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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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해 발굴은 범국민적 염원… 정치권 관심 가졌으면
■ 추모합니다 -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5주기를 맞아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115주기였다. 해마다 이날을 맞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더한다. 안 의사의 유해는 중국 다롄시 뤼순구에 묻혀있다. EBS 다큐멘터리 ‘안중근 순국 백 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통해 소개한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2010년 순국 100주기를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했는데 무려 20여 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관심을 갖고 조사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일본 보고 문서를 찾고 현장을 답사하고 심지어는 1940년
문화일보 | 2025-04-01 09:15 -
“기부로 사회에 진 빚 갚는다”던 고귀한 뜻 잊지 못해
■ 추모합니다 - 고 박준구 우신켐텍 명예회장(1944∼2025) 어느 해 8월 중순,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저녁. 아들 생일이라 축하 파티를 냉면으로 하기로 하고, 마포에 있는 유명 냉면집엘 식구들과 갔더랬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다 들어가 자리에 앉고 보니 좀 떨어진 곳에 낯익은 인사가 냉면을 들고 계셨다. 반가움에 틈새를 비집고 찾아가 잠깐 인사를 나눴다. 워낙 북새통이라, 나온 냉면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언뜻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일행은 벌써 자리를 뜬 후다. 우리는 등지고 앉은 위치라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식사 후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문화일보 | 2025-03-27 09:11 -
당신은 CEO 역할 범주를 뛰어넘은 실용적 교육철학자였습니다
■ 추모합니다 - 고 박준구 우신켐텍 명예회장(1944∼2025) 럭비나 유도 선수 출신인 줄 알았다.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체격, 큼직한 얼굴과 우람한 손. 2005년 봄,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으로 그가 취임하면서 각 학과 대표들과 상면하는 자리에서의 첫인상이 그랬다. 전통적으로(?) 유약한 ‘문과인(文科人)’ 이미지를 떠올리던 내게 그의 장대한 풍모는 다소 의외였던 것이다. 오늘(3월 26일) 발인식을 거쳐 영면에 드시는 박준구 선배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런 착시는 오래가지 않았다. 안경 속 부드러운 눈매, 얼굴 가득 넘치는 순박한
문화일보 | 2025-03-26 09:05 -
한국 월드컵 우승 꿈꾸며…하늘서 쿵짝맞출 멘트 고민하겠습니다
■ 추모합니다 - 고 송재익 캐스터(1942∼2025)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은 스위스, 프랑스, 토고와 G조에 속해 있었다. 그해 6월 24일 스위스와의 예선경기에서 터진 오프사이드 사건은 나와 송재익 위원의 방송 인연을 끊는 계기가 됐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스위스와 경기에서 터진 프라이의 첫 골 당시 부심은 오프사이드 기를 들었고 주심은 이를 배척하고 온사이드를 인정해 골을 선언했다. 나는 주심의 판단이 문제가 없다고 해설을 했다. 20여 년 동안 수천 경기의 해설을 했던 해설자로서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명확한 룰에 입각한 해설을 한 것이
문화일보 | 2025-03-25 09:07 -
‘마지막 사연’ 메일 1주일 뒤… 영원한 ‘인연의 꽃’ 남기고 하늘로
■ 추모합니다 - 이역서 타계한 김영애(1951∼2024) 작가 우리는 그전에 이미 한국에서 세 번의 만남을 가졌었다. 한 번은 김영애 작가가 신인상을 받을 때였고, 한 번은 문학상 수상을 위해 방문한 때였으며, 나머지 한 번은 국제 문학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한 고국 나들이 차였다. 지난해 봄, 나는 아내와 함께 마침내 로스앤젤레스(LA) 땅을 밟았고 김 작가와 공항에서 해후했다. 우리는 가벼운 포옹으로 재회의 반가움을 나누었다. 편지에는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쓰여 있었지만, 얼굴은 생각한 것만큼 크게 축나 보이진 않았다. 표정 역시도 예전과
문화일보 | 2025-03-12 09:12 -
태평양 건너 글로 이어진 인연… 마지막 해후, 아직도 먹먹
■ 추모합니다 - 이역서 타계한 김영애(1951∼2024) 작가 두 달 전쯤, 작가 김영애(1951∼2024) 선생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가 반평생을 이민 생활로 보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메모리얼 가든에서. 이역만리 머나먼 곳인 탓으로 도저히 한달음에 달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영상으로만 영결식을 지켜보며 애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 순간은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언제까지라도 잊지 못할 슬픈 장면으로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 같다. 기억의 필름을 되감아 보니, 지금으로부터 열네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난데없는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낯선 땅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내온 전자우편이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감명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교포인데 내용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서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선생님과 교분을 맺고 싶습니다. ……” 김영애 작가가 띄운 편지였다. 그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글이란, 모 일간신문에 쓴 나의 칼럼 ‘사랑은 있어도 사랑이 없다’를 두고서 하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통하여
문화일보 | 2025-03-11 09:36 -
노래로 베풂으로 세상 위로하더니… 차 표 한 장 들고 하늘로
■ 추모합니다 - ‘독립투사 후손 가수왕’고 송대관(1945∼2025) 형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합니다! 지난 2월 7일 오전 속보로 송대관 가수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설마 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왕’ 송대관. ‘해뜰날’(1975)로 주목받은 후 전성기를 누리고 ‘네박자’ ‘유행가’ 등 숱한 국민가요를 대한민국 국민 가슴에 심어놓고 천국행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빈손으로 떠나갔습니다. 1970년대, 제가 국회에 근무할 때 정동 MBC 방송국에
문화일보 | 2025-03-04 09:46 -
“글을 쓰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던 착한 내 동생
■ 추모합니다 - 고 조관선 소설가 벌에 쏘여서 사망하는 경우는 보통 아나필락시스 쇼크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벌 독에 대한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신체가 벌 독에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증상이 급격히 나타나는 것이다. 벌에 쏘인 후 두 번째 벌에 쏘였을 때 신체가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쇼크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쇼크는 급격하게 혈압이 떨어지고, 기도가 좁아지며 호흡 곤란이 일어나는 등 몇 분에서 수십 분 이내에 발생하기 때문에 벌에 쏘인 후 응급 처치가 이뤄졌더라도, 쇼크로 인해 뇌, 심장, 폐
문화일보 | 2024-10-02 09:09 -
온 마음을 다해 베풀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 닮고싶어요
■ 추모합니다 - 나의 아빠 故 백현옥 조각가(인하대 명예교수·1939~2024) 조각하는 아빠는 늘 멋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자연스럽게 조소과를 선택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빠의 공간감이나 머리와 손이 하나로 움직이는 조형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 미련이 남아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도 조각가의 꿈을 내려놓지 못하다가, 결국은 능력 부족을 깨닫고 그나마 조금 물려받은 색에 대한 감각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살려 서양화과로 전과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양화 전공이면서도 조각가인 아빠의 스케치 실력에도 못 미쳐 결국은 대학원에
문화일보 | 2024-09-25 09:15 -
한국 구상조각 거목이셨던 아버지… “존경한다” 마음 못 전해드려
■ 추모합니다 - 나의 아빠 故 백현옥 조각가(인하대 명예교수·1939~2024) 아빠! 이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사랑하는 나의 아빠는 얼마 전 작고하신 고 백현옥 조각가이시다. 아빠는 인하대 조형예술학과 명예교수이시며, 한국 구상조각의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시다. 대표작으로 천안 망향의 동산 내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 풍산공원 내 괌 대한항공 여객기 희생자 위령탑, 김환태 문학 기념비, 인하대 비룡탑 등 수많은 모뉴먼트와 환경조각을 남기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김종영 미술관, 김세
문화일보 | 2024-09-24 09:06 -
‘3·8민주의거’ 직접 나선… 겸손과 정의 겸비한 문단의 거목
■ 추모합니다 - 김용재 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1944∼2024) 금년 4월 29일, ㈔ 국제PEN한국본부 김용재 이사장님께서 소천하였습니다. 1944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고,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인은 대전대 영문과 교수와 교수협의회 회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97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집 12권, 영문시집 5권, 산문집 등 40여 권의 저서와 국제계관시인상, 한국현대시인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문단의 거목이었습니다. 영문학자와 시인의 자격으로 세계시인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세계한글작가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김 이사장님은 유년 시절부터 정의로운 분이었습니다. 대전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민주 혁명의 초석이 되었던 ‘대전3·8민주의거’에 직접 나서서 민주와 정의를 외쳤던 산 증인으로서 오래도록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
문화일보 | 2024-09-03 09:24 -
선생님 시 제목 ‘은난초꽃’ 처럼… 언제나 해맑은 미소 간직하셨던 분
■ 추모합니다 - 후소 김여정 시인(1933∼2024) 후소(後笑) 김여정(본명 김정순) 시인이 가셨다는 소식을 숙제 중에 들었다. 내 피붙이 중 유일하게 남은 94세의 이모님을 뵈러 아내와 함께 남도길에 오른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시인이 아니라서인지 돌고 돌아 뒤늦게 들어온 소식은 후소 선생님이 가신 다음 날 늦게였다. 이를 어쩐다. 하지만 이번에 못 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나름의 숙제를 포기하기엔 마음도 시간도 너무 급했다. 후소 선생 소식을 무거운 추로 가슴에 품고 6월 6일 겨우 숙제를 하고 남도길을 벗어나는 내게는 이모님을 다시 또 뵐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하나와 오늘 향년 91세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시는 후소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도 못 하는 죄송스러움의 두 마음이 영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다. 사실 나는 40여 년 수필만을 썼기에 시인들과의 교류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김여정 시인은 꽤 많이 뵈었다. 2005년 제20회 동포문학상 대상을 받은 내게 선생님은 나도 15년 전에 이 상을 받았어요 하며 손을 잡아 축하해 주셨다. 그렇다 해도 시단에서만도 챙길 분이 많을 텐데 1474쪽이
문화일보 | 2024-08-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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