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시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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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기록한 소소한 일상… 여러 날, 여러 개의 나를 만났다
제목에 꿈이 들어간 책들을 떠올려 본다. 한여름 밤의 꿈, 내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기차의 꿈 등등.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님을 자각할 때, 상상의 힘을 빌려서라도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필요할 때 우리는 꿈을 소환하게 되는 것 같다. 신미나 시인의 두 달간의 도쿄 체류기를 담은 책에도 ‘짧은 꿈’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두 달은 짧은 시간일까, 긴 시간일까. 본래 시간의 밀도는 마음의 성실도와 유관하지 않던가. 시인은 두 달간의 시간을 누구보다 충실히 겪은 모양이다. 짧은 꿈이라는 말 속에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
문화일보 | 2026-04-17 09:42 -
평범한 삶을 서로 나누면… 특별한 이야기가 생긴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릿속이 바빠진다. 초침이 흘러가듯 수많은 작가의 이름이 째깍째깍 지나가는 와중에도 반드시 멈추게 되는 이름이 있으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다. 1956년생 미국 태생인 작가는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등 주로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을 써왔다. 이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적 세계관을 이루는 주요 캐릭터들로, 커다란 세계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최근작 ‘이야기를 들려줘요’에서는 그간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서 만
문화일보 | 2026-03-20 09:31 -
어쩌면 쓸모없는 ‘사랑 詩’ … 그 따뜻함이 삶을 위로한다
영화 ‘파반느’의 시사회가 있던 날, 집을 나서기 전 주섬주섬 몇 권의 책을 골라 가방 속에 담았다. 삼성동 영화관 앞에 도착한 내게 상영 전까지 주어진 건 어림잡아 세 시간. 무엇보다 홀로이니 더 아리랑 했던 나. 순간 초콜릿 바 ‘자유시간’이 언제 처음 출시된 건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1990년이라 하고, 그걸 참 야무지게 먹은 게 시 동아리 사람들과 시집 잔뜩 어깨에 짊어지고 1996년 겨울 산행을 했던 소요산 꼭대기에서의 기억이다 싶으니 별안간 센티멘털해져서는 들어선 카페에서 마시고 떠드는 일로 바쁜 사람들 한가운데 나는
문화일보 | 2026-02-20 09:31 -
당신의 뿌리는 단단한가… 울림 큰 모옌의 메시지
표지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한 인물의 일러스트가 너무도 매력적이라 일단은 그 얼굴의 단순하면서도 킥이 분명한 선을 만져보며 좇다가 책을 두른 띠지 정 가운데 귀엽게 자리한 한 인물의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다가 표지 일러스트 주즈치, 거기까지 책을 열어 확인한 뒤에야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란 제목을 읽어내려간 나였다. 얼마 만에 만난 모옌인가. 태어난 이름 관모예. 작가 이름 모옌(莫言). ‘말을 하지 않는다’란 뜻의 필명과는 역설적으로 그는 줄곧 풍성하고 대담한 이야기를 선보여왔고(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의
문화일보 | 2026-01-16 09:22 -
그 표구를 본 순간 떠올랐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들
“장례에는 순서가 있었고, 슬픔에는 순서가 없었다.”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가장 처음 맞닥뜨린 구절이라면 이랬다. 사이사이 ‘표구’가 된 갖가지 사물이 사연으로, 또한 액자 형태로 들어앉아 있는데 그 몇 장을 찬찬히 넘겨보는 사이 연두부처럼 순하게 말캉해져 가는 내 마음을 느꼈다. 아이가 접은 종이접기들, 코로나19로 연기가 되어 네 장이 된 청첩장, 유품이 된 의사의 의료 도구,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할 때 고사에 사용한 북어, 처음 미용을 시작할 때 쓰던 고데기 등등 멋들어진 거창한 풍경 앞에서의 감탄이 아니라 작고 소소
문화일보 | 2025-12-12 09:10 -
세간살이에 숨겨진 한국인의 멋과 지혜
표지에 갓 있다고 산 책 아니다. 표지에 갓도 있어서 산 책이다. 갓. 어째 이름부터가 갓인가.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갓을 탐하는 나를 두고 오래전 한 지인이 내게 갓을 선물한 적이 있다. 쓰고 다닐 용도가 아닌 두고 봄의 쓸모는 결국 아름다움이라 나는 거실 벽에 그 갓을 그림처럼 걸어두고 오며 가며 그 갓을 자연처럼 보아왔던 참이다. 무엇이 예술인지 아둔한 나이기에 지혜롭게 정의할 수는 없겠으나 이런 귀함의 방편 앞에 홀로 술을 마실 적에 절로 오르는 흥취를 안줏거리 삼을 적에 입술에 묻어 잘 안 닦이는 말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겠
문화일보 | 2025-11-14 09:38 -
뜨겁기도 덤덤하기도 한 어느 86세 소년의 고백
이 계절 가을이고 하니 시를 읽으시라. 하고 많은 책 가운데 왜 시집이냐 하시면 잎이라 불리던 초록이 붉어져 낙엽이라 뒹구는 거, 그거 모으느라 오며 가며 쓰는 비질 소리, 그거 ‘쓸쓸’이라 절로 받아적고 있는 나일 적에 제 심장을 향해 고개 푹 숙이게도 되노니 시를 읽으시라. 겸손함을 가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겸연쩍음을 가정하게도 되니 시를 읽으시라. 문맥을 잎맥처럼 짚으면 사유가 개울물처럼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낼 테니 시를 읽으시라. 돈은 차치하고 돌에 쩔쩔매는 주제가 빈번하니 시를 읽으시라. 가난을 난가, 하고 뒤집었을 적의
문화일보 | 2025-10-17 09:10 -
마감 食이 특별해질 때 마감은 행복한 일이 돼
관형사 ‘어떤’을 갖다 쓰곤 하지요. 작심일 때는 안 따라붙는데 이상하게 무심일 때는 왜 마른 김 위에 진밥 푸던 주걱 놓친 것처럼 들러붙어 안 떨어지는 밥풀 같은 말이 되던지요. 말거리나 글거리를 떠올릴 적에 특히나 그 맥락의 생각거리가 많을 적에 부유하는 얘깃거리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되레 망망대해처럼 퍼질 적에 종이를 눌러 고정하는 문진처럼 서두에 놓게 되는 말. 하나이면서 전부가 되는 그 ‘어떤’ 다음에 어마나, ‘탕수육’이라니! ‘어떤 탕수육’은 ‘북디자이너의 마감식’이라는 부제와 함께하는 책이에요. 표지에 ‘김마리 지음
문화일보 | 2025-09-19 09:21 -
유독 끌리는 詩 한줄… 내 모습 같아서일까
스물셋 12월에 처음 직장인이 되었다. 심장을 가진 사람의 손이 아니라 엔진을 가진 바퀴의 손잡이에 매일같이 매달리던 시절이었다. 2시간 30분이 걸리는 출근 시간 내내 자고 싶다, 그 생각만 했다. 2시간 30분이 걸리는 퇴근 시간 내내 자기 싫다, 그 생각만 했다.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벼랑이거나 허방 아니겠나 부들부들 발가락을 곧추세우곤 했다. 늦은 밤 집을 지척에 둔 동네 치킨집에서 주문한 생맥주가 나오기도 전에 내가 한 행동은 신을 벗고 양반다리를 해 주먹으로 종아리를 치는 일이었다. 그때 왜 난 나를 아
문화일보 | 2025-08-22 09:15 -
‘메모’는 끄적이는 것? ‘나’를 알게 되는 기록
이 책이 나오자마자 제목을 ‘메모’해둔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원래 참 재미난 거, 일찌감치 새로운 거, 유용하게 잡다한 거, 그런 거 요리조리 잘 탐해온 소설가 김중혁의 신간인 만큼 그의 그림과 손글씨가 자유로우나 나름의 질서로 와글와글 깔린 표지의 책 ‘미묘한 메모의 묘미’(유유)를 후다닥 안 읽어치우고 느릿느릿 톺아보게 된 데는 이 책이 ‘자기계발서’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기도 해서였다. (매미처럼 맴맴 미음을 앞세워 나열한 제목 보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기의 재능 같은 것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면 저도 모르게
문화일보 | 2025-07-18 09:19 -
각얼음에 팔도비빔면까지… 계절에서 꺼내온 단어들
각 얼음을 좋아해요. 각이 진 틀에 얼린 왜 그 네모난 얼음 있잖아요. 냉동실에 보면 포도송이 같은 동그란 틀도 있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딱 각이 진 네모라야 단단한 내 앞니와 상대할 맞수 같았어요. 와그작와그작 그 투명하고 말간 것을 깨물어도 덜 미안한 건 입안 가득 내가 부순 얼음 알갱이들이 가득할 때 골이 파일 듯이 조여오는 일이 먼저여서일 거예요. 여름 하면 얼음, 얼음 하면 땡, 땡 하면 땡스북스, 북스 하니 6월, 6월 하니 서울국제도서전…… 벌써 많이들 걸음하셨지요. 매년 모든 면면에 있어 사상 최대를 경신하고 있는 최대
문화일보 | 2025-06-20 09:34 -
서로를 넘나들며 흐르는… 여성작가 10인의 목소리
새 책을 손에 들게 되면 으레 나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단박에 들어오는 문장을 좇는다. 오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턱 하니 펼쳤을 때 139쪽이 나왔고 거기 나는 이렇게 붙들렸다. “1979년 1월 1일 월요일, 나는 멋진 각오를 한다. 매일 누군가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소피 칼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걸 시인 장혜령이 하고 있는 책이다. 새 책을 손에 쥐게 되면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즉시로 눈에 박히는 단어를 줍는다. 오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탁 하니 펼쳤을 때 190쪽이 나왔고 거기서 나는 이걸
문화일보 | 2025-05-23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