말로 쓰면 일곱뫼다. 옛날에는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했던 곳이다. 굴비 철이면 수많은 배가 모여들어 굴비를 잡아 바다 위에서 바로 파는 어시장인 파시(波市)가 열리던 곳이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조선 전기 지리지는 물론 이중환의 ‘택리지’,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 조선에서 편찬된 거의 모든 지리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한다. 이래도 모를 것 같아 마지막으로 힌트를 하나 더 드리면, 법성포의 영광굴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 정도면 “아, 칠산 앞바다에서 엄청 잡히던 그 영광굴비요?” 이런 말이 튀어나올
문화일보 | 2024-10-28 11:32 -
<39> 무침교와 무교동낙지
김정호의 ‘수선전도’를 비롯해 조선 후기 서울의 고지도에는 남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청계천에 합류하는 여러 하천이 그려져 있다.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길로 바뀌었는데, 이들 하천 위에는 많은 다리가 있었다. 그중 중구의 중구청사거리 동북쪽 신중부시장 부근의 하천 어딘가에 무침다리가 있었다. 서울의 고지도에서는 한자 無沈(무침)의 소리와 橋(다리 교)의 뜻을 빌려 無沈橋라 표기했다. 무침다리는 장마 때마다 남산으로부터 많은 모래가 쓸려 내려와 다리가 묻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한자 표기 無沈橋의 뜻은 잠김(沈)이 없는(無) 다리(橋), 즉 묻히지 않는 다리로
문화일보 | 2024-10-21 11:37 -
<38> 첫다리와 두다리
얼마 전 삼겹살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자료가 일제강점기의 것이라는 내용을 봤다. 그런데 그때는 ‘삼’겹살이 아니라 ‘세’겹살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바뀌었다고 한다. 귀에 쏙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음식에서도 다는 아니겠지만, 우리말이 한자의 소리로 변해가는 현상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김정호가 1840년대에 제작한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는 보면 볼수록 명품이다. 목판에 새겨 인쇄했음에도 도봉산, 북한산, 백악산 그리고 좌우로 겹겹이 뻗어내려 서울을 감싸는 산줄기의 흐름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만들
문화일보 | 2024-10-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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