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획·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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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재미 붙일 수 있도록… 배려·사랑 베푸신 은사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매년 학년이 오를 때마다 당연시 여기던 반장도 맡게 되었다. 선생님은 고향이 강화도다. 그 당시 교과서에 강화도 특산물로 화문석이 소개되어 선생님 하면 화문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도 바뀐 계절이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특히 봄에 개학을 하면 추워도 너무 추웠다. 아침 일찍 등교하기 전 학교 아저씨가 장작을 양동이에 들고 와서 솔방울과 함께 조개탄 난로를 피우는데 교실 한가득 연기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겨우 난로에 온기가 생겨났다. 수업 중간에도 난롯
문화일보 | 2025-05-01 09:31 -
펀드회사 경영자서 목회자로 변신… 신앙의 힘 일깨워줘
■ 존경합니다 - 일본 시가키 시게마사(志垣重政) 목사 내가 시가키 시게마사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서 펀드운영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이셨다. 그래서 선교사역을 사업적 관점에서 보아,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향하는 복음전파 사업이라 볼 수 있었던 것도 비즈니스 맥락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가 선교를 부추긴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가치관의 강요이기도 한 것이며, 후진국의 국민은 선진국의 조언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 선교를 활발히 펼쳐온 나라가 모두 선진국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펀드운영회사는 극히 일부분이었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선교사역을 하던 동역자이면서 산증인인 장로님이셨다. 일본인이면서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영어 역시 모국어 수준이다. 시가키 목사님은 한국의 고려대를 졸업하고, 일본 순복음대학 대학원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 사무총장,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 Board Member,
문화일보 | 2025-03-06 09:24 -
일본 학생들에 한국 알리려 애쓰시던… 한국사랑 교수님
■ 존경합니다 - 아키즈키 노조미(전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부 교수) 외로운 일본 유학생활 중에 누가 나를 찾는다고 해서 어리둥절하면서 만났다. 같은 학교 국제학부에 교수로 재직하는 아키즈키 노조미(秋月望) 교수님이었다. 한국의 고려대학교 대학원과 일본문화원 근무를 합하여 5년간 한국 생활을 한 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었단다. 한국말이 모국어처럼 자유롭다. 외국 유학시절 초창기에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처럼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것도 같은 대학의 교수님으로 재직하고 있으니 더없는 축복이자 행운이
문화일보 | 2024-07-17 09:10 -
‘척’하지 않는 겸손 몸에 밴… 人香萬里 되새기게 하는 친구
■ 존경합니다 - 중학 동창 김현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예수는 말했다. 그런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어떤 이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시무룩한 표정이 돼 고개를 저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듯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없다고 지나치게 슬퍼할 일도 아니요, 있다고 함부로 떠들 일도 아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한 것이다.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그것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허황해서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이루고 싶어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있는 꿈 말이다. 우리는 다시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다. 서로를 알아주면서 네 것 내 것 없이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느냐고. 참으로 고맙게도 내게는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다. 죽마고우와 다름없는 김해 한림중 제18회 동창 김현태, 언제 불러도 좋은 그 친구의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른바 친구라고 하면서도 사리?
문화일보 | 2024-06-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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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재미 붙일 수 있도록… 배려·사랑 베푸신 은사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매년 학년이 오를 때마다 당연시 여기던 반장도 맡게 되었다. 선생님은 고향이 강화도다. 그 당시 교과서에 강화도 특산물로 화문석이 소개되어 선생님 하면 화문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도 바뀐 계절이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특히 봄에 개학을 하면 추워도 너무 추웠다. 아침 일찍 등교하기 전 학교 아저씨가 장작을 양동이에 들고 와서 솔방울과 함께 조개탄 난로를 피우는데 교실 한가득 연기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겨우 난로에 온기가 생겨났다. 수업 중간에도 난롯
문화일보 | 2025-05-01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