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푸드>영양학자 김갑영의 우리 음식 이야기 - 감가루떡 석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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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여름에도 큰 마트나 시장에서 단감, 홍시 등을 살 수 있다. 현대적인 첨단 저장법 덕분이다. 예전에는 그런 기술이 없어서 껍질을 벗겨 말린 곶감 형태로 저장해야 했다. 그리고 감이 제철이 아닌 계절에 곶감 속에 호두를 박아 말아 썬 곶감말이, 곶감을 넣어 만든 음료인 수정과 등을 즐겼다.

말린 감을 가루로 내 만들어 먹던 석탄병(惜呑餠)도 그런 요리 중 하나다. 카로티노이드 등의 영양소가 풍부한 감은 처음에는 진노란색을 띠지만, 말리면 검은 자주색으로 변한다. 또 말리는 과정에서 떫은맛도 없어지고 단맛이 가미된다. 맛과 향이 오히려 제철 감 못잖았다. 이런 재료로 떡을 만들었으니 삼키기가 애석할 정도라는 뜻의 ‘석탄병’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석탄병은 조선시대 중기의 살림살이 백과였던 ‘규합총서’를 비롯해 ‘시의전서’ ‘부인필지’ ‘간편조선요리제법’에 등장한다. 조선시대 조리법에 따르면 석탄병은 감가루에 멥쌀가루와 사탕가루 또는 설탕이나 꿀(생청)을 섞어 체에 쳐낸 후 그 위에 가늘게 썬 귤병(꿀에 졸인 귤), 민강(생강 저민 것), 대추, 황률(말린 밤) 등을 고물로 얹어 쪄내는 것이었다.

이 같은 석탄병 제조법은 반가 음식 분야의 일인자로 꼽히셨던 고 강인희(1919~2001) 교수를 통해 제자들에게 전수됐다. 강 교수는 깨끗이 건조시켜서 곱게 준비한 감가루에 멥쌀가루와 잣가루를 잘 섞어서 반죽해 석탄병을 쪄냈다. 잣가루를 멥쌀가루, 감가루와 같은 양으로 섞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떡의 천연의 단맛과 특이한 향미, 부드러움이 일품이었다.

강 교수는 대학 실습실은 물론, 경기 이천시 자택의 전통 주방에서 조선조 사대부가의 전통음식을 지도했고, 석탄병도 그 같은 과정을 거쳐 후학들에게 전해졌다. 이때 배운 제자들이 전국의 대학에서 교수로, 음식전문가로 활동하고 한국 양반가 전통음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박혜원(호텔조리학) 신흥대 교수도 강 교수의 제자로 얼마 전 시식회에서 석탄병을 선보였는데 필자도 그때 제대로 만들어진 석탄병 맛을 보았다.

사실 석탄병은 집에서 만들어 먹기가 쉽지 않다. 손이 많이 가고, 한번 만들어도 저장 역시 쉽지 않다. 이따금 떡 전문점에서 내놓을 때도 있지만 전통의 맛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더욱 담 넘어 가을의 감이 무르익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석탄병 맛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지는지 모르겠다.

공주대 교수·전 한국가정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