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S010202492 추모합니다
35 | 생성일 2024-03-13 09:08
  • 정신문화연구원 토대 마련하고 저작권법 안착에도 헌신[추모합니다]

    정신문화연구원 토대 마련하고 저작권법 안착에도 헌신

    지금처럼 행정체계가 세분화되기 이전이었던 당시 문교부는 교육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까지 통합 주관하던 부처였다. 그 덕분에 큰아버지는 교육 행정을 넘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문교부 차관직 퇴임 후에도 서울올림픽 자문 역할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셨다. 특히 큰아버지는 한국 저작권법의 선구자였다. 해방과 전쟁 후 대한민국의 급조된 시스템 전반에서 미비할 수밖에 없었던 저작권법을 연구하며 한국형 체계화를 추진하셨다. 이후 저작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개정된 법이 현실에

    문화일보 | 2026-02-05 09:15
  • 가난 속 집념으로 공직 꿈 이루고… 문화행정에 평생 헌신[추모합니다]

    가난 속 집념으로 공직 꿈 이루고… 문화행정에 평생 헌신

    다시 비행기 안이다. 큰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 기내등이 꺼진 정적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여 그분의 생애를 정리해 보려 한다. 내가 꼬마였을 때 이미 사회적 성취의 정점에 계셨던 분이었기에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는 그 거대한 생애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여, 시대별 역사적 사실들을 징검다리 삼아 그분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어 보고자 한다. 나의 조부는 태평양전쟁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셨다. 해방 후 고향 마산으로 돌아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귀국선

    문화일보 | 2026-02-04 09:17
  • 실감나게 ‘삼국지’ 들려주시던 선생님, 하늘에서 천복 누리소서[추모합니다]

    실감나게 ‘삼국지’ 들려주시던 선생님, 하늘에서 천복 누리소서

    전주에서 소아과병원장 친구가 엊그제 전화로 비보를 전해 왔다. 자기 집 근처에 사시던 고교 은사님의 별세 소식이다. “어? 그래. 어찌 그런 일이.” 크게 놀라며 한동안 먹먹했다. 사연인즉슨, 얼마 전 그 선생님의 실종소식을 지방뉴스로 듣고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며칠 후 사실이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단다. 그 친구도 자세한 내용이나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한다 했다. 문상조차 할 수 없이, 그냥 그렇게 한세상 사시다 떠나버렸구나, 생각하니 먹먹했다. 5년 전 스승의 날 전날에 남원의 서예가 친구(근봉 이종대)와 둘이 어느 한정식

    문화일보 | 2025-11-11 09:09
  • 조국의 독립위해 모든것을 바친 숭고한 삶에 경의[추모합니다]

    조국의 독립위해 모든것을 바친 숭고한 삶에 경의

    고당 선생께서는 오산학교 시절부터 언제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스스로 국산품만을 사용함으로써 애국과 항일의 모범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당 선생은 국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 자립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개인이든 나라이든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면 남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당 선생의 신념은 뒷날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의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당 선생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에서 이덕환(李德煥)·김동원(金東元)·오윤선(吳胤善) 등 70여 명

    문화일보 | 2025-10-15 09:07
  • 독립운동부터 반탁운동까지… 애국의 길 걸어온 당신[추모합니다]

    독립운동부터 반탁운동까지… 애국의 길 걸어온 당신

    2025년 10월 18일, 이날은 고당 조만식(사진) 선생의 순국(殉國) 7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선생께서는 1883년(고종 20년) 2월 1일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하셔서 1950년 10월 18일 순국하실 때까지 전 생애를 오로지 조국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운동으로, 광복 후 소련군정(蘇聯軍政)하에서는 반탁운동(反託運動)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셨습니다. 고당 선생의 유소년 시절은 나라의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1889년(고종 26년)

    문화일보 | 2025-10-14 09:11
  • 등반과 탐험 넘나들며 활동… 죽음까지 허영호답게 마무리[추모합니다]

    등반과 탐험 넘나들며 활동… 죽음까지 허영호답게 마무리

    허영호가 등반과 탐험을 넘나들며 활동하면서 업적을 내자 비록 소수지만 탐험계나 등반을 탐험과 구분하는 등산계에서는 조금은 찜찜한 심정이었다. 나는 대학 동굴탐험부 출신이었고, 뗏목탐험을 처음 시도하면서 대한해협을 건너 규슈까지 항해를 했고, 중국 남쪽 지방에서 뗏목을 제작해 중국 산둥까지, 또 흑산도를 경유해 인천까지, 또 중국 남쪽 해안을 출항해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항해했다. 물론 다른 탐험들도 많이 시도했지만…. 그러한 나는 등반도 탐험의 한 분야라는 사실을 꾸준히 주장했다. 또 그게 맞다. 실은 내 동기인 심상돈은 양정고 산

    문화일보 | 2025-09-04 09:18
  • 7대륙 최고봉 첫 등정… 시대정신 대신 실현한 거대한 위업[추모합니다]

    7대륙 최고봉 첫 등정… 시대정신 대신 실현한 거대한 위업

    가는구나. 가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늘 가고 오고…. 그러려니 받아들이지만, 이 나이에는 아는 이들이 가는 걸 보는 게 남다르다. 선생님들이 돌아가시고, 선배들도 뒤를 따르는 중이다. 그리고 또래들도 내가 아는 중 모르는 중 떠나는 것 같다. ‘실존’이란 것도 종류가 다양하고, 그 정도와 깊이도 차이가 있다. 보통은 종교의 수행자들이나 철학자, 또는 예술가들의 실존을 떠올린다. 인간의 정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궁극적인 단계에 도달하려는 과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생사를 건 것이 아닌 관념적인 실존이다. 전장에서 생과 사의

    문화일보 | 2025-09-03 09:16
  • 죽란시사처럼… 술로 시로 24년 동행했던 시간 아직 눈에 선해[추모합니다]

    죽란시사처럼… 술로 시로 24년 동행했던 시간 아직 눈에 선해

    지난 5월 초, 나는 연세대 장례식장 테이블에 앉아 맞은편에 계신 고 김송배 선생님께 소주 한 잔 올리게 되었다. 너무 늦었다는 자책 속에서 반세기의 시간을 회억하며 선생님의 영면을 애도하는 혼술은 쓸쓸하기도 하고 처량 맞았다. 향년 82세로 마침을 하신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고교를 졸업하고 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이다. 반세기를 훌쩍 넘겨 버렸으니 난잡하게 흩어진 시간을 정갈하게 추스를 수 있는 기억의 유통기한은 끝나 버렸다. 사랑문학회 동인의 상임고문으로 선생님을 모시면서 시작된 인연. 1993년 3월 선생님의 권유로 한국예술문화

    문화일보 | 2025-08-28 09:11
  • 땅 속 씨앗처럼… 주교님의 울림은 모든 사제들 마음을 깨웁니다[추모합니다]

    땅 속 씨앗처럼… 주교님의 울림은 모든 사제들 마음을 깨웁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주교님, 40여 년 전 독일 뉘른베르크 다락방에서 유학생으로 처음 뵌 그 순간부터 주교님은 변치 않는 분이셨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품성과 깊은 믿음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강물처럼 내면을 적시며 흘렀습니다. 조용한 미소 속에는 생명의 원천이 있었고, 그 눈빛에는 ‘저 깊은 강을 건너간 이들’의 평안이 서려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교님이 되셨을 때 저에게 주교 문장을 부탁하셨습니다. 당신은 ‘갓 태어난 아기 발’을 상징으로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시대 모든 것을 품는 연약함 속에 깃든 생명과

    문화일보 | 2025-08-19 09:03
  • 안중근 하얼빈 거사 돕고, 연해주 임정 설립 주도한 ‘따뜻한 난로’[추모합니다]

    안중근 하얼빈 거사 돕고, 연해주 임정 설립 주도한 ‘따뜻한 난로’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온 나라에 뜨겁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나 역시 깊이 고개를 숙인다. 특히 근년에 알게 된 ‘페치카’ 최재형(崔在亨·1860∼1920) 선생을 기억하고자 한다. 최재형기념사업회가 올려놓은 연보에 따르면, 선생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한다. 10세 무렵, 기근과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 연해주 남부 진신허(연추) 마을에 정착했다. 어려서부터

    문화일보 | 2025-08-14 09:07
  • 타국 회사를 위해 노하우 전수해줘… 조만간 꽃들고 찾아뵐게요[추모합니다]

    타국 회사를 위해 노하우 전수해줘… 조만간 꽃들고 찾아뵐게요

    우리 회사 유통부문에서 오랫동안 전반적인 컨설팅을 해주시던 일본의 오오니시 쥰조(大西俊三) 고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일본에서 슈퍼마켓의 전설인 오사카(大阪)의 간사이(關西)슈퍼마켓에서 근무하셨던 유통 분야의 베테랑이시다. 간사이슈퍼마켓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유통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서였다. 오사카 지역 한 시골의 작은 슈퍼마켓 과장 한 사람이 미국에 가서 슈퍼마켓을 공부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단다. 그 뒤로 간사이슈퍼마켓의 책임자가 되어서는 누구나 견학을 원하면 매장의 후면까지 모두를 보여주는 오픈

    문화일보 | 2025-07-09 09:24
  •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리니”… 순수·사랑·그리움의 아이콘[추모합니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리니”… 순수·사랑·그리움의 아이콘

    “문학이 시가 우리를 구한다고 외치던,/ 참 젊기도 하여라, 윤후명 소년이여// 어디까지 가셨는가, L과 K 마중 나오셨는가, 거기에도 능소화 핀 그대 작업실이 있는가.” 지난 5월 8일 이 세상을 떠난 윤후명 영결식에서 학창 시절부터 같이 시를 써온 절친한 문우 강은교 시인이 쓴 조시 한 대목이다. 은하수 건너왔다가 또 은하수 건너 건너 어디까지 가고 있느냐 묻고 있는 시에도 분명히 드러나듯 문학이 우리를 구한다며 우리 시대 순수와 사랑과 그리움의 고향이 된 사람이 윤후명이다. AI가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럴듯하게 그려

    문화일보 | 2025-07-02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