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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단골 소재 된 황진이, 미실, 의자왕 이야기의 비화 속으로...‘우리 역사의 사생아들’ 흔히 B급 역사로 취급받는 근현대 역사문예에 관한 책 ‘우리 역사의 사생아들’(글누림)이 출간됐다. 신라 시대의 미실부터 조선 시대의 황진이까지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은 오늘날 창작물의 단골소재다. 역사문예의 대표적인 장르인 역사소설을 시작으로 현재는 역사극, 역사영화, 역사뮤지컬까지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고 있다.이처럼 책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더해 꾸민 역사문예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했던 역사문예에 얽힌 비화를 조명한다. 한국 근대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특정 역사영화의 사실 왜곡에 대해 시비가 붙거나, 인기리에 방영 중인 사극을 두고서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변별하고 그들 행적의 개연성을 따져 묻는 사태를 보며 “역사문예에 담긴 허구가 검증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며 “역사문예에 재연된 과거가 공인된 역사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있다”고 말한다. 대중이 가장 즐겨찾는 역사의 배움터이자 재미와 교훈까지 모두 챙겨갈 수 있는 역사문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신재우 기자
- 신재우 기자
- 2025-01-15 11:59
“합창단에서 작은사회 배워요” 하나님의교회 ‘새노래 페스티벌’ 성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 이하 하나님의교회)는 지난 12일 경기 분당 새예루살렘 판교성전에서 ‘학생 새노래 페스티벌’을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하나님의교회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 등 당일 29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유튜브로도 생중계됐으며, 온라인을 포함해 총 6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이날 행사는 하나님의교회 메시아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구성된 브라스 앙상블의 연주로 시작됐다. 헨델의 ‘대관식 행진곡’ 등 웅장한 관악기 연주에 이어 팀당 84명씩 구성된 서울과 경기, 강원, 충청, 경상, 호남 등 전국 10개 지역 학생합창단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들은 하나님의교회의 찬송가라고 할 수 있는 ‘새노래’에 수록된 ‘이렇게 아름다운 날’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 등을 선보였으며, 관객들은 응원봉을 좌우로 흔들고 리듬에 맞춰 손짓했으며 큰 함성과 박수갈채로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참가자들은 ‘시온의 별’과 가곡 ‘아름다운 나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교회 측은 ‘새노래’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 형제 사랑, 천국 소망 등이 담겨 있다"면서 "68개 언어로 번역돼 175개국에서 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한편, 이날 페스티벌에는 포토존, 캘리그라피 존 등 공연과 별로도 마련된 부대행사장도 성도들로 북적였다. 아내, 자녀와 함께 현장을 찾은 김영삼(50·서울) 씨는 "합창단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이해와 배려를 배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미연 전주 황금예술국악한마당 원장도 "청소년들이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교회가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교회는 청소년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순회 연주회를 40여 회 열었으며, 동·하계 방학 때마다 ‘학생캠프’를 개최하고 있다. 또, 청소년 월간지 ‘소울(소망의 울타리)’을 발간하고 있다. 박동미 기자
- 박동미 기자
- 2025-01-15 10:11
이번엔 양심론… “배려·나눔으로 양심의 불씨 살렸으면” “양심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개인의 판단이지만, 다분히 인지적이고 추상적일 뿐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촉구하는 공동체 기준에 관한 지식으로서 사회적 차원도 지닌다.”‘통섭’을 시작으로 ‘배움’과 ‘숙론’ 등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전달해 온 최재천(사진)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양심’을 화두로 가져왔다.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기가 어려운 시점, 최 교수는 신간 ‘양심’을 통해 “‘양심’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 대화에서 사라졌다”며 “이처럼 단어 혹은 용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가는 현상은 사회, 문화, 그리고 기술의 변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그가 책을 통해 설명하는 양심의 동기부여는 ‘차마, 어차피, 차라리’다. 돌고래 제돌이의 야생 방류와 호주제 폐지 운동 등 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활동들을 추진한 계기이기도 하다. 한 강연에서 생태학자로서 “그동안 관찰해온 자연계에는 호주제도라는 것이 없었다”고 발언한 데에서 시작해 그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가담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간간이 들었던 여성들의 절규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이래저래 어차피 먹을 욕이라면 차라리 화끈하게 덮어써 보자는 속셈으로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이처럼 양심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감각이 아닌 뇌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발달하고 인정과 불인정 속에 변화하는 마음이다. 그는 인간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배경에도 “양심의 힘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최 교수가 이야기하는 ‘양심’은 단순히 자기 행위를 스스로 평가하고 개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는 종종 양심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의 선택이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선택이 될 것이라 믿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며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뜻하는 지혜는 양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중한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2013년 제인 구달의 도움으로 설립해 현재는 이사장으로 있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좌우명인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표현한다” 또한 앎의 노력이 양심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책은 그간 최 교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통해 소개한 다양한 일화 가운데 ‘양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7편을 선별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14 11:37
“6년째 ‘읽기 선동’… 이제 ‘쓰기 선동’ 할래요” 지난해 출판계에서 유독 존재감을 드러낸 한 서평가가 있다. 등단 이력은 전무하고 흔히 서평이 실리는 문예지에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우직하게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을 6년째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독서 선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쓴 글들 덕분일까. 몇 년 사이 그가 소개한 책은 판매량이 급증하는가 하면 그의 강연과 북 토크에 ‘출석체크’하듯 몰려드는 팬들까지 등장했다. 스스로를 ‘활자중독자’이자 ‘독서선동가’라고 소개하는 김미옥 서평가. 그는 지난해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와 ‘미오기전’을 출간하며 SNS 속 활자를 넘어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여기서 확장해 8명의 학생과 함께한 글쓰기 수업을 바탕으로 쓴 ‘당신의 삶이 글이 될 때’를 통해 ‘읽기 선생님’에서 ‘쓰기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그를 최근 문화일보에서 만났다.“서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원칙이 있었어요. 대형 출판사보다는 중소형 출판사의 책으로 할 것, 그리고 억지로 쓰지 않을 것.” 김미옥 작가의 서평 활동은 이 두 가지 원칙에서 출발했다. 30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매년 줄어드는 독서 인구를 바라보며 “네가 안 읽으면 나라도 읽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어느새 1년에 완독하는 책이 800권에 달할 정도가 됐다. 자신이 읽고 풀어낸 서평을 본 독자들이 하나둘씩 책을 사는 모습에 만족했고 이는 자신이 “작가보다는 독자로 남겠다”고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평론과 같이 형식이 갖춰져 있거나 지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쓰는 글이 아닌 자유로운 독후감에 가까운 그의 서평에는 작가로서의 모습보다는 ‘읽는 행위’에서 출발한 독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여기서 한발 나아가 ‘쓰기 선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서모임의 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에 그는 함께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이 원고를 쓰는 글쓰기 수업으로 발전시켰고 그 결과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김 작가는 “읽기의 완성은 결국 쓰기”라며 “읽었으면 한 줄이라도 써야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것에서 도약해서 자신의 얘기까지 끌어내는 것이 완성이다”라고 ‘쓰기 선동’으로 나아간 일련의 일들을 설명했다.“선생님의 글에는 그 고유한 서사가 있어요. 제가 아픈 상처도 편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죠.” 이날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김 작가의 제자이자 ‘당신의 삶이 글이 될 때’를 함께 쓴 홍리아 씨의 말이다. 출판계에서 심심치 않게 들렸던 ‘김미옥 현상’을 실감케 하는 열띤 반응. 1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자 서점가 역주행을 이끌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마이너’다. 그는 “대형 출판사와 문단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방식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깨고 싶다”며 “소수의 메이저가 아니라 다수의 마이너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은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신간이 매주 쏟아지는 지금의 서점가, 그야말로 ‘다수의 마이너’의 현장인 이곳과 맞닿아 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14 09:10
52년만에 풀어놓는 ‘천마총 발굴’ 뒷얘기 “시민들이 저 사람들 왕릉을 파는 바람에 가뭄이 들었다고 원망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금관 들어내는 날,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죠.”1973년 천마총(당시 황남동 155호분)에서 금관이 출토되던 때,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김동현 박사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오늘날에도 신라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인 천마총은 약 50년 전의 발굴 관련 기술력이 총동원된 국내 최초 국가 주도 조사였다. 당시 발굴을 맡았던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 ‘미추왕릉지구 발굴조사단’ 소속 6인의 원로 학자는 지난 2023년 발굴 50주년 기념 좌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천마도 말다래(말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와 금관(金冠), 금제 허리띠 등 총 1만1526점의 중요 유물이 출토되던 순간의 감정과 소회가 구술집 ‘천마총 그날의 이야기’로 묶여 14일 발간됐다.구술집에는 ‘조사단 구성’을 시작으로 천마총 출토 유물과 발굴조사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대한 봉분과 산더미 같은 돌무지’ ‘화려한 금관과 천마도 장니’ 등이 상세히 담겼다. 특히 조사단원들은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된 천마도에 관해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조사보조원이었던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원래 두 장이던 천마도 중 한 장이 다른 유물의 보존 처리 과정에서 훼손된 걸 후회하며 “김정기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천마도 장니 얘기만 나오면 ‘저건 그때 나오면 안 되는 게 나온 거야’라고 하셨다”고 회고했다.구술집에는 원로들이 남긴 조언도 있다. 앞으로 발굴 조사해야 할 문화유산 등에 대해 원로들은 ‘4세기 조성 봉분’의 조사 필요성을 언급했고 ‘발굴은 기본적으로 훼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 장상민 기자
- 2025-01-14 09:09
영화로 풀어본 다문화…‘단일 민족’ 자부심의 현 주소는? "다문화 국가로 진입을 앞둔 현재, 종족적 민족주의는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누군가는 발칙한 주장이라며 손사래를 칠 법하다. ‘한민족’을 강조했던 대한민국의 정서와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주장인 탓이다.하지만 2025년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의 정착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외국인 수는 246만 명으로, 국내 총인구 대비 역대 최고치인 4.8%에 이른다. 대한민국 원주민의 감소와 다문화 이주민의 증가로 이르면 올해 안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 다문화 국가(총인구의 5% 이상)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더 나아가 2030년, 대한민국 인구의 10% 정도는 다문화 가족의 구성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 13일 나온 신간 ‘다문화, 영화에서 길을 찾다’(저자 고규대·슬:B 펴념)의 저자는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지금, 우리는 획일적인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신 다민족·다문화 국가로서의 민족주의 개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안으로는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이민자의 국가와 인종, 피부색, 출신 등에 순위를 매기는 사고방식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하지만 머리로 받아들이는 당위와 가슴으로 품는 이해의 온도차는 크다. 국제 난민 문제와 국내 외국인 범죄를 다룬 뉴스에 몹시 겁먹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무서움과 불안함에 공감하면서,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드라마 콘텐츠를 통해 대한민국이 왜 다문화 사회로 가게 되는지, 다름은 왜 틀림이 아닌지, 낯설 뿐이지 무서운 건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한민족’이 ‘한 민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국민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자분자분 설명한다. 아울러 실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한다.이 책은 총 5개 챕터로 구성된다. 다문화 가정 아이의 이야기를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낸 ‘완득이’와 국제 결혼에 대한 편견을 담은 ‘하노이 신부’를 통해 우리 곁에 부쩍 가까이 다가온 다문화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의 올드 오크’와 ‘방가? 방가!’를 통해서는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난민 혹은 이민의 관점으로 나누어 바라본다.아픈 한국 현대사 속에 다문화 코드를 녹인 ‘국제시장’을 다루면서는 연출자인 윤제균 감독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주인공이 파독 광부, 간호사로 일했던 설정을 넣은 것에 대해 윤 감독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반세기 전 머나먼 타국에서 땀 흘려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들을 부양한 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생각해본다면 그들을 경시하거나 차별하는 마음은 조금은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되묻는다.‘무질서 혹은 타질서, 다양성의 공간’이라는 제목의 네번째 챕터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심리적 경계를 담은 ‘범죄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대림동에서 발생했던 중국 동포 범죄를 소재 삼은 이 영화에 대해 강윤성 감독은 "영화 중·후반부에 마석도와 형사들이 식당에서 중국 동포에게 ‘피해사례와 용의자 목격 시 신고’를 당부하며 "저도 여기 주민이에요 아시잖아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가해자, 피해자, 경찰 모두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주민이란 것이다. 마석도의 진정 어린 설득에 결국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경찰을 도와주기로 하는데, 이게 진정한 다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현재 이데일리 디지털미디어센터 센터장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30여년 간 주간지, 월간지, 스포츠지, 경제지를 넘나들며 영화, 방송, 음악 등 대중문화를 취재했다. 호기심 많은 성격 덕분에 인공지능(AI), ESG, 다문화, 시니어 등 변화하는 트렌드에도 관심을 가졌고, 그 중 현실로 다가온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다문화 시대에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어떤 민족이냐, 어떤 피부색이냐, 어떤 나라 출신이냐 하는 것은 공존의 시대에 갖춰야 할 국민 정체성의 조건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긴 세월 확고하게 지녀온 단일 민족 국민 정체성의 껍질을 깨고 연대의 손을 내밀 때 대한민국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더욱 굳건해진다."안진용 기자
- 안진용 기자
- 2025-01-13 16:55
“한국, 현 출산율로 3세대 지나면 인구 90% 감소” “여성은 더 교육받은 남성을 찾고 남성은 더 교육받은 여성을 피하는 상승혼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사회인 것이다.”영국의 대표적인 인구통계학자인 폴 몰런드(사진)는 한국의 저출생 위기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신간 ‘최후의 인구론’에서 한국에서 현재 출산율대로라면 각 세대 인구는 이전 세대 인구보다 40%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3세대 만에 인구의 90%가 증발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저출생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위기다. 다만 몰런드가 지적하는 한국의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하다. 한국 인구는 한 세대 전 초음파 기술의 도입과 함께 빚어진 남아 선호 사태로 현재의 출산 연령층에 남성 비율이 높아 불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출산율이 낮은 것만이 아니라 여성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으면 결국 인구 감소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진다.한국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선례도 참고할 만하다. 일본의 경우 15∼45세 여성 인구는 1990년대 대비 4분의 1 이상 감소해 현재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이 1990년 수준으로 회복된다고 해도 신생아 수는 4분의 1에 불과하다. 몰런드는 이에 대해 “출산율이 다시 대체율 이상으로 회복되더라도 그 효과 역시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를 ‘인구 장애’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대규모 인구 감소를 겪은 일본은 출산율이 1.20명이 증가했음에도 이번 세기말까지 인구의 40%가 증발할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세계적인 인구 위기 속에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보육 지원’이다. 책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경우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은 출산율이 1.51명이었지만 보육 서비스 보급률이 60% 이상인 지역에서는 2.18명까지 상승하는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저자는 “캐나다 퀘벡주도 풍부한 보육 센터와 가족 친화적 정책으로 21세기 초 출산율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며 “보육 서비스는 여성이 직장에서 동등한 기회를 누리고 남성의 가사 분담이 활발한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전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13 11:34
신종광물 ‘장군석’ 첫 발견·명명한 김수진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광물학회장을 지내며 국내 광물학 연구의 선구자로 불렸던 김수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86세.1939년생인 고인은 서울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광물학을 전공했다. 고인은 1968년 서울대 지질과학과의 첫 광물학 전임교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학술원은 고인의 연구 업적에 대해 “부임 이래 36년 동안 광물학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의 광물학을 높은 수준까지 높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학술원은 각종 광물로 구성된 지구 물질이 인간의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환경광물학 분야를 연구하며 1995년 환경광물학 강좌를 처음 열었다고 전했다.고인은 광물 연구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1975년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신종광물 ‘장군석’(Janggunite)을 발견해 공인받았으며 1991년에는 일본 학자가 명명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타카넬라이트’(Takanelite)가 잘못 명명돼 있다는 점도 규명혔다. 신종광물이란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자연산 고체 무기화합물 중에서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인의 연구는 석조 문화유산 보존 분야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석조 문화유산의 훼손 원인과 보존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환경광물학적 연구를 진행했으며 석조문화재보존과학연구회장, 한국석면아카데미 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4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됐으며 한국광물학회장, 한국자원연구소 부이사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학술원상 저작상(1976), 운암지질학상(1998), 홍조근정훈장(2004) 등을 받았다.장상민 기자
- 장상민 기자
- 2025-01-12 09:10
국가 지도자의 ‘전략적 멍청함’… 어떻게 나라를 망쳤나[북리뷰] 문화는 한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관, 태도와 관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인간 행동을 규정하는 가장 밑바탕에 놓인 힘으로, 개인의 습관이나 행동 양식, 공동체의 도덕과 거래 양태, 집단의 협력과 투쟁 등 온갖 움직임을 결정한다. 나쁜 문화에 사로잡히면 전쟁과 같은 결정적 행위를 수행할 때도 자칫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전쟁의 문화’에서 존 다우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비교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전략적 멍청함’에 사로잡혀서 국가 위기와 파국적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다룬다. 저자는 일본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깃든 인종적 편견을 비판하고, 미국 중심 세계관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역사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다. 일본의 전후 재건 과정을 살핀 역작 ‘패배를 껴안고’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다우어에 따르면, 알카에다의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빠져든 ‘전략적 멍청함’은 진주만 기습 공격을 감행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사고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히로히토(裕仁) 천황을 둘러싼 일본 군부가 미국을 오판하고 승리를 당연시했듯이, 조지 부시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대한 신앙 수준의 믿음, 대규모 전쟁이 불가피하고 정당하다는 신념에 젖어서 편견과 희망적 사고, 백일몽과 망상에 포획됐다. 미국을 이끄는 세속의 사제들은 수시로 신의 뜻을 들먹이면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을 ‘성전’에 비유하곤 했다. 저자는 이를 ‘믿음 기반의 정책’이라고 부른다. 이 정책에 따르면, 세상은 ‘나와 적’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고, 선한 자신의 전쟁 역량은 과대평가하고 악한 타인의 상황과 태도, 능력은 소홀히 취급하며, 우리 편 잘못은 감추면서 적의 위협은 과장하기 쉽다.그 탓에 이들은 체리 피킹, 즉 보고 싶은 정보만 들여다보고 선별적 정보에만 주목하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혔다. 집단 사고에 휩쓸려 숱한 반대 증거들을 무시한 채, 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파괴무기의 흔적을 조작해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사실, 이들은 지나친 비밀주의에 사로잡혀 관련 정보를 시민들에게 공유하지도 않았고, 합리적 선택을 위장한 비합리적 판단에 대한 책임성도 부족했으며, 누구나 생각할 법한 평범한 상식조차 무시했다. 그 결과, 미국은 승리 없는 전쟁,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대동아공영권을 주장했던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를 침략할 때 그러했듯이, 유색 인종에 대한 미국 특유의 인종주의적 편견은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반인류적 전쟁 문화를 부추겼다. 20세기 초 미국 군대는 필리핀 전쟁에서 최소한 2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독일의 도시들에 소이탄을 퍼붓고 융단 폭격을 자행했으며, 결국 전략적 중요성도 별로 없는 소도시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려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다. 국제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러한 전쟁 형태는 베트남 전쟁을 거쳐 이라크 전쟁에서도 반복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테러 폭격을 통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뜻하는 ‘충격과 공포’ 같은 미국 특유의 전쟁 수사가 어떻게 현실을 은폐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저자는 1945년 이후 일본의 국가 건설과 재건 과정을 분석하면서 2003년 이라크 점령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군대 해체, 공직자 숙청 등 일본에서 효과를 봤던 미국 정책은 이라크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문화적 바탕이나 제도적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강제로 정권을 교체한 후, 국가 건설의 어려움은 무시하고 막연히 시장에 모든 걸 맡긴 시장중심주의 사고 탓이었다. 그 결과 이라크는 대혼란에 빠져들어 테러가 만연한 불량 국가로 전락했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민주적·다원적 의사결정과정이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기존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행 권한을 뻔뻔하게 확대하고 행사하는 데 열중하면 국가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버락 오바마는 말했다. “백악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모두가 모든 것에 동의하고 토론과 이견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언제든 전쟁의 문화에 빠져들 수 있다. 무리 행위와 집단 사고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까닭이다. 792쪽, 5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 문화일보
- 2025-01-10 09:27
어른의 영향력 등 [이 책] 데이비드 예거 지음. 이은경 옮김. 젊은 세대를 향한 어른들의 조언은 왜 실패할까. 심리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10세부터 25세까지 젊은 세대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재미나 호기심, 위협이 아니라 지위와 존중이다. 사춘기부터 사회초년생까지 세대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담겼다. 어크로스. 616쪽, 2만7000원.양심 최재천·팀최마존 지음. 대한민국 사회의 양심 가치를 되새기고, 공정과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나누기 위한 책. 생태학자인 저자가 호주제 폐지 기여, 제주 남방큰돌고래 방류 등 양심을 바탕으로 진행한 의미 있는 활동을 소개하며 그 의미를 전달한다. 더클래스. 208쪽, 1만8000원.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조원진·김진한·이종록 등 지음. 권력 구조를 둘러싼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는 늘 존재하는 쿠데타, 즉 정변이 있었다. 역사학자 8명의 공동 연구 결과로 내놓은 책은 고조선부터 발해까지 한국 고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쿠데타라는 관점에서 조명해 고대사의 권력 전복 과정의 맥락을 톺아본다. 틈새의시간. 248쪽, 1만7000원.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 세계의 질서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규칙에 주목한 책. 인류 사회의 수많은 규칙을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으로 나눠 이 세 가지 범주가 확산되고 연결되는 인류사를 보여준다. 까치. 464쪽, 2만3000원.창문 너머로제인 모리스 구달·제인 구달 연구소 지음. 이민아 옮김. 세계적인 생태학자 제인 구달이 지난 30년간 침팬지를 연구한 족적을 집대성했다. 동물 행동학 연구 분야에서 가장 역동적인 현장인 ‘곰베 연구 센터’를 비롯해 야생 침팬지 연구와 보호에 매진한 다양한 순간이 담겼다. 사이언스북스. 472쪽, 3만 원.카를로스 클라이버 알렉산더 베르너 지음. 최소진 옮김. 세계적인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대한 유일한 전기. 까다롭고 섬세한 동시에 완벽을 추구했던 그의 삶은 아버지 에리히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예술을 대하는 자세와 타협하지 않는 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마르코폴로. 1000쪽, 5만7000원.미스터 사이언스 한성구 지음. 중국 과학 발전의 동력과 근원을 찾기 위해 근대부터 이어진 과학기술에 관한 탐구 과정을 냉철하게 검토했다. 기술 국수주의나 기술 독점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도 커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저자는 중국의 진면목과 중국 과학사의 무게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궁리. 540쪽, 3만 원.사람을 남기는 사람 정지우 지음.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변호사인 저자가 자신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책. 나의 중심을 먼저 세우는 관계의 기초부터, 다정함을 기르는 환대와 소통의 기술, 나를 짓누르는 나쁜 관계 대처까지 특유의 섬세하고 단호한 문장으로 진정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름모. 316쪽, 1만8000원.영화극후고 뮌스터베르크 지음. 유현주 옮김. 이제 막 태동한 영화 산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구함과 동시에 새로운 예술이론을 정립하고자 한 최초의 책. 저자의 영화이론은 단지 기술적 장치에 대한 매료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영향력에 대한 고찰과 이미지 인식 방식까지 포괄했다. 문학동네. 180쪽, 1만9000원.자본을 읽자루이 알튀세르·자크 랑시에르 등 지음. 배세진·김은주·안준범·진태원 옮김. 마르크스주의 철학 없이 ‘자본 ‘을 읽는다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 ‘자본’을 읽는 데 필요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해 프랑스 석학들이 설명한 책은 경제학을 넘어 하나의 과학적 사유로 ‘자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린비. 1152쪽, 7만2000원.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박승찬 지음. 중세철학 전문가인 저자가 200년 십자군 전쟁을 통찰한다. 종교 간의 갈등, 분노와 혐오, 인간의 탐욕, 리더십 부재 등은 오늘날 바라본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구와 이슬람의 기록을 망라한 시각으로 전쟁을 통찰한다. 오르골. 400쪽, 2만5000원.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10 09:27
‘나쁜 감정’은 흙 속의 지렁이… 때론 삶을 비옥하게 만들어[북리뷰] 인간은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싶어 한다. 감정적이라는 평가는 개인의 미성숙함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왔고 그것이야말로 미덕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감정을 나쁘다고 치부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인문학 분야에서 명문가로 손꼽히는 미국 스와스모어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런 당위와 역사를 부정한다. 나쁜 감정을 흙 속 지렁이에 비유하며 나쁜 감정이 오히려 삶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책은 2부에 걸쳐 간디, 공자, 괴테, 몽테뉴 등 저명한 철학자 12명을 인용해 나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설명한다. 1부에서는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간디가 보여준 감정관을 비판하며 시작한다. 간디는 감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워질 것을 요구하는데 책에서는 이를 ‘감정 성인’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저자는 감정 성인이 된다면 공동체와 타인,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질 뿐이라고 반박한다. 나아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대하는 이중 잣대를 비판한다. 나쁜 감정과 달리 좋은 감정은 왜 의심하지 않는지, 긍정적 감정도 강박적이고 집착적이고 소모적일 수 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2부에서는 분노, 시기와 질투, 앙심과 쌤통, 경멸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나쁘다는 통념에 맞선다. 대표적인 나쁜 감정인 분노의 경우 나쁜 분노도 좋은 분노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혐오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세태다. 앙심과 쌤통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흥미롭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앙심과 쌤통을 포함한 미움의 감정은 특히 나쁘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두 감정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앙심은 나만의 골방에 누군가 불쑥 들어오는 불쾌감에서 비롯된 감정, 쌤통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한 방식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 일종의 신화처럼 통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을 하나하나 반박한다.부정적 감정은 삶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을 충분히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면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는 표현처럼 취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은 누구나 나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해답은 하나다. 그냥 느껴라. “감정이 독자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300쪽, 1만9000원.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
- 김유진 기자
- 2025-01-10 09:25
고래의 시선으로 본 ‘인간의 끝없는 탐욕’[북리뷰] 2020년 작고한 세계적인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유작. 그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주로 환경, 소수민족 문제 등을 다루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글쓰기로도 유명했다. 고래의 시선에서 인간의 잔혹함과 탐욕을 그린 이 책 역시 일종의 ‘철학 동화’다.이야기를 이끄는 건 ‘달빛 고래’. 그에게 인간은 오랜 세월 함께 사는 생명체였고, 때로는 자신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오려는 용기를 지닌 존재였다. 그러다 점차 자연의 리듬을 깨는 무자비한 종족으로 변한다. 인간이 던진 작살에 맞아 죽어가는 향유고래, 고래잡이배에 잡혀 토막이 나 버린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 그러나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광경은 인간들이 서로 싸워 죽이는 것이었다. “느림보 거북이도 다른 거북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상어도 다른 상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공격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달빛고래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인간은, 우리는 어떻게 되고 있나. 평생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꾼 세풀베다였으나, 생애 마지막 동화엔 희망보다 분노와 절망이 깊다. 아마도 마지막 경고가 아니었을까. 구태의연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동화의 엔딩, ‘그래서 고래와 인간은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는 결국 남은 자들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144쪽, 1만5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박동미 기자
- 2025-01-10 09:25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상상 속 코끼리… “어때요? 멋있죠!”[어린이 책]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맹인모상(맹인 코끼리 만지기)’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리를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으라는 의미겠지만 시각장애인 비유가 오늘날 감수성에는 맞지 않는다. 이 그림책은 시각장애 어린이가 직접 코끼리를 만져보는 경험을 한 후 그림이나 조소 등 미술 작업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윤리적, 예술적 감수성을 새롭게 한다.엄정순 작가는 오랜 기간 시각장애 어린이에게 미술 교육을 해 오며 시각장애인과 미술의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편견을 어린이의 실제 예술 작업을 통해 가볍고 유쾌하게 전복해 왔다. 그는 1997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만들고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 그림책의 바탕이 된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그중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됐다.이 그림책은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과정을 그림책이라는 예술 장르에 맞추어 편집하고 어린이들의 미술 작업을 공유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먼저 교실에서, 아직 보지 못한 코끼리를 상상하며 코끼리의 이미지를 만드는 수업을 한다. 그런 다음 태국의 코끼리 자연공원에 가서 코끼리를 실제로 만져보고, 비장애인이 만들어낸 기존의 코끼리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이 감각한 코끼리를 미술 작업으로 표현한다.이 책에 실린 어린이의 미술 작품은 종이에 크레용, 종이에 혼합 재료, 조합토 등으로 다양하다. 어린이와 예술가가 함께 완성한 작품에는 천편일률적이고 규정화된 미술 교육에서 보기 힘든 상상력이 넘친다. 시각장애인 어린이가 비장애인이 보지 못한 코끼리의 세계를 아름답게 창조한 결과물을 통해 예술과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
- 문화일보
- 2025-01-10 09:25
한권 한권… 책으로 쌓아올린 과학의 금자탑[북리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책은 언제나 연결 고리였다. 시대의 지성인과 독자를 잇는 다리이자, 시대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였고 학계에서는 지식이 오가는 통로로 기능했다. 과학계에서도 책은 그 역할을 다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같은 책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촉진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2500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된 가운데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그 역사를 되짚으며 과학책은 단순한 정보를 담은 저장고에 그치지 않고 사유와 혁신,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아이작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고 고백했을 때, 그는 단지 선배 과학자들의 업적에 의존했다는 뜻만이 아니라, 그 업적을 담은 책들 덕분에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는 의미를 담았다. 결국, 뉴턴의 ‘거인의 어깨’는 바로 그가 읽었던 책들이었다.기록으로 존재하는 과학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장 오래된 과학책으로 여겨지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의학 연구 내용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지금은 그 가운데 ‘히포크라테스 선서’만이 회자되지만 당대에 책은 단순히 의료 윤리를 넘어선 의학적 지식의 보고였다. 영향력을 떨친 기간으로는 기원전 290년에 저술된 유클리드의 ‘원론’을 능가할 수 없다. 저자인 유클리드가 실존 인물이 맞는지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책은 과학적 사고방식의 기초를 세운 역작으로 기하학의 원리를 증명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며 20세기 초까지도 교과서로 쓰였다. 서로 경쟁하듯 책이 한 걸음 나아가면 과학은 이에 발맞춰 한 걸음 발전했다. 1543년 출간되며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1440년대 활판 인쇄술의 도입이라는 혁신적인 발명 아래 그 파급력이 커졌다. 책이 대중적인 매체로 도약한 덕분에 책은 더 많은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었고, 기존의 천동설을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과학혁명의 신호탄이 되었고 이후 갈릴레오와 케플러, 뉴턴 같은 ‘거인’들이 이끄는 혁명의 물결을 일으켰다. 본격적인 출판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며 과학책은 단지 과학적 사실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명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바꿨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운동을 촉발했다.19세기 무렵 과학책은 대중과 더욱 가까워졌다. 학술지와 논문이 학계에서 주요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책은 학문적 성과를 전달하는 역할에서 멀어졌지만 대중 독자에게는 도리어 반가운 소식이었다. 과학책은 더 쉬워지고 풍성해졌다. 1879년에 초판이 나온 ‘파브르 곤충기’는 책에 자연을 삽화로 담아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며 20세기부터 본격화되는 ‘감상하는 과학책’의 서막을 알렸다. 마치 최근의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듯 당대의 과학자들은 책이라는 무대를 활용해 대중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달하는 데 매진하기도 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설명하며 대중의 과학적 이해를 확장했고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통해 수학 공식을 최대한 넣지 않으면서 우주의 작동 방식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비록 책은 호킹의 노력에도 쉽게 쓰이지는 않았지만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가 만든 ‘대중 과학서’의 영역은 이후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같은 책으로 확장됐다.현대 과학은 양자물리학과 같은 복잡한 분야로 진화하며 대중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과학책은 여전히 그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과학자가 아닌 과학 저술가들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을 통해 과학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 결과, 대중 과학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가 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그의 저서를 찾고, 과학에 관한 관심을 책을 통해 이어가는 독자도 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뉴턴이 현대 물리학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거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깨닫기는 어렵다. 그 대신 과학이 발전을 멈추지 않듯이 책의 역사 또한 계속되리라는 예감이 생긴다. 과학책은 여전히 우리 손에 들려 있으니. 352쪽, 2만6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10 09:22
뇌의 종합적 발전, 지식만 담아선 한계… ‘타인의 삶 경험’ 문학 읽어야[북리뷰] 더 많은 지식과 기술이 더 나은 사람을 만들고 더 좋은 삶을 보장할 것이다. 이 같은 낙관적 명제는 아주 오랫동안 인류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순식간에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에 대한 최첨단 방식의 증명이다. 그러나 영문학에서 시작해 정신분석학과 뇌과학까지 연구 영역을 넓혀온 권택영 경희대 명예교수는 지식을 늘리는 것은 뇌의 상부만을 발달시키기에, 인간 행동과 정신의 총체인 뇌를 종합적으로 발전시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프로이트의 의식 이론을 통해 저자는 인간이 무의식을 가지고 태어나 전의식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다고 말한다. 전의식은 기억 등이 저장되는 영역으로 경험과 훈련을 통해 지식이 축적되는 일이 일어난다. 비교적 뇌의 윗부분인 전두엽이 담당하기에 상부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기술의 발전과 습득은 전두엽을 발전시키며 호흡과 같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작동하는 무의식(전두엽 하부 뇌간 담당) 위에 상부 구조물을 올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뇌를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눠 분석한다. 우반구 뇌는 감성·정서·예술을, 좌반구 뇌는 이성·기술·과학에 특화돼 있다. 예술을 담당하는 우반구와 신체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왼손인데 과거부터 대다수 문화권에서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며 핍박했던 사실을 저자는 오늘날의 이과 선호 현상과 겹쳐보기도 한다.그렇다면 저자는 뇌의 하부와 우반구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책의 제목은 ‘균형’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뇌의 하부는 의도한다고 해서 개발되는 영역도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적으로 기술을 배우며 전두엽을 자극하면 이내 뇌는 균형을 찾기 위해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자극 속에 과분비되는 코르티솔은 뇌 상부의 이성을 마비시켜 하부의 감정만 남도록 퇴행시킨다. 그렇기에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하부와 상부,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다.저자는 영문학자의 강점을 살려 연결 강화의 단초를 문학으로부터 찾아낸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소설 ‘왼손잡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의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를 통해 감성과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저자는 문학을 창조하고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뇌의 상부와 하부를 아우르며 좌반구와 우반구를 고르게 활용해 균형감을 길러준다고 주장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저항 시인 윤동주의 시가 대표적인 예다.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어는 누가 읽더라도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화자를 괴롭게 만드는 ‘잎새에 이는 바람’,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 그리고 ‘바람에 스치우는 별’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언어 자체에 무의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이 윤동주라는 것, 당시 한반도에는 일제강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비로소 이미지 너머에 깃든 시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에게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뇌 상부와 하부의 조화. 즉 하부 구조를 통해 1차적으로 감상한 후 상부 구조를 이용해 2차적인 논리와 이해에 도달하며 뇌를 고루 사용하는 것이다.문학은 우리가 모르는 삶의 문을 연다. 전혀 다른 시대, 공간, 성별, 신체의 인물이 되는 경험은 감정과 논리를 아우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타인의 삶을 통해 더욱 세계를 잘 이해하는 일, 그것이 인류 사회 발전의 새로운 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52쪽, 1만8000원.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 장상민 기자
- 2025-01-10 09:19
멋대로 해석하고 믿는데 자신감은 높아지는 역설[정신과 의사의 서재]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정신과 의사가 분석을 해봐.”한 달 동안 수십 번 들은 질문이다. 바로 지난해 12월 3일의 계엄 선포 이야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왜 저렇게 단호하면서도 어설픈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나라는 둘로 쪼개진 채 한 달 넘은 시간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주말에 광화문을 나가보면 확신에 찬 두 집단으로 갈라져 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계엄 사태 이후 해외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경제가 얼어붙고 환율이 널을 뛴다. 질문하는 이유는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각자 가장 단호하고 분명한 해답을 원하며 집단적으로 판단하고 모이는 것은 불확실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설명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설명을 원할 뿐이다. 선명할수록 그럴듯하고 믿음직하다. 아리 크루글란스키의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에는 지금 현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주변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정보가 넘칠수록 사람들은 빨리 판단하고 결정하려는 종결 심리가 작동한다고 한다. 확신하고 싶은 마음이 그 정보의 사실 여부보다 우선한다. 피곤하거나 시간적 압박을 받으면 조바심이 커진다. 뇌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는 걸 싫어하고 결과가 어떻든 판단하는 것을 선호한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는 안도감이 ‘틀린 판단을 했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이긴다. 여기에 더해서 판단하고 나면, 결정을 바꾸고 싶지 않으니 타인의 관점이나 입장도 알고 싶지 않아 지고, 자연히 공감능력은 줄어든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친다. 진화론적으로 척박한 환경에는 빨리 결정하려는 종결 욕구가 강한 이들이 생존 가능성이 높고, 비옥한 환경에서는 애매한 상황에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고 천천히 결정하는 이들이 이득을 본다고 한다. 지금같이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상황이라면 종결 욕구가 강한 이들이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적은 정보만으로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믿어 버리는데, 이상하게도 자신감은 높아지는 역설적 결과가 생긴다. 확신을 얻고 싶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이다. 그 덕분에 세상이 복잡하고 척박해지면 단호한 제시를 하는 지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고 최근 특정 종교, 국가, 민족에 초점을 맞추고 엘리트를 기득권 집단으로 규정하는 포퓰리즘이 유럽과 미국에서 강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라 저자는 설명한다.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불안요소가 아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로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정보를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고 종결 심리로 섣부른 판단을 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여유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세상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 안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걸 이해하면 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견뎌내고 조급하게 판단했다가 후회할 일은 줄어들 것이다. 인생의 내공은 모호한 걸 견디는 능력에 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문화일보
- 2025-01-10 09:19
“‘이런 글도 있단다’… 엄마가 내게 건네주는 것 같아” 오는 22일은 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14주기. 이를 기념하며 출간된 적 없던 여행 산문 다섯 편이 독자들에게 찾아왔다. 그의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에 더해져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문학동네)으로 새롭게 묶였다.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사진) 작가는 “새롭게 들어간 글 다섯 편은 모두 우연히 발견했다”고 밝혔다. “어머니가 스크랩해놓은 이 글들은 마치 이런 글도 있었단다 하며 어머니가 건네주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호 작가는 개정증보판의 출간을 위해 원고를 다시 읽으며 느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전했다. 빨간 크리스마스 리본이 달린 어머니의 캐리어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 미소가 나온다”며 “어딘가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신 것치고 여행을 참 많이 다니셨다”고 말했다. 또한 어머니의 여행길을 배웅하고 마중했던 일을 참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움과 후련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돌아오신 날 따끈한 후일담의 일성을 들으면 무사히 돌아오셨다는 안도감을 같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번에 새로 발견된 원고들에는 여행지에서, 그리고 작가의 삶 속에서 찾은 깨달음과 감동으로 가득하다. 박 작가는 친구와 떠난 강릉 여행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방문하게 된 맛있는 백반집 일화를 소개하며 ‘내 나름의 기쁨’이고 ‘호강’이라고 말한다. 또한 낯설었던 미국 여행과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듣게 된 옛날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대하소설 ‘미망’을 쓰게 됐다는 후일담도 들려준다. 백두산에 올라 적어 내려간 기행문에는 독자들이 사랑해 온 박 작가만의 은은하고 여운이 넘치는 문체가 잘 드러난다. 마음으로 그려낸 절경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동시에 만주와 옌볜(延邊) 등지에 흩어진 한민족 동포를 향한 연민과 유대 의식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책의 맨 앞에 실린 ‘겨울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 삶의 봄을 만들자’에서 작가는 자주 올랐던 남한산성의 겨울로부터 봄을 찾아낸다. 높은 산에는 겨울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 놓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라는 “활기찬 봄의 소리”가 들려오며 “봄도 가장 먼저 와 있었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를 통해 혼돈의 시간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겨울을 견디는 중에도 봄은 언제나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 장상민 기자
- 2025-01-09 11:35
“여야 막론 민주적·헌법적 절차 따라 정치 안정돼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사진 왼쪽) 대주교는 7일 국회 본관 경당에서 집전한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신년 미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민주적·헌법적인 절차에 따라 하루빨리 정치적인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다시금 세계 문화 선도국에 걸맞은 정치·사회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다”고 강조했다.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이날 미사에는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인 더불어민주당의 김병기 의원과 수석부회장인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26명이 참석했다. 정 대주교는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 골목길 상권이 얼어붙어 우리 국민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론했으며 “이런 엄중한 시기에 여야 모두 단기적인 당리당략에 따른 정책이 아닌, 국가 차원의 공동선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면 긴 안목에서 볼 때 더욱 큰 정치적 성과와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박동미 기자
- 2025-01-08 11:43
교황, 워싱턴DC 대주교에 반트럼프 추기경 임명 프란치스코 교황이 6일(현지시간)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교황청 장관에 임명했다. 또, 진보성향의 로버트 맥엘로이(70·오른쪽 사진) 추기경을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차기 대주교로 임명했다.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교황은 교황청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수도회부) 장관에 이탈리아의 시모나 브람빌라(59·왼쪽) 수녀를 임명했다. 수도회부는 전 세계 남녀 사제 4분의 1 이상을 감독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며, 많은 평신도 운동도 감찰한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교회 내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2023년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여성에게 사상 최초로 투표권을 줬고 2022년 7월에는 전 세계 주교 선출을 심사하는 교황청 주교부 위원에 여성 3명을 포함했다. 또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를 비판하고 이민자 인권을 옹호해 온 맥엘로이 추기경을 워싱턴 DC의 차기 대주교로 임명했다. 가톨릭 전문매체 CNA는 “맥엘로이 추기경이 미국 추기경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성향”이라고 평가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박동미 기자
- 2025-01-07 11:36
전쟁·차별·젠더갈등… 읽으며 찾는다, 혼돈의 끝을! 2025년의 세계는 여전히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시대의 거울이자 풍향계가 되어주는 책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국내 주요 출판사 20여 곳의 출간 예정작을 살펴봤다. 올해는 트럼프 2.0 시대에 대한 분석서를 비롯해 세계적 위기에 대한 혜안,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들의 최신 연구서들이 연초부터 출간을 앞두고 있다. 국내 저자들은 주로 동물권, 장애, 젠더 등 수년간 서점가를 달궈 온 우리 사회의 화두를 보다 확장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트럼프 2.0과 세계…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사회적 혼란 속 체제에 대한 고민은 국내를 넘어 세계 저자들의 현안이다.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믿어온 국가에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한 바버라 F 월터의 근작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열린책들) 또한 마찬가지다.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내전의 위기를 겪는 ‘아노크라시’ 국가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쇠퇴의 다양한 현황을 살피고 이를 예방할 방법을 제시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자유의 길’(21세기북스)을 통해 민주주의, 경제학, 좋은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여줄 예정이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앤 애플바움은 약 100년 전 역사를 통해 현시대를 돌아본다. ‘붉은 굶주림: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전쟁’(글항아리)에서는 1929년 스탈린의 농업 집단화 정책으로 인한 대기근이 만들어낸 300만 명의 희생자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극의 뿌리를 찾는다. ◇세계 석학들의 최신 연구…사회와 인간, 그리고 이성 =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근본적인 가치에 관한 탐구를 담은 석학들의 최신작도 잇따라 나온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이성이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면서도 매 순간 모순적인 인간의 마음을 탐구한다. 포스트휴먼 담론의 선두주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사월의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 요소를 해체한다. 연결과 결합을 통해 구성된 전통적인 사회가 아닌 그 자체로 실체화되어 버린 현대사회를 중심에 두고 생태 위기 등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룬다.RNA의 촉매작용을 발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체크 콜로라도대 교수의 ‘RNA의 역사’(세종서적)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RNA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유부터 RNA의 경이로움, 백신·유전자 가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래를 형성할 발견을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은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의 신작 ‘매직 필’(어크로스)도 오는 2월 출간될 예정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동물권과 장애, 차별을 논하는 국내 저자들 = 최근 몇 년 동안 서점가를 달궜던 주제인 ‘동물’과 ‘장애’ ‘차별’은 보다 깊은 논의로 들어간다. 동물 윤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최훈 강원대 교수는 ‘동물을 위한 윤리학’(2015)과 ‘동물 윤리 대논쟁’(2019)에 이어 ‘길들여진 동물의 윤리’(사월의책)로 동물 윤리학 3부작을 완결한다. ‘반려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인간과 애완동물 사이의 진짜 관계를 탐구한 저서다. 특히 애완동물의 의존적 특성과 인간의 지배적 애정이 만들어내는 딜레마에 주목한다. 수의사이자 활동가인 최태규의 ‘도시의 동물들’(사계절)은 도시라는 환경에서 인간과 함께 살며 변화해가는 동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장애학의 도전’으로 장애학이라는 학문을 대중적으로 알렸던 김도현 작가의 5년 만의 신작 ‘장애학의 시선’(오월의봄)은 장애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즉 실천적 개입이 가져오는 변화를 포착한다. 이 밖에, 전작 ‘대리사회’를 통해 주목받은 저자 김민섭이 탁송 운전을 하며 바라본 한국 사회를 다룬 ‘탁송인간’(어크로스)도 주목된다.◇젠더·청년 담론의 지속 = 청년과 젠더 또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한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민음사)에서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오늘날 젊은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의 출처를 들여다본다. 여성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이 여전한 가운데 천장 아래에선 남성이 여성에 뒤처지면서 각종 사회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젠더 담론을 이끄는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신간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문학동네)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커진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쟁의 맹점을 파헤치고, 이를 돌파할 새로운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국내에선 정희진·김하나 등 10인의 여성 작가가 ‘잘 나이 들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을 주제로 한 ‘우리, 나이 드는 존재’(휴머니스트)를 선보인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 신재우 기자
- 2025-01-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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